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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때문에 버스도 못 타"... '씻을 권리' 외친 이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샤워실 설치' 요구,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등록 2022.06.02 11:25수정 2022.06.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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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울지부) 소속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정년퇴직자 발생에 따른 인원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는 교섭이 결렬됐고,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그중에서 독특한 요구조건도 보인다. 바로 샤워실 설치와 그것을 위한 '원·하청협의기구' 구성이다.

특히 청소노동자들이 샤워실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건 건강과 청결 문제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고 흘리는 땀을 씻어내기 위한 목적만으로 샤워실 설치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청소일의 특성상 노동자들은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때 자신도 모르게 유해·유독물질과 접촉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미 폐기된 상태라서 그 물질에 함유된 성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에 빠른 대처밖에는 답이 없다. 이때 중요한 건 유해·유독물질을 재빨리 접촉 부위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해·유독물질을 닦아낼 샤워실은 청소노동자에게 필수적이다. 고용노동부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의2에 명시된 대로, 노동자가 접근하기 쉬운 장소에 사용자는 세면·목욕시설 등을 설치해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이유다.

이와 더불어서, 샤워실 설치를 위한 '원·하청협의기구'까지 구성하자고 한 건 용역업체가 홀로 이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계약 구조상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소속된 채로 원청의 건물에서 일하므로 원청이 건물 내의 샤워공간을 내줘야 하고, 그 일에 또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제3자라고 한발 물러서 있는 원청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용역업체 소속인 청소노동자를 위한 샤워실 설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청소일을 맡기는 이유는 외주화의 최대 목적인 비용최소화를 유지하면서도, 건물에 쓰레기나 찌든 때 등이 쌓임으로써 발생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악취가 나는 건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인데, 18·19세기에는 악취가 질병을 유발한다고 믿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쨌든 건물 내의 악취는 건물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그것을 막는 일이 바로 청소다. 그럼에도 정작 그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의 땀 '냄새'를 제거하는 일에 원청은 방관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 이유는 뭘까? 단순히 설치비용의 문제 때문일까?

'신성한' 노동이라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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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잠시 일하다가 떠난 뒤 남은 3D 업장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숭고하다고 의미부여하는 것에 비해 상황이 열악하다. 샤워실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 pixabay


땀은 인간의 체온을 조절하고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들 들어, 여름이면 땀내 제거용품들이 시중에서 잘 팔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때의 땀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지만, 그 반대급부로 불쾌한 냄새까지 유발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것이 개인적인 영역 내에서라면 상관없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머무는 공간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불쾌한 냄새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대개 셋으로 나뉜다. 냄새 유발자에게서 벗어나거나, 냄새 유발자를 내쫓거나, 소수이지만 냄새가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참거나. 어쨌든 대부분의 냄새 유발자는 고립되기 일쑤다. 단적으로, 몇 달을 씻지 않은 듯한 홈리스가 지하철 안에서 역한 냄새를 풍길 때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섬유유연제나 섬유탈취제를 통해 옷에 향을 배게 하고, 샴푸와 비누를 이용해서 머리와 신체를 씻거나 값비싼 향수를 뿌리는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향'을 옷이나 신체에 '입히는 행위'는 악취가 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인 셈이다.

냄새는 단순히 후각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표준국어대사전)라는 뜻도 갖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 예시로 든 것이 가난뱅이 냄새, 부자 냄새, 사기꾼 냄새 등인데, 이때 냄새는 어떤 계급의 정체성을 포괄한다. 땀방울이 주로 노동의 가치로 포장되는 현실에서 땀은 결국 노동자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육체노동에 한정해서 말이다.

육체일은 대개 자국민조차 냉대하는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 집중되는데, 정치인이나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들이 그 일을 일회성의 이벤트를 통해 체험한 뒤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숭고함이나 거룩함으로 수렴된다. KBS 2TV에서 근 20년간 방영한 <체험 삶의 현장>이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사람들은 꼭 "직업의 귀천이 없다"면서도 육체노동을 대할 때면 유독 귀하다는 뉘앙스를 듬뿍 풍긴다.

사실 그들은 그 이벤트를 끝으로 3D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더 이상 만날 일도 없고, 그들이 흘리는 땀 냄새를 다시 맡을 일도 없다. 예컨대, 정치인들은 선거라는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노동현장에 잘 들르지 않는다. 결국 그동안의 땀은 그 냄새가 거의 제거된 상태에서 신성화된 측면이 강하다. 만약 모니터 안의 후각적 요소가 밖으로까지 전달되는 날이 대중적으로 도래한다면, 노동의 숭고성을 은유하는 땀이 정말로 숭고하다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

그들이 잠시 일하다가 떠난 뒤 남은 3D 업장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숭고하다고 의미부여하는 것에 비해 상황이 열악하다. <체험 삶의 현장>과 같은 방송에 나오는 출연자들 중에는 자신의 본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들이 이벤트성으로 체험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보다 훨씬 많은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곳에서 땀을 흘리면 어김없이 땀의 가치를 말했다.

어렸을 때는 왜 그 말을 할까, 궁금했었다. 누구나 하는 말이니까, 그냥 따라서 하는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야 든 생각이 있다. 만약 내가 그 방송에 출연했다면 터무니없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당장 떠오를 만한 긍정적인 말은 숭고하다는 말치레뿐이었을 것이다. 그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사실 어떤 일에 대해 신성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그 일이 신성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그 일례로 검사에게서, 판사에게서, 변호사에게서, 회계사에게서, 기타 등등 우리가 선망하거나 되고 싶은 직업 앞에서 신성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 일들은 우리가 바라는 직업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처럼 비 오듯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신성하다, 거룩하다, 숭고하다와 같은 추상의 가치는 3D 업종이 처한 현실의 실체를 완벽히 드러내지도 못하지만, 그 치부를 철저히 은폐하기도 한다. '냄새 없는 땀'이라는 모순적인 매개체를 통해 말이다. 그래서 땀의 가치를 말하는 부류는 대개 땀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거나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사용자의 시선에서 땀은 노력, 근면, 성실의 상징물로 비유되기도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땀의 가치를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땀 가치가 크면 그만한 값어치를 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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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이 터무니없는 노동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사실은 이 '악의 없는 배제'의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은 아닐까? ⓒ unsplash

 
나는 청소노동자를 많이 만나봤지만, 땀의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노동자는 본 적이 없다. 청소일을 며칠 체험한 학생들에게서 말버릇처럼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땀의 가치가 그렇게 크면 그만한 값어치를 주든가? 가치는 큰데 왜 주는 건 손톱만 하냐고." 그들은 땀방울의 가치를 말하는 대신에 여름이면 냉방이 잘되는 휴게실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많이 이야기했다. 하물며 선풍기라도 좀 설치해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있었다.

사실 그들은 추상적인 표현에 불과한 땀의 가치에 어떤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다. 그 가치라는 것의 반대급부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당사자에게는 땀이 그리 존중받을 만한 요소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터다. 그래서일까? 청소노동자들은 땀의 실체인 불쾌한 냄새는 물론이고, 땀의 대가인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모두 씻어내고 싶어 했다.

더 이상 참다못해 청소노동자들이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면, 관리자들은 이런 답을 주로 내놓는다. "집에서 씻으면 되잖아요." 사실 씻는 일이 관리자들의 대답처럼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 청소노동자 전용 샤워실이 없어서 학생들이 쓰는 샤워시설을 몰래 이용하던 서울권 대학의 한 남성 청소노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일하고 씻을 때랑 씻지 않을 때가 많이 달라. 버스 타고 지하철 탈 때 특히 그런 걸 느끼지. 집에 갈 때 몸이랑 옷에서 땀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나도 맡기 싫은 역한 냄새가 나는데 남들이라고 맡고 싶겠어? 코 막고 난리도 아니지. 냄새 때문에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내가 몹쓸 병에 걸린 사람처럼. 솔직히 우리끼리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 때도 땀 냄새 때문에 죽겠는데, 우리랑 관련 없는 사람들은 어떻겠어?

우리는 같이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하는데, 가끔은 나도 미치겠더라고. 같이 일하는 동료고, 뭐고,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심할 때가 있거든.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사람 미치게 해. 휴게실 문 닫고 있으면 땀 냄새, 겨드랑이 냄새(암내)가 진동을 해. 그래서 휴게실 문을 열어놓으면 또 직원들이 본다고 문 닫고 있으라고 해. 그러면 씻을 수 있게라도 해줘야지. 그래서 우리가 학생들 쓰는 샤워실 몰래 쓰는 거야. 나도 좀 살려고. 못 씻는 날에는 집까지 걸어갈 때도 많아. 그게 힘은 들어도 속은 편해."


세탁실도 샤워실의 연장이다. 몸에서 난 땀을 흡수하는 것이 바로 작업복이기 때문이다. 남성 노동자와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는 퇴근 전에 꼭 화장실에서 작업복을 세탁한 후 그녀만의 '비밀의 장소'에 몰래 널어두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근무복을 2개씩 주는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빨아놓고 가야 내일 출근할 때 말라 있어. 당장 입어야 하잖아. 내 옷 입고 그냥 일하는 거면 굳이 여기서 옷 빨 필요가 없지. 그래서 난 겨울이 좋아. 추워도 땀은 많이 안 나니까. 여름은 서 있어도 땀이 나잖아. 빨리 빨아서 말려야 돼. 집에 가면 늦어. 뭐 집에 가자마자 빨래부터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나도 사람인데 집 말고 밖에서 일 봐야 하는 상황도 있을 거잖아. 그러면 건조할 시간도 없어. 그렇게 되면 결국 냄새 나는 옷 입고 다음 날 또 일해야 돼. 그게 며칠씩 이어지면 나조차도 맡기 싫은 냄새 나는 거고. 그게 나한테는 물론이고, 남들한테도 안 좋을 거란 말이지. 우리같이 청소하는 사람들은 청결을 제1순위로 본다고. 그걸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일하는 우리가 오히려 더러우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 회사가 이런 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인데, 그냥 돈 아끼려고 혈안이야. 청소도 곧 서비스잖아. 서비스의 1순위가 뭐야? 단정하고 깔끔한 거 아니야?"


청소노동자에게 샤워실과 세탁시설은 샤워와 세탁 행위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쓰레기와 땀 냄새가 섞여 나는 걸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반대편에는 이들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악의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본능에 즉각 반응한 결과일지 모른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곳이 바로 후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이 터무니없는 노동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사실은 이 '악의 없는 배제'의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청소노동자는 냄새가 난다'는 편견을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악취가 나는 대상이 그렇듯, 그 편견이 누적된 결과물이 지금 청소노동자들에게 매겨진 값어치로 증명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땀에 배신당한 셈이다.
#샤워실 #청소노동자 #땀 #땀의 가치 #세탁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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