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학교 캠퍼스에서 깨달은 한국 장애인 시위의 현주소

등록 2022.05.26 17:02수정 2022.05.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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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캐나다 밴쿠버아일랜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한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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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U의 모든 건물에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원만한 경사로가 설치돼 있다. ⓒ 이아현

 
시민이 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권리를 누가 부여하는가. 아니, 애초에 '시민'으로 존재할 권리를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갖고 있긴 한 걸까.

"금일 예정된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휠체어 승하차)로 인하여 이용시민의 안전과 시설물 보호를 위하여 엘리베이터 운행을 일시 중지합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21년 12월 초,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붙어 있다고 인터넷을 통해 접한 문구다. 이 문구만 보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은 따로 있고 시위에 참석한 장애인단체 사람들은 시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시민이다. 여기서 '우리'란, 지난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해 온 사람들 전부를 포함한다. 그런데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 때문에 '이용시민의 안전'을 걱정한다니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을 시민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나 보다.

캐나다에 도착한 후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장애인의 이동 편의성이 보장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 캠퍼스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계단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건물과 건물 사이가 긴 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건물에는 완만한 경사로로 된 입구가 따로 있었고, 학교 안에서 멀리 이동할 때에도 계단 없이 오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 역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해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본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였는데, 앞문과 뒷문에는 계단이 없었고 기사가 버튼을 조작하면 차체의 앞부분이 푹 꺼졌다.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유아차나 보조 이동 장치를 끌고 다니는 비장애인들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캐나다의 그것과 다르다. 저상버스의 수는 터무니없이 적고, 그마저도 특정 노선에만 저상버스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일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지하철을 타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전동차 내 휠체어석은 자전거 거치대가 된 지 오래고, 휠체어의 작은 앞바퀴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며 탑승한다. 인명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에는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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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의 5월 13일자 트위터 게시글. 이날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선로 화재에 관해 아무 공지를 하지 않았다. ⓒ 서울교통공사 공식 트위터


진짜 문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향한, 어쩌면 장애인 전체를 향한 것일지도 모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시위로 인한 열차 운행 지연을 공지했다. 그러나 5월 13일 서울교통공사 트위터 계정에는 지하철 2호선 성수-뚝섬역 화재에 관해서는 일말의 언급조차 없었다.

불편함이 '불쾌함'으로 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전장연 시위를 비난하며 장애인혐오를 일삼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8조 제2항은 '누구든지 장애인을 비하·모욕하거나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영리행위를 하영서는 아니 되며, 장애인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전장연의 시위 때문에 출근길, 등굣길이 늦어지는 게 잠시라도 불쾌했다면, 무엇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으며 어느 것에 불쾌함을 느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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