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학생 참여 '김주열 열사 역사탐방', 생생한 기록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역사탐방 백서> 펴내 ... 2021년 60여 차례 진행

등록 2022.07.18 09:25수정 2022.07.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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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기념관에 정치인들이 왔다. 정치를 잘 했으면 김주열과 같은 열사가 나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시신 인양지에 왔더니 동상이 세워져 있다. 비록 동상이기는 하나 마산에서 우리랑 같이 살아갈 것이다. 자주 와야겠다."

이윤서 학생(중1)이 "김주열 열사 역사 탐방"을 하고 쓴 글이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회장 백남해)가 경상남도교육청, 창원시의 후원으로 지난해 벌였던 '역사탐방'의 기록을 정리한 <백서>를 이번에 펴낸 것이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주열(金朱烈, 1944~1960년)는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입학하기 위해 마산으로 왔고, 시민들이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시위를 벌였고 이때 행방불명되었다.

그의 시신이 같은 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고, 시민들이 "고문경찰 잡아내라", "살인경찰 처벌하라", "죽은 학생 살려내라"고 외치며 '3‧11민주항쟁'을 벌였다. 이는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김주열 열사는 호남(남원)의 아들로 태어나 영남(마산)에서 마지막 생을 마친 민주열사이자 동서화합의 상징적 존재"라며 3‧15민주묘지, 남원 김주열열사공원, 시신인양지(경남도 문화재 제277호), 남원 생가‧묘소를 둘러보는 '청소년 역사탐방'을 벌였던 것이다.

김주열 열사의 흔적을 더듬은 청소년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배주현 학생(초등 5년)은 "진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 장소에 가서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이라며 "시신인양지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처음에는 슬펐다. 다시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졌다. 지금 김주열 열사한테 '괜찮다'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산 앞바다에 왔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1960년 4월 이곳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으로 엄청난 파도가 치지 않았을까. .. 공부를 했으니 이젠 김주열님을 잊지 않아야겠다. 역사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배서영, 초등 5년).


"김주열열사 묘지와 기념관에 들러 참배하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울컥'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세상이 없도록 나부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알리고 해야 할 것 같다. 하나 되어 갈라짐 없는 그날까지 힘 내자"(참가자 메모).

"나는 이승만처럼 자기 욕심 때문에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김주열열사께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 주셔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세호, 초등 6년).

이번 탐방에는 김영만 상임고문, 김숙연 대표, 이춘 작가가 안내를 맡기도 했다. 또 여러 단체에서 성인들도 창원마산과 남원의 역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벌였던 탐방 횟수는 60여 차례 정도였다.

백남해 회장은 "진정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 한 명 한 명이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그날의 뜨거움을 느끼고 체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바로 여기에 그 생생한 기록이 있다. 60여 차례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의 땀과 숨결이 묻어 있고, 감동의 후기가 살아서 펄떡이는 책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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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에서 펴낸 <2021 김주열열사 역사탐방 백서>. ⓒ 윤성효

#김주열 열사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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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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