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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같은 전쟁, 강화도에서 있었다

[돈대를 찾아가는 길 21]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진 초지돈대

등록 2022.10.02 17:10수정 2022.10.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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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상황이었던 2021년 가을, <오징어 게임>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우리나라의 놀이 문화를 빌려와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 드라마에는 여러 놀이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땅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그림을 크게 그리고 편을 갈라 공격과 수비를 하는 오징어 게임은 특히 더 비정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마을 빈 터에 모여 오징어 게임을 했다. 공격과 수비로 편을 가른 다음 치고 박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공격자는 오징어의 몸통과 머리 부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부분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목'에 해당하는 이 부분을 건너뛰어 통과해야 살아남는다. 수비자들은 공격 팀이 목을 건너뛰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는다.

오징어 게임과 길목

오징어 게임은 다른 놀이에 비해 과격했다. 살아남기 위해 온 몸을 던져야 했고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끌어당기고 잡아채는 과정에서 옷이 찢기기도 하고 손톱에 할퀴어지기도 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의 현실이었지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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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돈대 전경 ⓒ 문화재청

 
1871년에 강화도에서 미국과 조선이 벌인 전쟁은 오징어 게임과는 달리 현실 상황이었다. 강화도는 포연이 자옥한 전장이 되었다. 서해에서 조선의 심장인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강화도는 그야말로 '목구멍'이었다. 강화도가 점령당하면 조선은 심각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적을 막았다.

신미년에 미국과 벌인 전쟁이라고 해서 '신미양요'라고 부르는 그 전투는 강화해협의 아래쪽인 초지진과 덕진진 그리고 광성보에서 벌어졌다. 강화의 동쪽 바다인 '강화해협'은 '염하'라고도 불리워지는데 길이가 불과 20여km밖에 되지 않는다. 건너편인 김포와의 거리도 1km도 채 되지 않으니 바다라고 하기 보다는 강에 가깝다.

이 짧고 좁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진지들이 구축되었으니, 초지진도 그중의 하나다. 초지진은 강화의 12진보(鎭堡) 중 하나로 1656년(효종 7) 경기도 안산(安山)에 설치되었다가 1666년(현종 7) 강화도로 옮겼다.

강화도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가 있었다. 현대의 대대와 중대급 규모의 이 군사조직에는 그 규모에 따라 종3품의 첨절제사와 종4품의 만호, 종9품의 별장이 장수로 배치되었다. 초지진에는 방군 11명, 군관 19명, 토병 88명 등 총 118명이 배속 되어 있었다. 또 보유하고 있는 배도 3척에 달했다. 이로 살펴봤을 때 초지진의 규모는 상당했을 거로 추정된다.

신미양요와 초지진

초지진에는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가 속해 있었다. 세 돈대 모두 강화해협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었다. 그러나 돈대 앞의 갯벌을 메꿔 평야가 되자 섬암돈대와 장자평돈대는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성벽 돌은 제방 둑을 쌓는데 이용되었고 돈대는 버려져 있다시피 했다. 이후 두 돈대는 터만 남기고 사라졌다.

두 돈대와 달리 초지돈대는 존속했다. 초지돈대는 역사의 격랑을 온 몸으로 헤쳐 나갔다. 1871년 신미양요와 1875년 운요호 사건 때 초지돈대는 쏟아지는 포탄을 맞으며 이 땅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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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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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 이승숙

 
지난 8월 말에 초지돈대를 보러 갔다. 함께 간 사람들이 '초지진'은 알지만 '초지돈대'는 처음 들어본다며,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지돈대는 있어도 없는 존재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돈대가 초지돈대다. 초지진이 바로 초지돈대이기 때문이다.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는 초지진은 우리 역사 속에 여러 번 등장한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프랑스 및 미국 함대와 싸웠고, 1875년(고종 12년)에는 연안을 마음대로 측량하고 다니던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무력 충돌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일명 강화도조약으로 불리기도 하는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맺게 되었으며 그 뒤 우리나라는 일본의 손아귀에 빠지는 불행한 역사를 겪기도 한다.

초지진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의 포격으로 군기고와 화약고, 진사가 모두 파괴되었다. 그 후 복구하였으나 1875년에 일본 군함 운요호와 벌인 포격전으로 초지진은 다시 파괴되어 폐진 되었다. 초지돈대도 그때 파괴되어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초지돈대, 초지진 되다

1973년 강화 전적지 정화사업 때 초지진 인근의 초지돈대가 복원되었고, 이를 초지진으로 불렀다. 실제의 초지진은 조선시대 고지도 등을 참조해 봤을 때 현재의 초지돈대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육군박물관이 초지진 터를 조사했을 때 초지돈대에서 북쪽으로 200m 떨어진 해안 언덕이 초지진 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초지진 복원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초지진 터는 이미 민간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단석과 성벽 일부가 남아있던 초지돈대를 복원하고 초지진이라 불렀다. 분명 잘못된 일인데도 아직도 오류를 고치지 않고 있다. 초지진을 설명하는 안내문 등에는 초지돈대를 여전히 초지진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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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화도에 배치되었던 대포 ⓒ 이승숙

 
현재 초지진으로 불리는 초지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보장지처(임금이 피난하는 곳)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은 조선 조정에서는 강화도를 요새화 한다. 당시 병조판서 김석주의 주도로 강화 해안 98km를 따라 모두 48개의 돈대를 만들었다.

돈대는 해안 감시 및 방어를 위한 군사 시설로 규모가 작은 성곽에 해당한다. 둘레가 약 110m~120m에 달하고 성벽의 높이도 4m 내외에 달할 정도의 돈대를 한두 개도 아니고 48개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1만50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석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완공했으니 국가적인 대사업이었다.

초지돈대도 그때 만든 돈대 중의 하나다. 대개의 돈대들이 원형이나 네모난 모양인데 반해 초지돈대는 삼각형 모양이다. 땅 모양새를 따라 돈대를 축조했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 되었으리라. 한 변의 너비가 38m 내외이며 둘레는 114m에 달한다. 복원된 성벽의 높이는 4.2m나 된다. 

역사를 증언하는 소나무

초지돈대는 신미양요와 운요호사건의 역사적 무대로 유명하다. 성벽과 돈대 밖에 있는 소나무에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케 한다.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면서 초지돈대는 많이 파괴되고 손상되었다. 폐허로 버려져 있다시피 한 것을 197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 초지돈대는 돈대 문과 3개의 포좌, 그리고 여장까지 갖춘 형태로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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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앞 소나무에 남아있는 포탄의 상흔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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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의 소나무 ⓒ 이승숙

      
초지돈대 성벽에 올라 눈 앞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양으로 들어서던 길목이었던 강화도와 강화해협이었다. 이 좁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천지가 진동하며 울어댔을 그 날을 그려보았다.

성벽 앞에 우뚝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를 올려다봤다. 치열했던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포탄을 온 몸으로 받았던 소나무들이다. 그때의 흔적을 말끔히 다 씻고 소나무는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지나간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초지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 입지 : 해안과 인접한 돌출부 평탄면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너비- 각 변 38m내외. 둘레 - 114m. 복원 성벽 높이 - 4.2m 내외
- 형태 : 삼각형
- 문화재 지정 여부 : 사적 제 225호
- 보수 이력 : 1973년 복원
- 시설 : 문 1개, 포좌 3개, 여장
덧붙이는 글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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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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