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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성차별 채용비리, 무죄 판결... 윤석열 인식이 걱정되는 이유

남녀고용평등법 적용도 이렇게 힘든데... 이래도 구조적 차별 없나

등록 2022.03.14 17:47수정 2022.03.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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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재판 시작 약 4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함 부회장은 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의 아들이 하나은행 공채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인사부에 전달해 서류전형 합격자 선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2018년 6월 재판에 넘겨졌다. 또한 함 부회장은 2015년과 2016년, 인사부에 남녀 공채 비율을 4대 1로 하라고 지시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정 지원자에 대한 추천서를 인사부에 전달하긴 했지만, 이들이 합격권에 미달했는데도 합격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하나은행의 남녀 차별적 채용방식이 적어도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시행돼왔다고 보인다"면서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시행돼 피고인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방해 혐의와 마찬가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한편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기소된 하나은행 법인은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초부터 성별로 다른 출발선을 그어놓고 경기를 시작한 것이다. 일반 행원 기준으로 남성이 더 필요하다고 볼 합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성별 비율을 정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차별임이 명백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함 부회장의 남녀 성비 지시에는 관행이었다면서 면죄부를 준 재판부가 은행 법인에만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모순적이다.

구체적 남녀 성비 지시에도 "관행"..."여성 불리 아냐"라며 면죄부 부여한 사법부

재판부의 이 같은 모순적 판결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12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역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 회장 역시 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은행장 시절 채용비리에 가담한 혐의로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2018년 10월 기소되었다.

2015년 은행장이었던 조 회장은 인사부에 "예년 관행대로 남녀 합격자 비율을 3:1로 정하여 채용절차를 진행하되, 해외대 출신 및 이공계 출신도 좀 더 선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에도 비율만 7:3과 3:1을 오갔을 뿐 합격자 성비를 인위적으로 맞춰 채용하라는 지시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에 따라 서류전형과 면접전령에서 합격자의 남녀 비율에 관한 통계표를 작성해 관리했고 수십 명의 면접 점수가 바뀌었다. 원래의 면접 점수대로 선발 시 남성 합격률이 목표보다 저조한 경우, 합격권에 있던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불합격권에 있던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여성에게만 일관되게 불리한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조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격자 성비가 3:1에 맞춰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에게 불리한 기준은 아니었다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14일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신입 행원 최종 합격자의 남성과 여성 비율을 6:4나 7:3으로 하라'는 지시에 따라 남성 지원자 113명에 자기소개서 평가 등금을 임의로 상향시키고 여성 지원자 112명은 자기소개서 평가 등급을 임의로 하향 조정한 당시 KB국민은행 인사팀장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KB국민은행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하지만 이 사안에서도 A씨에게 성차별적 지시를 내린 고위급들에 대한 처벌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인 역시 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고작해야 수 백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을 뿐이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윤석열의 발언이 잘못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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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지난 2020년 1월 발표한 고용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동안 고용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인 모집·채용 성차별 금지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 의견을 송치한 경우는 단 6건에 불과해 1년 평균 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민간단체를 선정해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에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고용상 성차별관 관련한 상담 건수가 1년 평균 234건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경은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되어 있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목적은 '현존하는 남녀 간의 고용 차별을 없애거나 고용평등을 촉진하는 것'이지만 현재와 같이 기업의 자율성에만 맡긴 채로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현재와 같이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는 성평등을 위한 고용 개선을 만들 수 없다. 실질적인 '적극적' 고용개선을 위한 정부의 의지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여성·남성이라는 집합에 대한 대등한 대우라는 방식으론 여성이나 남성이 구체적 상황에서 겪게 될 범죄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남녀고용평등법이 있음에도 명백한 성차별에 기반한 불공정한 범죄 행위가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윤 당선인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고용평등법도 '남녀 집합의 대등한 대우'인만큼 여가부와 마찬가지로 폐지수순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윤 당선인도 그걸 바라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함영주 #하나은행 #신한은행 #윤석열 #남녀고용평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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