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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읍내 카페인 줄 알았는데 공연장이네?

메이트커피마켓 서은혜 대표, 대안학교 교사서 공연기획자로 변신

등록 2022.10.05 16:21수정 2022.10.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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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 ‘메이트 커피마켓’ 대표. 대안학교 교사였던 그는 현재 자신의 카페 공간을 활용해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며 공연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4년 전 재즈트리오 ‘더티블랜드’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 9월 17일 16회 김일두·윤숭 포크공연까지 모두 그의 기획으로 탄생했다. ⓒ <무한정보> 황동환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을 스쳐간 건 넓은 매장과 야외 정원까지 갖춘 모습이었다. 예산읍 원도심에 있는 '메이트 커피마켓'은 누군가 일부러 "이곳이 공연도 하는 카페"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여느 커피숍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인 비주류 음악인들에게 공연하기 좋은, 재즈·포크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소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충남 예산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어 준 이는 서은혜(42) 대표다. 그는 2018년 8월 이곳을 인수했다. 상호도 그대로 이어받았고, 인테리어도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카페 주인이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착수했다. 지난달 17일 공연까지 4년동안 모두 16회까지 이어진 라이브 공연의 시작이다.

서은혜 대표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서 대표는 '음악'을 매개로 마음이 통하는 벗들과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좀처럼 라이브 공연을 접하기 힘든 소규모 지방 도시의 문화적 결핍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혼자 주문 받고, 커피 내리고, 서빙을 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평범한 모습이다. 그에 대한 인상을 180도로 바꾸는데는 1시간이 채 안됐다. 예산까지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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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연 ‘더티블랜드’부터 지금까지 ‘메이트 커피마켓’ 무대에 올랐던 공연 포스터들. ⓒ 메이트


예산에 삶의 둥지를 트기 전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자신이 안착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자리였다. 태어난 부산에서 중학교까지,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홍익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005년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나설 수 있었던 건 대학시절 복수전공으로 예술학을 공부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서 대표는 미국 시애틀 센트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영어도 좀 더 잘하고 싶었고, '미국 대학생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라는 호기심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동시에 꿈도 영글어갔다. 학업에 대한 욕심으로 미술사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귀국 후 홍대 미술사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온전히 학업에 전념해도 좋을 만큼의 가정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교 일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끝내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현실의 벽에 막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진로를 선회한 것 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그때 도서관에서 만난 '발도르프' 교육에 관한 책 한 권이 인생항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교육과정에 예술, 영성, 치유를 담은 발도르프라는 대안교육을 통해 성적만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는 다른 교육체제와 철학에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고 한다. 무역회사에도 잠시 적을 두고 있었지만, 결국 마음이 향했던 곳은 대안학교였다. 

그는 먼저 간디학교 영어교사, 담임교사로 3년간 재직했다. 이후 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발도르프의 교사로 이어졌다. 여기서 우여곡절을 겪은 그는 인도로 향했다. 남인도 오로빌 마을에 있는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쉼이 필요했던 순간에 만난 자리였다. 서른 중반이었던 그때 이곳에서 보낸 6개월 동안의 시간을 "내 안의 아픔, 상처를 풀 수 있었던 힐링의 시간이었고, 삶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귀국 후 잠시 해먹 사업가로도 변신했지만, 지금의 예산살이를 시작하게 한 건 그의 오랜 벗들의 도움이 컸다. 

이젠 프로패셔널한 느낌이 물씬 풍길 정도로 어엿한 '공연기획자'가 됐지만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일은 아니었다. "넓진 않아도 이 정도 공간이면 라이브 공연 장소로 활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예산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라이브 공연을 즐길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내가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메이트 커피마켓 공연'의 탄생배경을 설명했다.

'누굴 위해 하나' 회의감과 코로나19를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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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트리오 ‘더티블랜드’가 메이트 커피마켓에서 공연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서 대표가 첫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뮤지션은 2018년 10월 26~27일 드럼·콘트라베이스·피아노로 구성된 재즈트리오 '더티블랜드'다. "유료로 진행됐는데 만석이었다.
40~50명의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했고 열광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하며 "일단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하나의 공연이 성사되기 위해선 악기, 음향, 조명, 포스터, 티켓 발매 등 세부 준비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공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알게 됐다. 지금까지 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지역 지인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수용 가능한 인원은 30명 안팎. 여기에 무대 공간을 제외하면 더 비좁아질 게 분명했다. 그는 "안쪽에 있는 의자들을 꺼내 좌석을 늘이고 부득이 일부가 서서 관람하면 최대 50명까진 수용 가능하다. 다들 유료로 오시는 분들인데 서 계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쓰인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연주자들의 땀방울, 숨소리를 가까이 보고 들으며 관객과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은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다"고 아담한 공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매력도 들려줬다.

모든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된 건 아니다. 어떤 경우엔 관객이 10명 정도였던 때도 있었다. 그때 "예산 주민들이 무료공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으며 공연을 대하는 지역의 분위기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하는 공연이 가능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적은 공연 수익금으로 어떻게 뮤지션들의 출연료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우려 섞인 조언이었다.

"공연료는 고정된 것은 아니고, 매회 출연진과 조율했다. 14회까지는 티켓 판매수익 전액을 출연진에게 줬다. 내게 돌아오는 공연 수익은 전혀 없다. 기꺼이 공연에 나선 아티스트들은 내가 대안학교 교사 시절의 제자들이었고 친구들이었다. 내가 요청해 멀리서 왔으니 당연히 재워주고 식사를 챙겨주는 일은 내 몫이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회의감이 밀려왔다"며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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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트 커피마켓 전경. ⓒ <무한정보> 황동환

 
공연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코로나19를 만났다. 2년간 쉬다가 재개한 15회 재즈공연과 최근 16회 포크공연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매로 전석이 매진된 것이다. 예전엔 그가 출연진을 섭외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먼저 서 대표를 찾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카페가 '질 좋은' 그러면서도 '지속가능한' 공연 장소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작은 꿈"이다. 이를 위해 "카페가 잘 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수익사업은 아니고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처럼 카페를 단지 수익창출을 위한 사업장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작은 지역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보람이 있다"고 들려줬다. 

오늘도 그는 '메이트 커피마켓'을 통해 만나는 벗들과 소박한 꿈을 나누며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내린 커피향이 음악 선율을 타고 동네를 은은하게 감싸 안으며 퍼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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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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