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은 '북간도 제1의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였다

봉오동 공간을 전투현장이자 군사기지로서 기억해야

등록 2022.08.23 09:53수정 2022.08.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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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3일 오후 3시 14분]

흔히 봉오동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일본군 대대 병력을 괴멸시킨 봉오동전투(1920) 장면을 떠올린다. 임시정부에서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으로 선포하고 1921년 신년하례식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들뜬 분위기에 발맞춰 봉오동전투(1920. 6)를 '독립전쟁 제1회전'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봉오동은 일본군 정예부대에 맞서 대승을 거둔 봉오동전투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지만 독립군을 양성했던 '북간도 제1의 군사기지'였다. 마치 서간도 류하현 삼원보에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가 존재했듯이 북간도 왕청현 봉오동엔 독립군을 체계적으로 훈련시켰던 봉오동사관학교가 존재했다. 당대 봉오동은 '북간도 제1의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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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을 전투현장이자 군사기지로 분석한 제7회 학술세미나 포스터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2022년 6월 2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제7회 학술세미나 포스터(출처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 제공)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 제공

 
'최운산 장군기념사업회'가 올해 6월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제7회 학술세미나에서 이 부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육사 출신 국방대 김영환 박사는 <독립군 군사기지 '봉오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평가>라는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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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학술세미나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7회 학술세미나에서 국방대 김영환 박사는 구글어스를 활용해 봉오동이 전투현장이자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였음을 입증했다.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 제공

 
동아시아 최고 전투 능력을 자랑하던 일본군 정예군대와 맞서 무기와 전술, 전투 능력에서 그 우수성을 보여준 봉오동전투가 실은 오랜 훈련의 결과였음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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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어스로 밝혀낸 연병장과 병영막사 추정지 국방대 김영환 박사가 구글어스를 활용해 논증한 봉오동사관학교 3,000평에 이르는 연병장터와 수백명이 숙영했던 3개동 병영막사터 ⓒ 김영환 박사 제공

 
특히 구글어스를 활용해 연병장과 병영 막사를 밝혀냄으로써 봉오동에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인 봉오동사관학교가 존재했음을 논증했다. 기존 연구 결과를 통해 최진동-최운산 형제들이 1910년을 전후해 왕청현 일대 토지를 대규모로 개간해 소유하였음을 재론했다. 봉오동이 위치한 왕청현 일대 도문, 석현, 양수천자, 서대파, 십리평 일대 전체가 북간도 제1의 거부 최운산 장군 소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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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상촌, 중촌, 하촌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떨어진 공간으로 왕청현에서도 오지였다. 그러나 주변 험준한 산새로 인해 하촌(저수지) - 중촌(학교) - 상촌(봉오동전투 현장) 으로 이어지는 20리길 골짜기 분지 지형으로 천혜의 군사요새지로 거듭났다.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공

 
특히 봉오동은 구불구불 갈 지(之)자형으로 20리에 걸쳐 하촌-중촌-상촌으로 이어지는 길게 형성된 골짜기 분지 지형이다. 그 봉오동 골짜기를 백두산 지맥인 고려령 험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1500고지가 넘는 험준한 산새로 인해 봉오동은 천혜의 군사기지로서 안성맞춤인 절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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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사관학교 연병장과 병영막사 국방대 김영환 박사가 구글어스를 활용해 봉오동무관학교 연병장과 병영막사 추정지를 발표하는 모습.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공

    
그곳에서 최진동-최운산-최치흥 3형제는 봉오동 중촌에 3000평에 이르는 연병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773평, 894평, 450평에 이르는 거대한 병영 막사 3개동을 지어 조선인 청년들 수백 명이 오랜 기간 군사훈련과 병영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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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사관학교를 생생하게 재구성한 <어느 독립군의 일기> 책 표지 2020년 정상규 연구자가 봉오동사관학교 군의로 활약한 한의사 출신 독립군 신홍균에 대해 쓴 <어느 독립군의 일기> ⓒ 하성환

 
젊은 역사연구자 정상규가 쓴 <어느 독립군의 일기>(2020)에 나오듯이 한의사 출신 봉오동사관학교 군의관 신홍균은 훈련과정이 무척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했다. 기초훈련인 체력, 제식훈련부터 고급훈련과정인 사격훈련까지 실전처럼 엄격하게 진행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봉오동 중촌엔 공립 제3학교를 지어 학교를 운영했다.

실제로 러시아와 무역을 결행했고 러시아어에 능숙했던 최운산 장군은 러시아 교관을 초빙해 조선인 청년들을 실전처럼 훈련시켰다. 나아가 자신이 북간도에서 운영하던 국수공장, 성냥공장, 주류공장, 비누공장, 콩기름공장, 과자공장을 비롯해 여러 생필품 공장을 운영한 수익금을 최신형 무기 구입에 쏟아부었다. 홍범도나 소비에트 기병대위 강필림(姜弼林)을 통해서 무기 구입이 이뤄지거나 체코병단으로부터 대량으로 무기를 구입하였다.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은 유효사거리가 750m로 당시 일본군 19사단이 소유한 아리사카 소총 유효사거리 550m보다 훨씬 뛰어났고 화력 또한 우수했다. 거기다 그 시대 최고 화력을 자랑했던 맥심기관총과 대포까지 보유했으니 정규군대와 똑같은 전투력을 지녔다. 봉오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대한북로독군부' 독립군들은 당대 첨단을 달리던 최신식 무기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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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제1의 거부 최운산 장군이 소유한 토지의 직선거리 최운산 장군이 소유한 왕청현 일대 토지를 직선거리로 나타낸 자료이다. 최운산 장군은 북간도 대토지 소유자이자 제1의 거부로 최운산 장군이 소유한 북간도 일대 땅은 3일을 걸어도 다 밟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광활했다.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공

 
그 모든 것이 최운산 장군이 소유한 재산에서 충당되었다. 김좌진이 지휘한 북로군정서 병영지 서대파와 북로군정서 군관을 길러냈던 사관연성소가 위치한 십리평 모두 최운산 장군 소유 토지였던 것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실제로 북간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안중근, 이상설, 이준, 김좌진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지사들 절대다수가 최운산 장군의 재정 지원을 받아 활약했다.

실제로 최운산 장군 부인 김성녀 여사는 통합부대 숙영 당시 한끼에 3000명분 식사를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김성녀 여사를 비롯해 독립군 부인들은 직접 러시아에서 사들인 미싱을 밤새 돌려 중국군 복장과 비슷한 독립군 군복을 제작했고 여성들 스스로 독립군이 되어 총기를 다루며 사격훈련을 받았다.

봉오동무관학교는 1915년 도독부 창설을 즈음해선 병력 인원이 5백 명에 이르렀고 1919년 3‧1운동 직후엔 670명이 넘는 대병력으로 무장하였다. 부대 명칭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 정식군대인 '대한군무도독부'였다. 이후 최진동, 최운산 장군이 지휘한 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 안무 국민회군, 홍범도 부대 등 6개 독립군 부대가 통합해 1920년 5월 19일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가 탄생했다.


그리고 '대한북로독군부'는 6월 7일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를 섬멸하는 대승을 거뒀다. 당시 봉오동전투 승리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 사령관은 최진동 장군이었고 참모장은 최운산 장군이었으며 셋째 최치흥 장군은 작전참모였다. 김좌진 장군은 제1연대장으로, 홍범도 장군은 제2연대장으로, 그리고 오하묵 장군은 제3연대장으로 활약했다.

봉오동을 기억할 때 이젠 '봉오동전투 현장'으로만 기억할 게 아니다. 봉오동무관학교를 세워 8년에 걸쳐 수많은 조선 청년들을 먹이고 입히고 실전처럼 훈련시키며 독립 군관을 길러냈던 '북간도 제1의 군사기지'로서 봉오동을 기억할 일이다. 그러할 때 봉오동 공간이 지니는 역사상 의미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 서간도에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로서 신흥무관학교가 존재했듯이 북간도엔 봉오동무관학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봉오동전투 #최운산 #최진동 #봉오동무관학교 #독립군 군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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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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