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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없는 만두잔치, 차별 없는 집을 꿈꾼다

[다산인권센터 창립 30년] 서른 살 다산의 꿈

등록 2022.10.11 23:58수정 2022.10.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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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10년 전 겨울, 필리핀 인권변호사 부부가 1박 2일 홈스테이로 우리집에 묵었다. 짧은 영어로 물으니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 가보고 싶은 곳은 '화성행궁'이라고 했다. 김밥 도시락을 만들어 수원으로 소풍 가던 날,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1년 내내 열대 기후에서 살아온 변호사 부부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시간 남짓 자동차가 도로에 갇혔음에도 그들은 별나라에 온 것처럼 기뻐했다.

그날 함박눈을 맞으며 찾아간 곳이 수원시 매교동 옛 다산인권센터였다. 시민의 자발적 후원으로 움직이는 인권 NGO. 변호사 부부는 필리핀에서 그런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불과 서너 명의 활동가들이 여러 현안에 끈질기게 관여하는 '다산의 비결'을 그들은 묻고 또 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거기엔 분명 뼈를 갈아 넣은 누군가의 청춘이 녹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30년을 당당하게 버틴 벗들에게 띄우는 소박한 헌사다.

십시일반,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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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의 쉼과 여유를 위해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과 백두대간 한남정맥 종주를 진행하다. ⓒ 다산인권센터

 
2015년 <한겨레>에 인권활동가 생활 실태 르포가 실렸다. 현장에서 8년간 일한 상근자의 기본급이 107만 원으로 당시 최저임금 116만 원보다 적었다. 이 기사는 인권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를 생생한 인터뷰로 담았는데, 여기엔 "경조사에 참석하기 어려울 만큼 쪼들리는" 경제적 궁핍도 포함돼 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인권 세상'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인권은 돌보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이듬해 초 나는 인권위 동료들과 함께 가칭 '십시일반 기금'을 제안했다. 인권활동가와 인권위는 물과 고기의 관계인 만큼, 고기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힐링캠프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었다. 인권위 직원 86명이 참여한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는 그렇게 탄생했다. 훗날 '인권재단 사람' 관계자로부터 '일단 쉬고' 프로젝트를 수행한 활동가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듯하다. 인권운동도 스포츠 경기처럼 브레이크 타임을 두면 더 팽팽해질 거라 생각했다. 수십 년 투신했던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간 최창남 목사는 단박에 해법을 풀어놨다. "육 선생은 산을 잘 타시니 지친 일꾼들을 산으로 데려가세요."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지리산의 여름, 태백산의 겨울을 일별하기 위해 번개 산행을 추진했던 배경이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과 백두대간 한남정맥을 종주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경기도 안성에서 김포까지 1년 남짓 180km, 450리를 걸었다. 여름엔 솔밭에 누워 낮잠을 자고, 가을엔 숲길에 떨어진 알밤을 주웠다. 난개발로 길이 끊긴 벼랑에서 표지를 찾지 못하고 여러 시간을 헤매다 하산한 적도 있다. 우리는 그때 "茶山(다산)처럼 多山(다산)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다녔는데, 나는 지금의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이 팔달산 기슭에 자리 잡은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벗들이시여, 모쪼록 팔달산 정기를 품고 오래 버티시길 빈다.

얼마 전 인권단체에서 20년 일했다는 활동가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지나온 20년을 기억하며 반가운 얼굴들과 술 한잔 나누자는 일종의 '서프라이즈 파티'였다. 나는 인권운동판에서 이런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비록 발 딛고 선 현실이 우울하더라도 동료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멋진 만남이 자주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운동이라야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산의 자랑, 먹거리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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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매년 회원모임으로 만두잔치를 진행한다. 만두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만두소의 어울림처럼 우리 사회 모두가 어우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 다산인권센터

 
내가 다산인권센터에 호감을 품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만두 잔치'였다. 많고 많은 음식 중에 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직접 빚어서 나눠주는 센스라니! 그것도 아침부터 밤중까지 수십 명의 손님들을 불러들여 만둣국, 찐만두, 군만두를 끊임없이 차려내고, 집으로 가져갈 보따리까지 안겨주는 인심이라니! 다산 활동가들이 '복불복' 게임처럼 재미 삼아 만든 '고추냉이 만두'가 하필 우리집 식탁에서 발견됐을 때조차 나는 기뻤다. 나 또한 신김치만 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만두를 빚어 이웃과 나누는 일을 즐기며 산다.

만두 잔치가 아니더라도 다산은 먹거리 인심이 후하다. 벗바리 생일엔 미역을 보내주고 토마토, 귤 같은 제철 과일을 착한 값에 배달한다. 근처를 지나다 불쑥 들르면 "식사는 잡쉈어?"라고 먼저 물어주고, 배가 고파 보이면 만사 제치고 근처 맛집부터 안내한다. 한번은 고향 친구 10여 명과 일요일 낮에 예고 없이 들렀는데, 안병주(허기저) 활동가가 급하게 달려 나와 집안 어르신을 모시듯 극진하게 대접했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나는 오래 전 내 고향마을의 가난했던 어르신들로부터 더 큰 인심을 배웠다. 다산인권센터에서 그 시절의 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일 듯하다. 동네 이웃으로 마실 가듯 소박한 먹거리 하나씩 펼쳐놓고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 다산이다.

그래서 조금 걱정도 든다. 이태 전 겨울처럼 한파가 몰아닥치면 어쩌나 하는 염려다. 다산인권센터는 겨울마다 화장실이 동파될 만큼 배관 상태가 불량하다. 화장실이 얼어붙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난로를 켜놓고 일하는 활동가를 본 적도 있다. 대화가 무르익을 만하면 화장실 찾아갈 생각부터 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

이런 곳에서 한겨울 추위를 녹여줄 만두 잔치를 다시 열 수 있을까? 다산의 명물, 만두를 위해서라도 다산 활동가들이 추진하는 사무실 이전 계획이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차별 없는 집'에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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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옆에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외벽에는 다산인권센터 창립30년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다. ⓒ 다산인권센터

 
2012년, 다산인권센터에서 밤샘 작업으로 20주년 백서를 만들었다. 다산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푸근해졌던 기억이 새롭다. 다산은 설립 때부터 경기도 지역의 주요 현안은 물론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인권 이슈 대부분에 깊이 관여해 왔다. 인권 현장에선 숱한 패전 기록을 쌓았음에도, 패배의 주인공들은 다산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함께 비를 맞고자 했던 동지들의 진심을 담아내는 것이 당시 백서 편집자들의 보람찬 임무였다.

그때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났다. 녹색 대문과 빨간 벽돌이 예뻤던 매교동 사무실은 이제 '올드보이'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20주년 슬로건 '그 사람 스무 살, 인권은 즐겁다'는 전설이 됐고, 30주년 캠페인 '오늘도 인권을 짓다'가 사무실 외벽에서 휘날리고 있다.

10년 사이 다산은 또 무지막지하게 많은 일들을 펼쳐놓았고, 그 10년의 이야기만으로도 여러 권의 백서가 나올 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인권 시계는 급박하게 움직였고, 다산 활동가들은 "인권엔 양보가 없다"는 첫 마음으로 초고속 행진 중이다.

그래서 또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 다산의 문을 두드릴 수많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눈에 밟힌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수원화성 옆 행궁동 다산인권센터 계단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노약자라면 깎아지른 2층 경사를 감당하기 버겁고, 누군가 부축하고 싶어도 폭이 좁아 힘들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이쪽으로 발길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다. 다산이 30주년을 계기로 사무실 이전을 서두르는 이유다.

다산인권센터의 오랜 벗바리로서 차별적 문턱을 없애려는 뚝심의 여정에 빨간 벽돌 하나 기쁘게 올려놓고 싶다. 다산 활동가들은 지금 100년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인권 기지를 준비하고 있다. 부디, 알 이즈 웰!
덧붙이는 글 창립 30년을 맞이한 다산인권센터에서 공간이전과 활동비 마련을 위한 후원 모금을 진행한다. (https://dasan30th.modoo.at/)
글쓴이 육성철씨는 다산인권센터의 오랜 후원회원(벗바리)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산인권센터 #30주년 #화성행궁 #차별없는일터 #오늘도 인권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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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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