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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상사에서 백석 시인을 만나다

그가 사랑한 나타샤 '자야'와의 로맨스를 떠올리며

등록 2022.10.20 09:19수정 2022.10.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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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은 <백석평전>을 써서 그의 시의 모태가 되었던 백석에게 헌정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백석에 대한 기록물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석평전>을 읽고 찾아가는 길상사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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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백석평전> 백석의 삶과 문학에 관한한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다산책방


백석을 만나려면 길상사로

1980년대 민주화의 바람과 함께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해금시인으로 등장한 백석은 사실 재북시인이다. 남한에서 백석이라는 시인을 만나기 위한 방법은 길상사가 유일하다. 백석이 사랑했던 여인 김영한은 백석 너머에는 기생 진향으로 백석에게는 자야로 존재한다. 백석의 시는 그 자체로 우리 시단의 걸작이거니와 자야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또 다른 신화의 이름을 얻는다.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3대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길상사라는 절로 탈바꿈한 것은 이승과 저승, 사바와 극락의 경계를 뛰어넘을 만큼 극적이다.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자야가 7000평에 달하는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여 불가의 도량으로 만든 것이다.

백석은 1930년대 우리 문학에서 북방의 사투리에 편집적으로 집착한다. 거기에는 토속성과 공동체주의, 무속과 신화가 공존한다. 우리말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심해졌던 시대이고 보면 백석의 시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들어 두고자 하는 저항에 가깝다.

1930년대 한글을 지키고자 한 이들의 노력을 독립정신의 차원에서 기리고자 한다면 소월과 백석의 민족시를 같은 반열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소월은 서구 자유시의 범람 속에서 우리의 전통 민요를 현란하게 변형하면서 현대화했고 우리의 전통 정서를 통해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서정의 맥으로 현대에 붙들어 매어 두었다.

반면 백석은 일제의 침략이 더욱 가혹해져 갔던 1930년대의 조선 사회에서 절대로 빼앗길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공동체 정신과 생활 속에 엄존했던 평북 방언을 시로 형상화했다. 일제가 그렇게 집요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던 우리의 정서와 언어를 지켜 나갔던 것이다.

백석의 로맨스를 생각하며 걷는 길상사


길상사가 그러저러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라는 생각은 그곳을 걷는 내내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성당 앞의 성모마리아상을 떠올리게 하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는 오래 발걸음이 머문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성모상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인데, 법정 스님의 요청으로 제작한 것이라 한다. 요정에서 도량으로 변신한 길상사의 내력에 큰 뜻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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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관세음보살상 법정 스님의 권유로 성모상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상과 모습이 유사하여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한준명

 
백석과 백석이 사랑했던 나타샤 자야와의 로맨스를 생각하며 걷는 길상사의 오솔길은 또다른 정취를 더한다. 길상사를 찾으려는 계획이 있다면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 성북동 자락의 모든 길들은 가을과 어울린다. 다만 언덕을 오르며 사람을 압도하는 높은 담장을 건성건성 지나면 그 길을 내려올 때의 가을 풍경과 다시 만날 수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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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경내 길상사는 가을과 참 어울리는 곳이다. 오고 가는길에 만나는 성북동 길도 운치가 있다. ⓒ 한준명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은이),
다산책방, 2014


주요 지리정보

#길상사 #백석 #안도현 #백석평전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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