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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1시간 10분, 장례전담 공무원이 떠나 보낸 '수원 세 모녀'

[현장] 눈물 사라진 '마지막 배웅'... 문상객은 공무원, 시설관리공단 직원, 기자

등록 2022.08.26 17:56수정 2022.08.2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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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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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시간 10분.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 세 모녀가 화장 절차를 마치고 봉안되기까지 걸린 이 시간은 이들의 방치된 병과 죽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생전 어머니 A씨는 암 투병으로, 큰 딸 B씨는 희소병으로 고통받았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오랜 시간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수원 세 모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친척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 공영장례로 치러진 이들의 마지막은 수원시 위생정책과 장묘문화팀 등 지자체 공무원들의 주도로 진행됐다.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부터 화장장인 연화장까지 A씨의 위패를 모신 김주희 주무관은 "보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 소요되는데 시신 발견이 오래되셨다보니 세 분 모두 (화장이) 빨리 끝나셨다"고 말했다. 

[마지막 시간] 오열 없는 '화장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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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유성호

 
이들의 마지막 배웅엔 '눈물'은 없었다. 20여 명의 공무원과 시설관리공단 직원, 취재진이 마지막 문상객이었다. 발인식은 위생관리팀 직원들이 위패를 들고 차례로 장례식장을 천천히 걸어나오는 것으로 대체됐다. 제단 위에는 누군가 놓고간 검은콩 두유와 바나나맛 단지우유 2개, 부의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부의를 받지 않는 공영장례 규정상 기탁될 예정이라고 했다. 

여느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모두 멈춰 있었다. 음식을 장만하는 싱크대 위엔 빈 쟁반이 놓여 있었고, 물티슈며 주걱, 가위, 티백, 담요 등 구비 물품은 새것 그대로 남아 있었다. 조문을 관리해 온 공무원에 따르면, 세 모녀의 장례식엔 약 250명의 조문객이 왔고, 그중 50여 명이 일반 시민이었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분들은 정치인, 기자, 관공서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배웅] "험하게 가네" 오열 대신 탄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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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시신이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 승화원에서 화장을 하기 위해 운구되자, 공영장례 지원에 나선 수원시 공무원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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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화장 절차가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 승화원에서 진행되자, 공영장례 지원에 나선 수원시 공무원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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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화장 절차가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 승화원에서 진행되자, 공영장례 지원에 나선 수원시 공무원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유성호

 
"A님 맞죠?"

장례식장을 떠나 화장장으로 가는 길, 윤명환 장묘문화팀장이 차량 안 고인들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고인들의 관은 수원시 공무원 4인과 장례식장 관계자 2인이 함께 운구했다. 장례식장에서 마련한 흰색 카니발 응급출동 차량에서 바퀴 달린 들 것이 나왔다. 

막내딸 C씨의 관이 오르는 것을 끝으로 약 10분만에 모든 발인 절차가 끝났다. 좁은 골목길에 차량 세 대가 줄지어 나서는 길, 앞뒤로 "빵빵" 대던 차량들은 관이 실리는 모습을 보고 후진하거나 차를 돌려 길을 냈다. 


친척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주무관은 무연고 가족들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시신 인수를 기피하는 경우가 70~80%가 된다. 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라면서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장례비가 문제가 아니라... 남은 병원비 정산해야 한다는 우려가 크다. 생전 생활고도 워낙 있으셨으니까..."라고 말했다. 

"아이고..."

화장장에선 고인보다 바로 앞서 화장 절차에 들어간 다른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가족들의 오열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검정 리무진에 오른 고인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화장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유족 대기실에서도 황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상에..."

화장을 위해 화로로 운구된 세 모녀의 마지막 길에는 오열 대신 한 시민의 탄식이 있었다. 다른 가족의 조문을 위해 연화장을 찾은 이 시민은 "저런 사람들은 정말 안타깝다"며 "아이고, 너무 험하게 간다"고 읊조렸다. 

지난 25일에도 장례식을 찾았다는 김정숙씨는 연화장에도 마지막 인사를 왔다. 김씨는 이날 장례식장에서 "가슴이 차가워지는 시대에서 '괜찮을 거야' 말해주고, 끌어줄 이웃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동사무소로 가도, 법적으로 안 되는 부분도 많다. 시민단체나 직능단체로 연결해줬으면 하고, (사각지대 있는 사람들을) 지켜줄 이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인부터 봉안까지, 고인들의 장례 절차는 오후 3시께 모두 끝났다. 가장 마지막 순서는 영정 대신 모신 위패 속 이름이 적힌 지방을 태우는 일이었다. 이 일은 공무원 경력 30년, 무연고 장례 지원 담당 10년 경력의 윤 팀장이 마무리했다. 그는 앞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금까지 본 사건 중) 제일 안타까운 사연이다"라고 씁쓸해했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은 주소지 중심의 복지 정책으로 빚어진 참사로, '신청주의'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사는 곳은 수원시이지만 주소지는 경기도 화성시로 기록돼 있어 기초 '위기 경보'인 건강보험료 27만 원 체납 사실이 감지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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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유골함이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 봉안담에 안치됐다. ⓒ 유성호

#수원세모녀 #복지정책 #장례 #발인 #복지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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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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