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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엄마를 위한, '아주 노란' 카레라이스

햇감자와 강황 그리고 옥수수까지... 익힌 당근은 굳이 넣지 않습니다, 왜냐면요

등록 2022.06.08 12:26수정 2022.06.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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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살며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딸이 만듭니다. 엄마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같이 먹는 일상이 엄마를 지키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기자말]
집안이 조용하다. 엄마와 다퉈서 말을 안 해서다. 아침엔 어제 남은 반찬을 대충 꺼내 먹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지금 내 마음이 말린 대추처럼 쪼글쪼글하다고 해도. 뭘 해 먹을까? 집에 있는 재료들을 떠올리다가 지난주에 햇감자가 좋다면서 카레를 만들어 먹자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포슬포슬한 햇감자로 만드는 노오란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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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pexels

 
이번엔 혼자서 슬쩍슬쩍 만든다. 엄마는 내가 카레를 만드는 줄도 모른다. 재료들을 모두 꺼내 씻고 다듬고 칼로 썰어 준비한다.

카레를 만들 때 우리 집만의 특별한 점은, 큰 통으로 사다 둔 샛노란 강황 가루는 추가하고 제주에서 왔다는 귤색 당근은 넣지 않는다는 것. 채소는 물로만 익히고 고기는 넣지 않는다. 캔 옥수수가 있으면 꼭 챙겨 넣는다. 

강황 가루는 치매 예방에 좋다고 TV에 자주 나와 벌써 사뒀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손이 가지 않으니 카레를 만들 때 잊지 말고 넣어야 한다. 당근을 빼는 것은 엄마 나이가 돼야 알게 될, 요즘 들어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바로 그것, 변비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장 활동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변비약 광고는 젊은 층이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뜨거운 싱어즈>의 김영옥 할머니와 '니들이 게 맛을 아냐?'던 신구 할아버지가 같이 나오는 이유가 다 있구나 싶다.

부지런한 엄마는 아침마다 몇 가지 채소를 갈아 먹는데도 화장실 가는 것이 생각보다 편하지는 않단다. 그래서 '익힌' 당근은 변비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 카레에 넣지 않는다. 

또 하나, 우리 집은 나 어릴 적부터 카레를 만들 땐 오로지 채소만 넣고 물로만 익혔다. 다른 집은 노란 카레와 어울리는 주황색 당근, 살짝 데쳐 초록이 선명한 브로콜리 그리고 감자, 양파 등을 돼지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들던데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가 들어가 기름이 뜨는 게 싫다고. 그래서 채소만 들어간 카레를 항상 먹었다. 나이가 들어 밖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어 보니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들어 있어서 이렇게도 먹는구나 했다.

또 엄마는 다른 음식은 나보다 더 간간하게 드시는데 카레는 묽고 싱거운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한다. 여기에 사다 둔 캔 옥수수가 있으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좋으니 마지막에 꼭 넣어준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단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날 때다. 노란색 포장지에 든 카레는 짠맛이 강하니까 겨울엔 무조건 고구마를 넣지만, 지금은 역시 햇감자다. 대신 양파를 듬뿍 넣고 달콤한 캔 옥수수 알갱이도 넣어주면 단짠(달고 짠 맛)이 돼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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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로 '스덴'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엄마한테는 아주 옛날부터 쓰던 것들이 많이 있다. 아직 쓸만한데 왜 버리냐며 잘 쓰는, 엄마의 오래된 스테인리스 그릇도 그중 하나다. ⓒ 박정선

 
​김치냉장고에서 잘 익어 먹기 딱 좋은 얼갈이 열무김치를 낸다. 엄마가 맛있다고 자주 사는 마른 아귀포는 뜨거운 김에 찐 뒤 파만 넣고 훌훌 섞는다.

마지막으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달걀프라이를 굽는다. 반숙으로 익은 노른자를 톡 터뜨려 밥과 함께 비빈 다음 얼갈이 열무김치를 숟가락에 올려 한입에 먹으면, '그래, 이맛이야!'가 된다.

끼니를 같이하는 소중한 사람, 식구(食口)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엄마가 힐끔 보고 간다. 가족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뭘 하든 관심도 보이지 않을 텐데. 어색한 자리를 피하려고 '배가 안 고파서' 또는 '약속이 있어서'라며 더 이상 권하지도 못하게 말을 막을 텐데.

하지만 식구는 그렇지 않다. 내가 밥을 차리면 엄마는 말없이 수저를 놓고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같이 먹기 시작한다. 설거지하려고 튼 수돗물이 느닷없이 튀어 "앗" 하는 소리가 나면, 달려와 걸레로 흘린 물을 닦아주고 옆에서 뒷정리를 도와준다.

언젠가 TV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가사를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소중해.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야 해."

아침에 엄마가 일어날 시간이 지났는데 기척이 없으면 긴장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늘 함께 계실 거라고 또 착각한다. 옆에 있는 동안, 소중하게 잘 지켜야 하는데 그걸 자꾸 잊어버린다.

말린 대추같이 쪼글쪼글한 내 마음을, 다시 펴야겠다.

나이 드신 엄마를 위한 카레 만들기

재료 : 햇감자 큰 거 2개, 양파 큰 거 반개, 캔 옥수수 반 통, 카레 가루 4숟가락, 강황 가루 1숟가락, 물 적당량(채소 데칠 때 + 카레 풀어 놓을 때 필요한 양), 달걀 2개

1. 햇감자는 포슬포슬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큼직하게 썰고 양파는 깍둑썰기한다.
2. 캔 옥수수의 국물은 버리고 물로 씻은 뒤 채반에 받쳐 둔다.
3. 카레 가루 4숟가락에 강황 가루 1숟가락을 물에 미리 풀어놓는다. (요즘 카레는 잘 풀려서 바로 넣어도 된단다)
4. 당근을 빼는 대신 다른 재료를 추가해도 좋다. 이왕이면 익었을 때 단맛이 나는 것이 더 좋다.

5. 냄비에 준비해 둔 채소를 넣고 물을 붓고 익힌다.
6. 채소가 다 익으면 미리 풀어둔 카레를 넣고 계속 저어준다.
7. 카레가 끓기 시작하면 옥수수를 넣고 저어가며 기포가 올라올때까지 끓인다.
8. 노른자를 반숙으로 익힌 달걀 후라이를 카레 위에 올리고 김치와 밑반찬을 함께 낸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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