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는 양보가 없다'... 30년 동안 이 약속을 지켰다

[다산인권센터 창립 30년] 다산인권센터가 걸어온 길

등록 2022.10.05 14:22수정 2022.10.11 23:57
0
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다산인권센터는 수원 행궁로에 있다. 수원이 특례시가 되기 전부터 화성 행궁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됐다. 그곳 근처에 허름한 2층 건물이 있고, 그 집에 다산인권센터가 세 들어 있다. 2층 사무실을 가려면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사무실은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이면 화장실이 얼어붙는다. 30년을 맞는 다산인권센터의 활동 공간이다.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 이 말을 중심 모토로 세우고 있는 다산인권센터.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이건 엄청난 말이다. 인권이 가볍게 무시되고, 인권의 가치보다는 돈이면 다라는 세상에서 인권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활동가들은 저 말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겠다는 결의와 다짐을 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하면서 무모한 도전을 해온 게 다산인권센터 30년의 시간이었다.
 
a

다산인권센터는 수원지역 시민들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저녁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 다산인권센터

 
나의 인권운동 30여 년의 인생 중에 다산인권센터와 참 많은 시간을 같이 했다. 어렵지만 해야 할 인권 현안이 발생하면 먼저 연락해서 의논한 게 다산인권센터였다. 그곳의 박진 활동가, 때로는 랄라 활동가와 의논하면 그들은 나와 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에는 행동으로 나선다. 같은 고민을 하는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에 연락을 해서 간담회부터 시작해서 무슨 대책위원회라도 만들어냈다.

지난 2006년, 인권활동가들은 온몸을 던져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투쟁에 나섰다.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들이 평택으로 몰려오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는 전국의 미군기지를 이곳으로 몰고, 공여지들을 반환받을 거니까 국익에 도움된다며 2008년에는 공사를 다 끝내고 미군에 기지를 넘겨준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밀어부쳤다. 대추리, 도두리 지역 주민들은 일제에 의해서 한 번,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에 의해서 다시 한번 마을을 뺏기고 맨손, 맨몸으로 바다를 간척해서 285만 평 드넓은 들판을 일구어냈다. 그곳을 미군기지로 내줄 수 없다는 싸움이었다.
 
a

미군기지로 마을과 들을 빼앗겨야 하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과의 연대에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내걸고 싸웠다. ⓒ 다산인권센터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이 변했고, 미군은 대중국 미군기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전쟁을 위한 미군기지로 마을과 들을 빼앗겨야 하는 주민들과의 연대에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내걸고 싸웠다.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전국적인 싸움이 되어갔다. 인권침해에 대응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권활동가들도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2006년 3월초 투쟁의 거점 역할을 하던 대추분교를 철거하려는 공권력에 맞서서 대추분교 앞에 인권활동가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텼다. 그 자리에 있던 나를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이 모두 경찰들에 뜯겨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 그는 학교 정문의 철문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버텼다. 강제로 팔을 빼다가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문정현 신부님도 같이 버티면서 그날의 행정대집행을 막아냈다.

아마 다산인권센터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말을 직접행동으로 지켜낸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들은 너무도 많다. 2000년 12월말과 2001년 1월초 13일간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혹한기 단식농성을 통해 국회에서 물 건너갔던 국가인권위원회법안이 2001년 4월에 통과되었고, 그해 11월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아마도 가장 무모한 싸움은 삼성반도체의 황유미 노동자 사건을 접하고 나서 삼성과 싸운 일일 것이다. '무노조' 경영을 사시로 내걸고 노동탄압을 일삼아왔던 삼성과의 싸움은 승산이 보장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활동하는 '반올림'은 다산인권센터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탄생할 수 있었고, 삼성에도 드디어 노동조합이 생겨난 것에 다산인권센터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전국적인 사안만이 아니라 지역 사안의 연대에도 열심이었다. 2008년부터 수원역 광장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던 촛불집회는 이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박근혜 퇴진 운동까지 이어졌다. 다산인권센터가 중심이 되어 집회 판을 만들면, 딱딱한 운동권 집회가 웃음꽃이 피는 활기차고 재미있는 판으로 바뀌었다.


끼 있는 활동가들의 웃음 유발 개그가 있는 집회는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 옆 원천리천 물고기 폐사 사건을 계기로 '수원시 알권리 조례'를 제정하게 했고, 2019년 경기도 성평등조례 개정할 때에는 혐오세력들의 조직적 반대를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로 막아냈다.

수원이라는 지역에 있는 인권단체이면서 전국적인 사안에도 열심히 연대하고, 지역의 연대운동에서도 인권의 가치와 평등한 조직문화를 선도하는 다산인권센터는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모토처럼 양보하지 않고 온몸을 던지면서 싸워 많은 일들을 해냈다.
 
a

다산인권센터는 2014년 삼성전자 옆 원천리천 물고기 폐사 사건을 계기로 지역시민사회단체들과 ‘수원시 알권리 조례’를 제정하는 활동을 했다. ⓒ 다산인권센터

 
다산인권센터에서 시작해서 분화한 조직도 여럿이다. 우선 내가 몸담았던 '인권재단 사람'도 처음에는 수원의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을 공동으로 쓰면서 시작했다. '경기복지시민연대'도, '인권교육 온다'도, '삼성노동인권지킴이'도 다산인권센터에서 첫발을 내디뎌 출발했다가 새로운 단체로 독립한 경우다. 그러니까 작기만 한 다산인권센터가 새로운 인권단체들을 키워서 내보내는 산파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그래서 인권운동에서나 경기지역의 연대에서 다산인권센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런 다산인권센터가 올해 10월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비가 오면 비 걱정을 하고, 겨울이 오면 화장실이 얼까 전전긍긍이다. 그보다 더 다산의 활동가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은 2층이라서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불편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공간을 이전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항상 돈이다. 거기에 더해서 5명의 활동가들이 있는 작은 단체인데, 후원자(벗바리)들의 후원금만으로는 매달 적자다.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수준의 활동비가 없어서 걱정하는 30년이 된 인권단체가 다산인권센터다.

이번 창립 30년을 맞는 다산인권센터에 후원을 해서 20평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지면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보장되는 그런 곳으로 사무실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끼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더욱 '양보 없는 인권'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나부터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지역에 있는 인권단체로 전국적으로 연결하면서 연대해가는 이런 다산인권센터를 위해서라면 후원금 얼마나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아낌없이 후원하면 아낌없는 활동으로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30년을 한결같이 자신의 약속을 지켜오지 않았는가. 그런 믿음이 마음이 모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박래군님은 4.16재단의 상임이사이자, 다산인권센터의 오래된 벗바리(후원회원)입니다.
#다산인권센터 30주년 #인권운동 #평택대추리 #국가인권위원회
댓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