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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걸 맞게 해 주세요, 인권위에 제소할 거예요"

오랜 교사 생활 동안 완전히 새로운 경험... 안쓰럽고 씁쓸

등록 2022.04.25 11:04수정 2022.04.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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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쟤는 무선 이어폰을 가방에 넣고 시험 봤어요. 그거 부정행위잖아요."

중간고사 때의 일이다. 모든 무선 기기는 제출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런데 A는 핸드폰은 제출하면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제출하는 걸 깜빡했다. 시험 시작종이 울리자 그제서야 자신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발견했고, 부랴부랴 그걸 빼서 자신의 가방에 넣고 시험을 봤다.

옆에 앉은 B는 무선 기기를 소지한 채 시험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A에게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시험 봐야 돼'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후에 교무실로 내려와서 담임교사에게 말했다. 부정행위니까 처벌해 달라고. A와 B는 모두 공부를 제법 하는 학생들이었다.

"우리 아이는 맨 뒤에 앉아있어요. 앞에 앉은 아이들보다 시험지를 늦게 받아서 불리하니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민원이 들어왔다. 시험지를 나눠줄 때 앞줄에서 뒷줄까지 배부되는데 길면 5초 정도 걸린다. 5~6명이 한 줄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맨 뒤에 앉아서 시험지를 늦게 받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불이익을 받고 있으니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자신들의 교실이 6층이라 1층에 있는 반에 비해 불리하다면서 시험 때에는 같은 층에서 시험 보게 해 달라는 이야기를 한 학생들도 있다.

"제가 쓴 걸 맞게 해 주세요. 아니면 인권위에 제소할 거예요."

한 학생이 주관식 답을 틀리게 썼다. 완성된 글자가 아닌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자신만의 글자였다. 직관적으로 무슨 글자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맞는다고 해 줄 수는 없었다. 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틀렸다고 채점을 하자 그 학생은 자신은 필체가 특이할 뿐인데,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학교가 차별하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에 제소했다.


"선생님, 저희 반만 진도가 느려서 불안해요. 다른 시간에 들어와서 진도를 끝내 주세요."

교사가 시험 직전 한 시간만 자습을 주고, 그 전 시간까지 진도를 나갈 수 있도록 수업 계획을 짜서 수업을 했다. 한 반은 화요일 수요일에 한 시간씩 들어있다. 목요일부터 시험이 시작된다. 그러자 그 반의 반장 학생이 다른 반은 월요일에 진도가 다 끝나는데, 자신의 반은 화요일에 진도 끝나고 목요일부터 시험이라 불공평하단다. 그러니 진도가 끝난 다른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와서 진도를 끝내 달란다.

최근 들어 시험 때면 생각조차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한다. 교사 생활을 오래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어쩌면 오래 했기 때문에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한 편으로는 안쓰럽고,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지나치게 예민한 불안감이 안쓰럽고, 그 불안감이 인권과 정의와 삶을 왜곡시키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에도 싣습니다.
https://blog.daum.net/teacher-note/1824
https://blog.naver.com/social_studies/222710557702
#내신성적 #중간고사 #기말고사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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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사회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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