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노출 노동자 보호... 독일노조의 기후위기 대응 보니

"국가, 미래세대 기후위기로부터 지켜야" 독일 헌재 판결 뒤 달라진 노동계 분위기

등록 2022.09.16 11:17수정 2022.09.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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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6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이산화탄소를 뜻하는 'CO2' 모양의 구조물에 불을 붙여 밝히고 있다. 이날 활동가들은 독일에서 열리는 제12회 페테르스베르크 기후 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더 적극적인 기후 변화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2021.5.6 ⓒ 연합뉴스

 
그동안 서구의 노동조합은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고용 문제 때문이었다. 실제로 에너지 전환은 석탄산업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친환경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의 구동장치 관련 일자리를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노조와 환경단체와의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기후 보호냐 일자리 보호냐'를 선택하라는 비판적 질문이 강요되기도 했다.

독일의 노동조합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고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석탄과 자동차 산업에서 급진적인 산업 전환을 달가워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2015년 국제적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파리협정이 채택되고, 코로나 사태와 함께 기후 인식이 높아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여기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결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는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미래세대의 결정권을 지켜줄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기후보호법은 파리협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30년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65%로 상향 조정했으며(기존 55%), 탄소 중립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에 대한 단호한 대응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독일노조, 2021년 공표 내용 보니... '기후보호-일자리, 양자택일 아닌 양립 가능'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은 2021년 8월 '전환헌장'을 공표했다. 핵심은 탄소 중립을 사회적으로 정당하고 민주적 과정을 거치는 '정의로운 전환'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후 보호와 일자리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양립하는 포용적 전환의 길을 찾는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지향점 속에서 실천적 대응 방향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환 비용의 공정한 분담이다. 기후위기는 선진국 또는 상류층의 책임이 크다. 20세기 세계 온실가스의 79%는 유럽과 북미 등 서구에서 배출된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부유한 10%가 온실가스의 절반을 배출한 반면, 하위 50%는 3%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산업과 부유층의 라이프 스타일(사치와 과소비)이 기후위기의 주범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돌아온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열악하여 폭염과 폭우, 한파는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이른바 '기후난민'은 대부분 이들이다. DGB(독일노동조합총연맹)는 이러한 불공정을 타파하기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자 등 기후위기의 주범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기업이나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이나 사회복지를 희생시키는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 그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기후위기 대응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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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 보호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독일 금속노조 집회 현장에 전국에서 5만여 명이 모였다. ⓒ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이와 함께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중심의제로 삼고 있다. 저소득층은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제품을 사기가 어렵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값싼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고 탄소 중립은 멀어진다. 저소득층의 임금 인상과 분배구조의 개혁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DGB는 최저임금의 향상을 요구했고(12유로), 2022년 10월부터 시행되도록 관철시켰다. 또한 불안정 노동을 줄이고 산업 전반적으로 좋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단체협약(산별)의 일반적 효력 확장 조건을 완화하는 법·제도적 투쟁도 함께한다.

기후위기에 특히 더 노출된 노동에 대한 보호 대책도 강구한다. 우리나라도 쿠팡 물류, 배달, 도시가스 검침원 등 폭염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나마 실내 노동은 냉방장치와 환기 등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야외 노동은 심각하다. 독일의 건설·농업·환경노조(IG BAU)의 지붕수공업자에 대한 단체협약은 이에 대해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

2020년 노조와 사용자단체인 '지붕수공업 중앙협회(ZVDH)'는 폭염과 폭우 등 기후적 조건이 나쁘면 지붕 작업을 중단하고 '휴무수당'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모든 지붕회사는 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여기서 휴무로 인한 임금 손실을 보전한다는 것이다(시간당 75%). 이와 같은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 보호 대책은 점차 다른 산업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조직화와 공동결정을 강화하는 것도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예컨대 금속노조(IG Metall)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조직화의 전략적 목표로 삼아 20개 회사에 사업장평의회를 설립하고 1500여 명의 조합원을 신규로 조직화했다. 노조 배제적 성향이 강한 신산업에 노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금속노조는 전환시대에 야기되는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각 사업장에서 공동결정을 강화하고 미래협약을 추진한다. 이 협약에는 회사와 노동의 미래를 담보할 투자 전략과 생산 계획, 인력 및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이 담긴다.

이들은 또 정부와 기업에 대해 기술과 인력 개발을 위한 투자를 촉구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규제는 강화하면서 충분한 재생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기업은 규제가 약한 곳으로 이전하거나 화석에너지를 계속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되면 탄소 중립을 둘러싸고 국제적, 사회적 갈등만 높아진다. 노조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모니터링하려는 이유다.

이와 함께 교육·훈련 정책 개발에도 적극 참여한다. 석탄이나 자동차산업 등 산업 전환으로 직업적 이동이 요구되는 부문뿐만 아니라 새롭게 전문인력이 필요한 부문에 대해서도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예컨대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2% 이상의 건물에 대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현재 이를 위한 숙련된 수공업자가 매우 부족한 상태다.

이에 금속노조는 올해 4월 난방·기후·위생·금속·전기·목공 부문의 수공업 협회와 공동성명을 통해 건물 리모델링을 위한 전문 수공업자를 양성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를 통해 탄소 중립에도 기여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하자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 전문인력으로 상향이동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받기 위한 유급 '단축 노동'을 요구했다. 동시에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리모델링 지원사업도 촉구했다. 이들의 주택은 에너지 효율이 좋지 않은 낡은 것들이 많아 탄소 중립을 위해 빨리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 복합적 문제 얽혀... 사회적 연대는 '필수' 

기후위기 대응은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있다. 때문에 사회적 대화와 연대는 필수적이다. 독일은 중앙에 연방수상과 DGB, 자연보호연합 및 산업협회가 주도하는 '전환동맹'이 구성되어 기후 및 산업 전환의 전반적인 방향과 전략을 논의한다. 또한 지역 및 업종별로 노·사·민·정·학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정책협의체가 활성화되어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240여 명이 참여하는 '미래 모빌리티 국가 플랫폼'이 있으며, 지역에는 부품사의 전환과 모빌리티 정책 지원을 위한 '자동차 경제 전략대화'가 있다. 여기에 금속노조가 참여하여 일자리, 교육·훈련 등 노동 정책적 의제와 친환경 차, 디지털화, 가치사슬의 확대 등 산업 정책적 의제를 주도한다.

'탈석탄위원회'도 전환기에 눈여겨볼 사례다. 2018년 중앙과 지방정부, 전문가, 노사 및 지역 시민과 환경단체 등에서 31명의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는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폐지할 것을 결정하면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물질적, 노동시장 및 산업적 지원책을 마련하여 당사자들의 타협을 이끌어냈다.

시민사회와 연대도 활성화되고 있다. 베르디(통합서비스노조)와 대학생 환경단체인 '미래를 위한 대학생'과 연대가 대표적이다. 2020년 이 단체는 베르디 소속인 대중교통 업종의 단체협상 시 25개 도시에서 '연대위원회'를 설치하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지원했다. 이유는 탄소 중립을 위한 교통 정책은 자가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확장해야 하는데, 임금과 노동조건이 나쁘면 근무자들이 떠나고 질적 서비스가 나빠져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원했던 노조와 환경단체 간 사회적 연대의 좋은 접점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이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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