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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민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6년 4개월째 국회에 방치되어 있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등록 2022.04.28 09:23수정 2022.04.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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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 대한민국 국회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제130조 제2항은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이나 헌법개정안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게 되어 있지만, 현재 우리는 국민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가?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법 제14조에 따라 투표인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14년 7월 24일 선고 2009헌마256 결정에서,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이 국내거소신고가 되어 있는 재외국민에게만 국민투표권을 인정하고 그 밖의 나머지 재외국민들에게는 국민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면서, 2015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을 하지 않으면 위 조항은 201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그로부터 6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위 조항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을까? 그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에 대한 국민투표법 개정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국민투표법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에게만 국민투표권을 인정하고 재외국민에게는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일단의 재일동포들이 2004년에 공직선거법 및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위헌 결정을 받아내었고, 그에 따라 2009년 2월에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 해당 조항이 개정되어, 비로소 재외국민에게 공직선거권과 국민투표권이 인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을 개정하면서, 모든 재외국민에게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권을 인정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했으면서도,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위에서 본 대로 국내거소신고가 되어 있는 재외국민에게만 국민투표권을 인정하고 그 밖의 나머지 재외국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내용으로 국민투표법을 개정했다.

국회는 다른 법률에 앞서 국민투표법부터 개정해야


국회가 어떤 근거에서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의 투표권자 조항을 이렇게 다르게 개정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공직선거와 국민투표에 있어서 국내에 거소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재외국민을 차별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앞서 공직선거법 및 국민투표법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던 재일동포들이 또다시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특히 헌법 제130조 제2항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가결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의원 선거권자인 재외국민의 일부를 국민투표에서 배제하는 것은 헌법 제130조 제2항에도 배치되어 그 자체로 명백히 위헌인 것이다.

현재 국회는 이른바 검경수사권 완전분리를 위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맞서고 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이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런데 과연 국회를 제쳐두고 국민투표에 의해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현행법상 가능한지도 의문이고, 또 그것이 헌법 제72조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어떤 경우이든 현시점에서는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을 먼저 개정하지 않고는 국민투표 자체를 실시할 수가 없는 엄중한 상태라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이러한 국민투표법의 문제는 현 정부 초기에 헌법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때에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된 바가 있고, 또 국회에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몇 건 발의되어 있지만, 국회는 여전히 스스로 잘못 개정해서 생긴 국민투표법의 공백상태를 6년 4개월째 여전히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위임받은 대한민국 국회는 맡은 바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국회는 다른 법률에 앞서 국민투표법부터 개정해 놓아야 될 일이다.
#국민투표 #헌법불합치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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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관심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저작권(초상권,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문화컨텐츠 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외국민의 권리(국적회복권, 참정권 등)에 관한 것입니다. 위 문제들에 관해 간혹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매체에 기고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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