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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하게 살라!" 소로의 외침 따라 살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읽는 소로의 <월든>

등록 2022.10.17 15:39수정 2022.10.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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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교동 봉소리 오지마을, 늦가을을 붙잡는 밤톨이의 외로움이 구슬프다 ⓒ 이정민


가을은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스쳐 간다. 뭐가 그렇게 시간을 바짝, 좇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더디 가도 좋으련만, 순식간에 가을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긴 실연의 미련만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나간다. 가을은 아마도 풋사랑이지 않았을까.

지난 6월, 무작정 시작한 시골살이는 벌써 여름과 가을을 지나 초겨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무섭고 빠르다. 지천명을 코앞에 둔 노총각 신세는 더욱 그러하다. 한겨울만 지나면 사계절을 나는 것이니 곧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올 지경이다.


처음 시골살이를 계획하면서 열 번째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자가 출판으로 수필도 쓰고 시도 소설도 썼다. 지금 생각하면 다 쓸모없는 책이다. 푸념 덩어리다.

헛된 자기과시였고 부질없는 작가 행색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책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시는 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이번 시골살이를 하면서 다시 글쓰기의 초심을 다지고 일깨웠다. 이전처럼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세웠다.

부러 의식하지 않고 그냥, 일상의 흐름대로 일기를 쓰듯 수필을 쓰고 있다. 있는 그대로 아무런 꾸밈없이 자연이 가르쳐주는 일상의 미학을 그리고 있다. 물론 역시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독백이지만 말이다. 홀로 중얼거리듯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다시 읽은 <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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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으로 들어가면 쓸모없는 나뭇가지 하나에도 감정이 쏠린다 ⓒ 이정민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아니 읽었다기 표현하기엔 솔직하게 거짓말이다. 이 책은 넘기는 양도 많고, 그 내용도 심오하기에 범인이 읽기엔 너무 벅차다. 어떻게 그 혹한의 시대에 이런 수만 가지 언어유희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내겐 그랬다. 도대체 한 장을 넘기기조차 어려웠으니. 알 듯 말 듯 쉬운 듯 어려운 듯 소로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다. 그냥 좋은 어록만 기억하고 기억했다. 왜 그렇게 자연과 고독에 천착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수천수만의 단어를 썼으며 손수 구입한 백지장의 책장을 메꿔나감으로써 그의 진정한 작업이 그에게 점점 분명해졌다. 그것은 첫째로는 자연의 관찰자가, 둘째로는 인간의 관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중력으로 콩코드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그 아름다움을 완미하며 인간의 삶을 지도하기 위해 그가 보는 것의 함축된 의미를 적시(摘示)하는 것이었다."
- 책 <소로우의 일기> 중에서


책을 보고 소로처럼 살고 싶었다. 자연의 관찰자로 살고 싶었다. 그저 단순하게 더 무던하게 말이다. 소로처럼, 삶이 아닌 삶은 살지 않으려고 했다. 자연의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소로처럼 진심으로 하루를 보듬어 가고 싶었다.

책 <월든>의 내용처럼, 소로가 산 삶의 궤적을 따라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오지마을에서 절대 고독과 순수한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을 무한 자유를 느끼고 사는 것. 그 어떤 거추장스러운 격식도 차리지 않고 발가벗은 벌거숭이로 완전한 해방을 느끼고 싶었다.

무한한 나태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최대한 자연인 흉내를 내려 애썼다. 비록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이틀이긴 하지만, 시간도 잊고 의식도 잊고 나도 잊었다. 오직 벌레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한 숲속 마을에서 오롯이 자연의 울림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비가 오면 빗소리에 젖어 들고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는 그토록 절박하게 성공하려 하고 그토록 절박하게 일을 벌일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길동무와 보조를 맞추어 걷지 않는다면, 아마도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침착하게 가든, 얼마나 멀리 가든, 자신에게 들리는 음악 소리에 맞춰 가게 내버려 두라. 사과나무가 떡갈나무만큼 빨리 열매를 맺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라고 할 것인가."
- 책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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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풀꽃 하나도 빛으로 물들면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는 것을 ⓒ 이정민


소로처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빛으로 물든 나무들과 대화하며 성난 마음을 다독였다. 왜 그렇게 타인에 화를 내며 살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열등감에 분노를 터뜨리고 우월감에 타인을 짓밟고 왔던 순간들이 부끄럽다. 무심히 사라지듯 지난 과거를 모두 잊고 싶다.

책 <월든>처럼, 자연에 파묻혀 오직 나뭇잎 사각거리는 소리와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에 집중했다. 걷다가 갑자기 울음도 터져 나왔다. '나도 과연 소로처럼 살 수 있을까'

"나는 실험을 통해서 적어도 이것만은 알게 되었다. 꿈을 항해 자신 있게 나아가고 상상했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평범한 시간에 성공을 만났다는 것. 허공에 성을 지었다고 해도 당신이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성이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이제 그 밑에 토대를 놓으면 된다."

소로가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얼어붙은 심장이 녹는다. 자연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훌륭한 가르침을 준다. 아무렇게나 핀 들풀에게도 배우고 새초롬하게 습지를 가득 메운 이끼들에게도 배운다. 스스로 그러하듯이 살아가면서, 억지로 꿰맞춘 삶 속에서 잊고 있었던 순수의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울 수 있었다.

소로처럼, 소로의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길이 보였다. 비로소 아주 작은 삶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의 삶의 전환이다. 더 많이 자연의 곁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스스로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로가 전하는 위대한 잠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언제나 자연 속에서 살고 있고 흙과 함께 살아 있었다. 불과 90년대만 해도, 우리 삶의 주변은 온통 자연의 물결이었음을 기억한다. 부드러운 흙을 만지고 산으로 들어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음을 기억한다. 논과 밭으로 첨벙첨벙 흙탕물에 옷을 버려도 숯 검댕이 얼굴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날을 기억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이 주는 감동과 사연의 끝은 완전한 자연이었음을, 오롯이 자연의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무한 발전과 함께 사라진 자연 문명의 원초적 삶의 나날들. 우리는 그 원초적 본능 그대로 순수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야 함을 느낀다.

"나는 인간의 잎과 줄기가 아니라 꽃과 열매를 원한다. 그 사람에게서 향기가 풍겨 오기를 바라고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열매 같은 원숙한 향기를 내기를 바란다. 그 사람의 선량한 품성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라 늘 흘러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선량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르지 않아야 하며 자신이 희생한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수많은 죄를 덮는 자선이다"
- 책 <월든> 중에서


강화도 교동에서 가을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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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마리의 겨울 철새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한맺힌 사자후를 토한다 ⓒ 이정민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강화도 교동 봉소리, 이곳은 황해도 연백 마을이 바다 건너 아릿하게 보이는 해병대 초소의 철책 마을. 내 작은 오두막 황토방은 온통 숲의 나무와 풀꽃의 온기로 둘러쌓여 있다. 작은 방과 거실 창문만 열면 겨울 철새들의 아우성만 가득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새하얀 먼지들의 속삭임만 가득하다.

거실 큰 창문 사이로 황금 들판이 가을빛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층층이 무르익는 물안개의 소용돌이가 온 산하를 휘감는다. 아침과 저녁으로 수묵화와 수채화가 시간을 채색한다. 늦가을 추수를 끝낸 벌거숭이 들판에서는 황소개구리와 미꾸라지가 경쟁하듯 온몸으로 이별을 고한다.

"한 차례 가랑비만 내려도 풀은 몇 배 푸르러진다.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좋은 생각이 우리 사고에 유입되면 우리의 전망도 밝아진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에 의무를 이행하려고 주어졌던 기회를 그냥 흘려버리는 데 대해 속죄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아무리 작은 이슬방울이 떨어져도 그 힘을 인정하는 풀잎처럼 주어진 모든 일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용한다면 우리는 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미 봄이 와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겨울에 머문 채 뭉그적거린다. 상쾌한 봄날 아침에는 누구든 죄를 용서받는다. 그런 날은 악과도 휴전한다."
- 책 <월든> 중에서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부유하는 처연한 공기의 애처로움만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는다. 이제 곧 철새들의 자지러짐도 아릿하게 사라질 듯하다. 화려했던 꽃들의 향연도 시나브로 죽어 갈 것이다. 푸르렀던 자연의 향기마저도 톡 쏘던 바람의 애틋함마저도 모두 꽁꽁 얼어붙을 것이다.

이제 초겨울과 한겨울의 새하얀 풍경만을 기다리고 숨죽인다. 곧 다가올 순백의 미학을 되새기며 소로의 마지막 시그널을 마음속에 아련하게 저장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모두 소로처럼 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일지라도 밤하늘의 별은 언제나 당신을 자연 곁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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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밤의 적막이 어둠의 공포가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을까 ⓒ 이정민

월든 (예스 특별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은이), 윤규상 (옮긴이),
도솔, 2003


#강화도 #교동도 #월든 #헨리데이비드소로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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