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봄 부엌에는 고사리가 있었다

냉동실에서 묵은 고사리를 꺼내 육개장을 만들다

등록 2022.05.20 11:34수정 2022.05.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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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 피어오른 작고 여린 봄꽃의 아우성, 웅크리고 앉아 툭 하고 향기를 터트린 봄, 나는 봄의 소중한 생명 앞에서 경건해진다. 초록의 봄은 하루의 길이가 짧을 정도로 성급하게 다가와 하늘과 맞닿았다.


봄은 늘 그래 왔다. 대지의 경계선을 깨고 거대한 초록의 대륙을 만들어냈다. 여기저기 가시덤불 사이로 우후죽순 솟아난 이름 모를 꽃들의 이름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침묵의 시간을 깨고 대지로 달려온 초록의 희망을 이유 없이 봄과 함께 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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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자연을 보호하고 훼손를 막기 위해 고사리 채취가 금지 되어있다. ⓒ 김종섭

 
며칠 전 공원을 산책하다가 갓 피어오른 고사리를 아내가 발견했다. 고사리 모습이 어린 아이가 거머쥔 손을 닮아 있었다. 오늘 또다시 공원을 찾았을 때에는 풀 속에 듬성듬성 묻혀 자라나던 고사리가 어느새 덤불 틈 사이를 비집고 성숙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사리를 마주하는 순간 어머니를 먼저 생각해 냈다. 어머니의 봄 부엌에는 항상 산나물이 가득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앞치마에 고사리를 가득 품고 해거름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숨고를 여유도 없이 가마솥에 물을 끓여 고사리를 삶아낸 뒤 저녁 식탁 반찬에 쓰일 양만큼만 남겨 놓으셨다. 나머지 고사리는 뜰채로 건져 찬물에 헹구어 낸 후 물기를 빼고 햇살이 가득 모인 곳을 찾아 벼 망을 펴고 널어 놓으셨다.

"준우 아빠, 마침 돼지 뼈로 우려낸 국물도 있고 하니 오늘은 모처럼 육개장이나 만들어 먹을까요?"

아내는 산책길에 고사리를 목격한 후 저녁 반찬으로 고사리 육개장을 생각해 낸 듯했다. 냉동고에는 오래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보내주신 묵은 고사리가 있었다. 아내는 뼈로 우려낸 국물에 고사리와 숙주를 넣고 소박한 육개장을 만들어 저녁 식탁에 올렸다.


식탁에 놓인 육개장은 코끝을 타고 봄 냄새를 대신했다. 육개장이 입안으로 전해지는 순간 쌉쌀하면서도 구수한 산 내음과 어머니의 손길이 가득 전해져 왔다. 육개장을 만들고 남은 고사리는 한국 농장에서 직접 지배한 참나물과 함께 다음날 돌솥비빔밥의 재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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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상에 올라온 돌솥 비빔밥 ⓒ 김종섭

 
고사리는 지구 상에 제일 오래된 식물이자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서식하고 있는 일류의 식물이라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 일부 국가는 고사리를 인간의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야생동물의 먹잇감으로 자연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묻어 있다. 특히 캐나다는 고사리 불법 채취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혹시나 고사리 불법 채취가 발각이 되면 벌금을 물게 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고사리는 예로부터 의미 있는 음식으로 전해져 왔다. 제사상에 없어서는 안 될 제수 음식이자 국민 나물로 자리하고 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지도 모를 고사리를 가지고 맛을 음미해가고 극찬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을 향한 짙은 향수 때문은 아니었을까.
#봄 #어머니 #고사리 #캐나다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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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Daum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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