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지리산에 가서 인생을 배우고 왔습니다

지리산 실상사 템플스테이 ‘꿈 깨는 인생 학교’ 소감

등록 2022.07.18 09:59수정 2022.07.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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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 주말, 지리산 실상사 템플스테이 '꿈 깨는 인생 학교'에 왔다. 햇볕은 뜨겁고 경내는 고요하다. 한여름이다.

천왕문에 들어서기 전, 발길을 자연스럽게 붙잡는 곳이 있다. 천왕문 앞 연꽃밭. 연꽃이 이렇게 예쁜 꽃이었구나. 꽃보다 더 예쁜 연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멀리 휴휴당은 이 연꽃밭을 매일 이렇게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더 멀리 지리산이 연꽃밭과 실상사와 논과 밭, 그리고 산내 마을을 넉넉하게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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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천왕문 앞 연꽃밭 활짝 핀 연꽃과 연잎이 반갑게 맞아준다. ‘오느라고 애썼다.’ ⓒ 강부미


저녁 공양 후 실상사 식구들은 남원 시청 앞에서 매일 저녁 열리는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촛불 집회'에 가신다. 손팻말이 보인다. '지리산을 그대로! 산악열차 백지화!' 지리산을 지키는 사람들은 삼십 년 전에도, 삼십 년이 지난 오늘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리산에게 물어봤냐고? 반달곰에게 물어봤냐고? 산악열차를 만들어도 되느냐고!'


시범 노선 1km 공사가 확정되었다는데, 다급하고 초조하다. 곧 지리산이 파헤쳐질 텐데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까. 미안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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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실상사 공양간에 산악열차 반대 손팻말이 붙어있다. ⓒ 강부미


첫 번째 프로그램은 '내가 사랑한 꿈꾸는 나'이다. 선재 스님의 안내로 자신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고, 자기가 생각한 성공, 꿈, 행복을 위해 노력하다 좌절된 경험을 글로 쓴다. 글을 쓰기 전에 휴휴당 강당을 천천히 돌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명상하듯 걸으니 고요한 침묵 속에 내 인생의 장면들이 하나둘 보인다. 내 나이 스물한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이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가?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숱한 고민에 파묻혔던 그 시절 내가 보인다.

각자 자기 삶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기 인생의 기쁘고 슬픈 이야기,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는다. 아들과 함께 참여한 나 역시 엄마로서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공유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순간, 그 분위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갑옷을 벗기고 홀가분하게 만들어준다. 곁에서 도법 스님이 말없이 끄덕이시면서 따뜻하게 들어주신다. 잠들지 못하는 실상사 밤이 깊어간다. 템플스테이 이름이 왜 '꿈 깨는 인생 학교'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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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꿈 꾸는 나’ 내 인생 그래프와 이야기를 참가자들과 나눈다. ⓒ 강부미


둘째 날, 아침 6시 반야전에서 '생명평화 백대 서원 좌선 명상'을 한다. '생명평화 백대 서원'은 21세기 세계 시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오래된 미래의 길이다. 도법 스님의 책 <붓다, 중도로 살다> 마지막 부분에서 읽었다. 유튜브에서 음원을 검색하고 집에서 혼자 절명상을 생전 처음으로 해 봤다.

모든 생명은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할 때만 그 존재 자체가 가능하다. 명상 CD에서 흘러나오는 도법 스님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서원은 '주체적으로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로 시작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이 말씀이 떠오른다. '아, 이래서 모든 종교는 그 뿌리가 닿아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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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실상사 느티나무 뒤 약사전 새벽 불빛이 따뜻하다. ⓒ 강부미


아침 울력은 휴휴당 마당 풀 뽑기다. 선재 스님은 풀 뽑는 것 하나도 수행이라고 하신다.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히 다루어야 하거늘, 풀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고, 뿌리에 묻은 흙은 잘 털어서 땅에게 돌려주라고 하신다. 우리는 말없이 풀을 뽑는다.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이내 생각의 뿌리가 뽑힌다. 신기하다. 내가 뽑고 있는 것은 분명 풀인데 생각이 가벼워지다니…. 사방이 고요하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 파묻혀 산다. 계획을 세우고, 팀을 구성하고, 반복되는 회의를 하고, 실행하고, 반성하고, 또 다른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하는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통찰이 들어갈 틈이 없다. 울력 시작 전과 후 둥그렇게 서서 서로 마주하고 합장 반배를 한다. 이 단순한 행위가 프로그램의 본질을 통찰하게 한다. 소박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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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울력 풀 뽑기 풀을 뽑으며 마음의 번뇌를 뿌리째 뽑는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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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울력을 마치고 선재 스님은 풀 뽑는 것 하나도 수행이라고 하신다. ⓒ 강부미


맛있는 아침 공양을 하고 8시 30분, '하루를 여는 법석'에 가기 위해 반야전으로 향한다. 5분 전인데도 사람들이 서둘러 뛴다. 신문에서 읽은 법인 스님 글이 떠오른다. 나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5분 전 착석 문화를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뛴다. 이것이구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정직한 사유의 힘이다.


실상사에는 수직적이라는 말도, 수평적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 대신 둥그런 것이 많다. 공양간의 둥근 식탁에는 스님들과 일반 대중들이 분별없이 어울려 공양을 한다. 그 덕분에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스님들 곁에서 격이 없이 공양을 할 수 있다. 아침 법석도 둥그렇게 마주 앉아서 법문을 읽고, 기도하고, 절을 올린다. 이런 문화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아마도 진심을 다한 대화의 산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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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법석 실상사의 아침 법석은 사부대중이 둥그렇게 원으로 둘러앉는다. ⓒ 강부미

 
'내가 사랑할 꿈에서 깨어난 나', 첫날 저녁 참가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신 도법 스님의 귀한 법문을 듣는다. 한 말씀도 놓칠 수 없다. 도법 스님은 특유의 화법으로 어려운 불교 공부, 인생 공부를 한없이 쉽게 쉽게 전해 주신다. '인생이란 뭐야? 나는 누구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해?' 하나의 등불을 밝히는 순간 천년의 어둠이 즉각 사라진다.

스님의 법문은 즉각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도법 스님의 말씀은 '언어도단'도 '불립문자'도 피해 간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보니 사람이 그대로 오롯한 붓다이네.' 이렇게 시작한다. 마치 도법 스님 법문을 두고 만들어진 구절 같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언젠가 너무 궁금해서 법인 스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법인 스님, 도법 스님의 그토록 쉬운 법문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공부가 된 사람일수록, 말은 쉬워지고, 눈빛은 선해지며, 성품은 유쾌해지고, 발걸음과 몸동작은 힘이 빠지면서 가벼워집니다. 도법 스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첫째는 정직함입니다. 편견, 아집, 사심이라고는 없는 품성이십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셋째는 탐구, 현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탐구하고 통찰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법인 스님의 눈빛에서 도법 스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 도무지 이분들은....

점심 공양 후, 도법 스님이 가꾸시는 극락전 풀꽃밭에 들렀다. 꽃과 풀이 어우러져 선택과 소외가 없고 삶이 화목하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곳, 화엄 세상이다. 도법 스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때요? 삶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다툼도 차별도 없는 삶, 그 삶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누릴 수 있다면, 어때요? 삶은 그것으로 충만하지 않나? 안 그런가? 나만 그런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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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마당의 풀꽃밭 소박한 격조가 도법 스님을 그대로 닮았다. ⓒ 강부미


'내가 살아갈 자유로운 나', 도법 스님의 즉문즉답 시간이다.

"우리 인간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행하는 대로 즉각 즉각 새롭게 창조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존귀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감하게 매 순간 정신 바짝 차리고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다면, 그 삶은 괜찮은 삶입니다. 답은 우리 안에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앎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도가 있으면 말이 논밭에서 거름을 나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도가 없으면 말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주역) 도가 있다는 것은 진리가 있다는 희망의 조건입니다. 진리가 있다면 행복, 평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생명평화 백대 서원'의 첫 구절인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다시 연결된다.

"거듭거듭 관찰 사유하고 매 순간 내가 더 인간다워지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면서 '완성도 높은 개인'이 되어간다면, 분명, 이 사회는 '완성도 높은 사회'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의 과정이 목적이고 결과입니다."

"삶은 해석입니다. 인생길 곳곳에는 많은 돌부리가 박혀있습니다. 누군가는 걸림돌이 되어서 걸려 넘어지고, 누군가는 디딤돌로 삼아서 도약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걸림돌이었지만, 미혹의 어두움에서 깨어난 밝은 세상에서는 디딤돌로 딛고 정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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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앞마당 ‘지리산 마을 절 실상사’는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품어준다. ⓒ 강부미


셋째 날, 아침 6시 '생명평화 백대 서원 절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둥그렇게 자리 잡고 서로 마주한다. 도법 스님 절명상 음성을 들으면서 천천히 배운 대로 절을 한다. 절하는데 오롯이 집중하니 백대 서원을 음미하게 된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의 병과 근심이 잘못된 소견과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여실히 알려준다.

몸이 힘들면 쉬었다 해도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마지막 백 번째 서원은 '내가 밝힌 생명평화의 등불로 온 누리의 생명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절을 올립니다.'이다. 마지막 절을 올리면서 세상이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새로운 꿈을 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머무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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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백대 서원 절 명상 수행은 진리가 현실의 삶이 되도록 하는 반복하는 실천이리라. ⓒ 강부미


실상사 둘레길 산책을 나선다. 법인 스님과 스님의 도반 다동이가 동행해 준다. 산내 마을 분들은 우리를 다정하게 맞아주신다. 정답고 살가운 대화가 기분 좋다. 법인 스님과 2박 3일을 마무리하는 차담을 가진다.

"우리는 생각과 말에 갇혀 사는 일이 많습니다. 삶은 우리가 가두고 있는 지식과 논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어떤 것일까요? 행복하고, 유쾌하고, 새롭고 신선하게 삶을 구체적으로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깨어야 할 꿈은 무엇일까요? 또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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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둘레길 산책 약수암 삼거리를 지나서 화림원까지 법인 스님, 다동이와 함께 걷는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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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둘레길 산책 산내 마을 어른들과 만나서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 강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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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는 인생학교’ 마무리 법인 스님과 삶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나누는 마무리 차담 시간 ⓒ 강부미

#지리산실상사 #템플스테이 #꿈깨는인생학교 #도법스님 #법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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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초등수석교사, <가르침을 멈추니 배움이 왔다>, '배움의공동체 연구회' 회원으로 아이들, 선생님들과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다양한 실력이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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