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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사는 교과서에 단 4줄 뿐" 최태성의 일갈

연구될수록 더 풍부해지고 단단해지는 지역 역사... 지역 주민들이 나서 지켜야

등록 2022.10.17 21:15수정 2022.10.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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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진에서 만난 ‘큰별쌤’ 최태성 모두의 별★별 한국사연구소장. 최 소장은 "역사는 기억투쟁"이라며 "기억하지 않으면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 이돈삼

 
"기억하지 않으면 지켜질 수 없습니다. 교육되지 않으면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기억 투쟁입니다. 기억의 승리물입니다."

'모두의 별★별 한국사연구소' 최태성 소장의 말이다. 최 소장은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대한민국 ㅂ해 ㄱ달 죽음'이라고 새겨진 백범 김구의 부인 최준례의 비석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이 같이 말했다.


"언뜻 수수께끼 같지만, 숫자를 자음으로 표현한 겁니다. '1'을 'ㄱ'으로, '2'는 'ㄴ'으로…. 'ㄹㄴㄴㄴ해'는 단기 4222년을 뜻합니다. '대한민국 ㅂ해'는 대한민국 6년, 대한민국 1년을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으로 삼은 거죠. 우리 언어를 쓰지 못하던 일제강점기이지만, 우리말을 지키고 또 써야만 기억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최 소장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한국사를 재밌게 풀어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큰별쌤'으로 통하는 최 소장을 지난 8일 만났다. '남도답사 일번지'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백운동원림에서다.

주제를 '잃어버린 고대왕국, 마한'으로 삼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최근 마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문화재청의 2023년도 예산안에 마한 관련 사업예산도 처음 반영이 됐다.

삼국시대 틀에 갇혀 '마한' 인식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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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유적으로 확인된 나주 복암리 고분. 복층의 아파트형 고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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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진 백운동원림에서 만난 최태성 소장. 그는 ‘잃어버린 고대왕국' 마한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돈삼

 
"서울촌놈, 전라도에 오니 행복합니다. 뭘 먹어야 할지, 맛있는 음식도 너무 많아서 행복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락이 있고, 말끝마다 '그라제∼' 하는 것도 어찌나 정겹던지…. 지역어(지역말)에서 묻어나는 정겨움이 매력입니다. 사투리라고 치부해서는 안 돼요. 소중한 자원입니다. 우리는 지역어를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어요."

최 소장은 "지역어가 지역의 생명력이고, 원천"이라고 말하며 김구의 부인 비문을 보여줬다. 번거롭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우리말과 글이 지켜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세련미가 묻어난다. 그의 말이 자연스레 마한으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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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꼽히는 화순 핑매바위. 최태성 소장은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게 무덤"이라며 고인돌 이야기를 했다. ⓒ 이돈삼

 
"교과서 속 마한을 찾아봅니다. 마한의 역사가 단 4줄로 언급돼 있어요. 가야는 4쪽 분량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학계의 연구성과도 많고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가야사에 대한 지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 소장의 진단이다.

사실 우리는 '삼국시대'라는 틀에 갇혀 마한이라는 고대왕국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잊고 산다. 진나라 진수가 엮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마한의 인구는 무려 10만여 가구에 이른다. 대략 60만 명의 인구를 자랑한다. 하지만 마한의 역사는 백제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근초고왕에 의해 마한이 백제에 복속됐다는 서술로 끝이 난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신라가 4~6세기에 전성기를 누렸고, 백제 근초고왕이 369년에 마한을 정복했다고 배웠다. 그러나 존재감 강한 마한이 순식간에, 그것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최근 학계에서는 마한이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 유역에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보고 있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기억 투쟁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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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있는 반남고분군. 고분이 많다는 것은 부족이 많이 살았고, 그만큼 살기 좋은 땅이었다는 반증이라는 게 최태성 소장의 얘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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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나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항아리(옹관) 무덤. 옹관묘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는 다른 독특한 무덤 형태를 보여준다. ⓒ 이돈삼

 
"무덤은 그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많이 남아있는 고인돌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증표입니다. 부족이 많았고, 살기 좋은 땅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고분도 많습니다. 자미산성을 중심으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에 널려 있어요.

덕산리고분은 길이가 43미터나 되고, 복암리3호분은 복층의 아파트형입니다. 항아리(옹관)로 무덤을 쓴 것도 독특합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없던 무덤 형태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실체가 있었다는 것이죠. 마한이 6세기까지도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최 소장은 마한의 무덤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산강 일대에서 항아리 무덤이 많이 발견된 것은 이 일대가 교류의 집합소, 요즘말로 국제무역항이었다는 것이다. 장고분, 전방후원형 등 독특한 무덤도 활발한 문화교류의 징표라는 것이다.

"모자, 무덤에서 발굴된 금동관도 달라요. 파랗게 빛나는 옥을 많이 활용했는데, 신라 가야는 물론 백제와도 다릅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습니다. 발굴된 무덤과 유물을 보면 '여기, 마한 있어요' 하며 손을 흔드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마한의 역사는 연구될수록 더 풍부해지고 단단해지는 사실입니다."

항아리 무덤과 금동관을 예로 든 최 소장은 "마한의 유물을 보면 '우리 있다고, 왜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냐'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워지고, 잊혀졌던 마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백제의 역사와 함께 존재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후손들이 똑똑하면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고, 못난 후손들은 있는 역사도 사라지게 한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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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고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파랗게 빛나는 옥을 많이 달고 있다. 신라는 물론 백제와도 다른 형태의 금동관이다. 국립 나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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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죽산보의 해넘이. 마한의 유적이 이 영산강을 중심으로 많이 발굴되고 있다. ⓒ 이돈삼

 
"가만히 있으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마한은 결코 교과서에서 4줄로 끝날 역사가 아닙니다. 기억 투쟁을 해야죠. 지역에서부터,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고장이 여기였고, 마한은 뚜렷한 색깔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고 말입니다. 타 지역의 동의도 필요하지만, 이 지역의 학계와 주민들의 한목소리가 먼저입니다."

최 소장은 지역 주민들이 '(마한)기억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말과 글을 지우려 할 때 표준어작업이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은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를 키워내고 알아내는 작업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역에 있는 역사들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지역의 색깔도 존중돼야 합니다. 다양성의 역사를 되살려야 합니다. 우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만이라도, 입시 때문에 어렵다면 초등학생만이라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의 역사를 강조한 최 소장은 뒤틀린 마한의 역사를 되살리고, 알리고, 또 우리 모두가 존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절박하게 지켜낸 우리의 말과 글을 지금 공기처럼 쓰고 있듯이, 지역의 역사를 되살리고 지켜내는 일이 그만큼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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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진 백운동정원에서 만난 최태성 소장은 지역의 역사를 강조했다. 지역의 역사를 되살리고, 알리고, 또 존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 이돈삼

#최태성 #큰별쌤 #마한 #옹관묘 #나주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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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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