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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산불 진화에 걸림돌 된 곳... 또 짓는다고요?

[주장] 산불 관리 사각지대 송전선로... 구체적인 대비책 마련 시급

등록 2022.06.24 13:44수정 2022.06.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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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산불피해지 내 송전선로 ⓒ 녹색연합

 
불타는 숲 한가운데 송전선로가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지난 3월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에 녹아내린 365kv 송전선로입니다. 역대 최장시간, 최대 피해면적으로 기록된 울진삼척산불은 산지에 설치된 수십기의 송전선로를 태우고 한울핵발전소까지 번졌습니다.   

올해 발생한 대형산불 11건 중 3건이 송전선로 쪽으로 불길이 향하면서 진화작전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2월 발생한 영덕 산불과 6월 발생한 밀양 산불은 간신히 송전선로까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지만 울진삼척 산불은 발생 4시간 만에 송전선로와 한울핵발전소 부지까지 불태웠습니다. 산지에 위치한 에너지 시설은 산불 발생시 진화 역량을 분산시키고 대규모 정전과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시설입니다. 

핵발전소가 키운 울진·삼척 산불

지난 3월 4일, 울진군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최대 초속 25m의 강풍을 타고 3시간만에 한울핵발전소와 삼척 LNG기지 인근까지 번졌습니다. 이날 동원된 소방차 112대 중 40여대가 한울핵발전소와 LNG기지에 배치됐고 산림청 진화장비 대부분이 에너지시설 진화에 투입됐습니다. 3월 4일부터 6일까지 산불 초기 진화역량이 에너지시설 보호에 집중되면서 주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고 결국 진화가 늦어지며 화선이 넓어졌습니다. 

발전소와 1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은 4시간 만에 부지 안까지 번졌고 핵연료가 가득한 발전소 건물 바로 앞에서 간신히 진화됐습니다. 핵발전소 8기가 밀집해 있는 한울발전단지를 지키는 자체 소방인력은 소방차 2대와 25명의 소방대원이 전부였습니다.

한울핵발전소는 이미 2000년 4월 발생한 동해안산불로 송전선로가 고장나면서 비상정지 사고를 겪은 바 있습니다. 당시 삼척시에서 넘어온 불은 발전소와 불과 3km 떨어진 울진군 북면 나곡리까지 내려왔습니다. 이후 핵발전소와 송전선로에 자체적인 산불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여러차례 지적 받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산업부는 별다른 대책 마련 없이 20년 넘게 발전소를 운영했습니다.

대책없이 운영되는 송전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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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검성리 산불피해지에 위치한 365kv 송전선로 ⓒ 녹색연합

 
송전선로도 산불에 아무런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 3시간 만에 한울핵발전소에 연결된 송전선로 4개중 3개 노선이 송전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울-신영주345kv 단 1개 선로가 세 차례 정지 끝에 간신히 기능했습니다. 만약 한울-신영주 선로까지 기능을 상실했다면 전국단위의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3월 4일부터 10일까지 한울 핵발전소에 연결된 송전선로에서 총 51회의 고장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한울6호기는 전력공급이 중단되어 비상시에만 작동되는 디젤발전기까지 가동됐습니다. 


송전선로는 소방헬기 진입을 방해하며 산불 진화를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울진산불 진화에 참여한 산불진화헬기 조종사들은 "강풍과 연기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송전선로로 인해 목표지점으로 접근이 더욱 어려웠고 진화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능선과 계곡에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해야하는 진화헬기에 송전선로는 죽음의 철선과도 같습니다. 2017년 5월 8일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 과정에서 진화헬기가 송전선로에 기체를 부딪혀 정비사가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산지를 관통하며 설치되는 송전선로는 산불 진화를 방해하고 송전불능 상태에 빠지면 2차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시설이지만 산불에 대한 사전환경검토나 대비책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전력영향평가 규정에 따르면 송전선로 입지 선정시 검토해야하는 안전성 항목에 산불 위험성은 빠져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와 산지전용허가에서도 산불 위험성 및 산불 대비책은 전혀 검토되지 않습니다.

산불취약지에 에너지시설 늘리겠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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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신가평 500kv 송전선로 사업예정지 ⓒ 녹색연합

 
한반도에서 산불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곳은 강원경북지역입니다. 지난 10년 연평균 산불피해면적 1087ha 중 80.5%가 강원(551ha)과 경북(323ha)에 위치합니다. 

정부는 이미 대형 발전소와 송전선로로 포화상태인 강원경북지역에 발전시설을 추가 설치할 계획입니다. 202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4기가 건설될 예정이고 신한울 1,2호기가 운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산업부는 신규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 송전을 위해 '동해안-신가평 500kV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추진중입니다. 사업 계획에 따르면 강원경북지역 220km 구간에 500kV 송전탑 440기가 설치됩니다. 강원경북지역에는 이미 1만1600여기가 넘는 송전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국 송전탑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사업 설치 대상지 중 울진군, 삼척시, 봉화군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소나무숲이 발달한 곳입니다. 특히 울진군 소광리 일대 금강소나무 숲은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에서 소방대원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곳입니다. 2만ha가 넘는 숲에 지름 50cm, 높이 15m가 넘는 대경목 침엽수들이 밀집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침엽수 밀집지역 한가운데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것은 이 지역 산불 진화를 포기하고 주민들과 송전선로를 산불에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산불의 일상화와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재난 위험을 가중시키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산불 대비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부지 선정 시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의 밀도가 높은 지역은 에너지 시설 건설을 회피해야 합니다. 또한 주변부 산불취약지 진화 동선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부지를 선정하고 필요한 구간은 지중화를 해야합니다. 산불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산지보호뿐만 아니라 송전선로 안전성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입니다.
#산불 #송전선로 #원전 #송전탑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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