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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42년만에... 아내를 위한 꽃바구니 만들기

[마흔이 서글퍼지지 않도록] 마음을 전하는 일은 항상 옳다

등록 2022.10.02 18:21수정 2022.10.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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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꽃 선물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오래 못 가 시들고 가격에 비해 실효성이 현저히 낮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그것도 직접 만든 꽃바구니를. 태어난 지 42년만의 일이었다.

아내가 어머니에게 직접 만든 꽃바구니를 선물했을 때 봤던 어머니의 놀라운 모습이 주효했다. 불필요한 소비라고는 모르고 사셨던 어머니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어머니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꽃은 사치가 아니라 감동일 수 있구나... 하고.

한동안 꽃을 받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반짝이는 눈이 자꾸 어른거렸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있을 두 아들의 생일에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네 아이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잘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꽃과 함께 마음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꽃은 감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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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구니 선물에 행복한 어머니 이 모습에 내 마음이 바뀌었지... ⓒ 남희한

 
꽃집 사장님과의 비밀협상
  
그러고는 이틀을 망설였다. 생전 하지 않았던 일이란 건 마음만 먹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매일 오전 9시 50분에 울리는 '꽃꽂이 클래스 예약 전화'라는 알람을 끄면서 '내일'을 기약하고 또 '내일'을 기약했다. 그리고 3일 차에 겨우 그 일을 해냈다.

"저기... 꽃 선물을 하고 싶은데요.... "

이상하게 말려 들어가는 말을 꽃집 사장님이 꼿꼿하게 펴주었다.

"네~ 꽃 선물 하시려고요? 어떤 분께 선물하시려고요?"

사장님은 아내에게 선물한다는 말에 반가움을 표했고 직접 만들어서 주고 싶다는 말에 놀라움을 더했다. 그리고 꽃다발과 꽃바구니의 차이점, 그것들의 크기와 일반적인 선물 유형을 설명했다. 나는 중간 크기의 꽃바구니를 만들기로 했다. 클래스 일정으로 이야기가 넘어 갔을 때, 사장님이 우려를 담아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클래스에는 대부분 여성분들이 많은데 괜찮으시죠?"

이 말은 내게 있어 혼자만 남자일 수 있다는 부담감뿐만 아니라 아내의 친한 동네 언니 혹은 동생과 함께 꽃꽂이 수업을 듣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질문과 같았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다른 꽃집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리스크를 안고도 이 꽃집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아내는 우리 동네 꽃집이 최고라고 했다. 몇 군데 다녀보아도 이 정도로 예쁘면서도 좋은 품질의 꽃을 이렇게 싸게 파는 곳은 없다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시도는 확실해야 했기에 아내의 취향을 저격한 이곳 말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데면데면한 여성들과의 눈치 보이는 꽃꽂이 클래스. 수십 번을 상상하며 걱정했다. 그래서 망설인 것이고 지금도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있는 터였다. 나는 마치 큰 거래를 앞두고 있는 사업가 마냥 대답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어렵사리 내걸었다.

"사실... 제 아내가 단골인데요... OOO라고... 제가 받을 클래스에 혹시 아내가 신청하면 자리가 없다고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말해 놓고는 민망해서 "몰래 선물하고 싶어서요"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족을 달았다. 다행히 사장님은 아내를 기억해 내고 흔쾌히 나의 딜에 응해 주었다. 그리고 혹시 조우할지도 모를 아내에게 비밀을 약속했다. 그렇게 비밀 협상이 체결됐다.

꽃바구니에 심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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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놓인 부담감 아내에게 난생 처음 직접 만든 꽃바구니를 선물하기로 했다. ⓒ 남희한

 
꽃꽂이 클래스 당일, 2시간 일찍 회사를 나와 꽃집으로 향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알 수 없는 결의에 찬 나는 큰 숨을 한 번 내뱉고 꽃집 문을 열어 젖혔다. 아련하고 달큰한 향이 코를 엄습했다. 나도 모르게 조금 전 뱉었던 큰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바짝 긴장한 어깨가 슬며시 풀렸다.

다행히 클래스 참가자는 나 혼자였다. 날을 잘 맞춘 것인지 흐린 날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 있을 눈이 두 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한결 편하게 했다.

예쁜 꽃바구니가 앞에 놓였고 다양한 꽃이 꽃병에 담겨 나왔다. 강사님으로 변신한 사장님은 균형을 맞춰 색과 종류를 잘 섞어서 누가 봐도 풍성하고 예쁘게 '적당히' 꽂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했다. 부담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세상 어려운 '적당히'에 압도당했다.

최소한 '적당히'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조심스레 꽃을 잘라 오아시스에 꽂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뾰족하게 자른 단단한 줄기가 스윽하며 박히는 느낌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순식간에 부담감은 줄어들고 즐거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중독성 있는 소리와 촉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잘 하는 건 포기하고 마음껏 느낌을 방출하기로 했다. 큰 고민 없이 그냥 느낌대로 이리저리 꽂고 나니 강사님이 조금씩 손을 보며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에 맞춰 고래처럼 춤추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어 마음만 열심히 춤췄다.

으레 빈말인 걸 알지만 내 눈에는 나름 정성들여 꽂아 둔 내 마음이 잘 자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적당히 풍성했고 적당히 예뻤다. 빈말이라도 감사하다는 나의 반응에 강사님은 빈말이 아니라며 상품 촬영대에 완성한 꽃바구니를 올려두고 촬영을 시작했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촬영 내내 팔아도 될 만큼 잘 만들었다고 반복해 준 진심어린 빈말 덕분인지 촬영대에 놓인 내 마음이 더 예쁘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보람 찬 시간이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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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예쁜 꽃바구니 내 마음이 잘 자리한 듯하다. ⓒ 남희한

 
비가 와서 빗방울 한두 방울이 장식으로 추가된 꽃바구니를 아내에게 안겼다. 둥그레지는 눈과 벌어지는 입술이 슬로모션으로 뇌리에 각인됐다. 그 순간, 거의 확실하게 받는 아내보다 주는 내가 더 행복했다.

'아! 이래서 꽃 선물을 하는구나...'

경상도 남자에게 생전 처음 꽃 선물을 받은 아내는 몸은 감동을 표하면서도 입으로는 "웬일이야?"라는 당연한 의구심을 표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 풍선이 아내 머리 위에 얼핏 보인 듯도 하다.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직접 만들었다고 말하자, 아내는 처음 꽃을 받았을 때보다 더 둥그렇게 눈을 떴고 침이 흘러내릴 정도의 각도만큼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거의 확실하게 아내가 느낀 충격보다 내가 느낀 뿌듯함이 컸다.

아내는 한동안 고인 침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침을 튀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파는 걸 사온 줄 알았다, 너무 예쁘다, 고맙다, 어떻게 만들었냐, 근데 웬 꽃 선물이냐, 혹시 잘못한 거 있냐, 근데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근데 어쩐 일이냐... 남편이란 존재가 준 최초의 직접 만든 꽃 선물에 아내의 반응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나의 어깨는 하늘로 방향을 고정하고 쭈욱 치솟아 올랐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에 눈물과 함께 퍼지는 아내의 미소. 꽃을 보고 연발하는 아이들의 감탄.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올라오는 기쁨과 보람. 내 작은 결심과 약간의 시간과 돈으로 이런 알찬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제는 안다. 꽃은 낭비가 아니다. 가끔은 꽃 선물도 좋다. 아니 정확히는 가끔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뒤엔 행복이 따라 올 거라는 사실을 믿는다.

내 기준에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선사하는 걸 보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다른 사람을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느덧 꽃은 시들었지만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밝은 것을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전하는 일은 항상 옳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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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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