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50m 긴 줄이... 일본의 '차' 사랑

교토국립박물관 차도구 특별전시

등록 2022.10.28 13:18수정 2022.10.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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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8시 45분, 관공서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교토국립박물관에 갔습니다. 15분 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50미터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일본차 도구 특별전(茶の湯,10.8-12.4)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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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 도구 특별전(茶の湯,10.8-12.4)을 보기 위해서 교토국립박물관 앞에서 줄을 섰습니다. ⓒ 박현국

 
일본의 차 관련 상품과 시장의 규모는 가히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공자의 가르침이 조선시대 유교로서 정착된 것과 같이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관련 습속이 일본 차도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뛰어넘어 종교 수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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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사발 가운데 귀하게 대접을 받는 이도차완(교토 고호안(大?寺孤?庵) 절 소장)과 텐목차완(교토 류코인(大?寺龍光院)절 소장)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박현국

 
우리나라에 전하는 '찬기파랑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차를 마시는 풍습은 불교에서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차를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런 습관이 스님들 사이에 퍼지고, 불교가 지닌 정치적 속성에 따라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민중들이 귀족 문화라고 인식하고 따라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나 중국에서 시작된 차를 마시는 습속은 여유나 품격이 아닌 약이었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결합되면서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만드는 것이 널리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 차 나무가 잘 자랍니다. 지역적으로 인도, 중국 남부, 대만, 일본 간사이지역이 차나무 재배나 성장에 알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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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뿐만 아니라 와가시라고 하는 교토 과자집 앞에서도 이른 아침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슌도(甘春堂) 교토 과자집에서는 해마다 수백가지 교토 과자를 만들어서 팝니다. 차와 같이 마실 수도 있습니다. ⓒ 박현국

 
일본의 차를 마시는 습관은 처음엔 불교 스님, 귀족, 무사들 사이에 널리퍼졌습니다. 이것이 민간에서 흠모의 대상이 되면서 따라 하였습니다. 일본의 고온 다습한 환경이 차 나무 제배와 적합하여 일찍이 재배가 시작되고 생산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일본의 경우 불교 천태종이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천태종이 널리 퍼진 지역에서 말차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말차는 가루 차를 대나무 솔로 휘저어서 쓴 맛 그대로 마십니다. 차를 마시면서 쓴맛을 즐기고, 다시 쓴 맛을 없애주는 와가시(和菓子) 또는 교가시(京菓子)라 부르는 과자나 떡을 먹습니다. 이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찻잔 역시 말차를 마시기에 적당한 큰 찻사발이 중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크고 투박한 밥그릇이 이도차완(井戸茶碗)이라는 이름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남쪽 경덕진(景德津) 부근에서 만들어진 텐목차완(天目茶碗, 12,13세기)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도자완과 텐목 자완은 지금도 일본에서는 국보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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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와가시 전문점 간슌도(甘春堂)에서 맛볼 수 있는 와가시입니다. 차을 마시면서 먹는 과자로? 계절이나 만드는 방법, 재료 등에 따라서 한해 만들어서 파는 와가시는 수 백 가지가 있습니다. ⓒ 박현국

 
일본의 경우 초기 불교는 교토 남쪽 나라나 오사카에 전해져 아스카데라 절터, 호류지 절 등이 남아있습니다. 뒤에 일본 스님들이 직접 중국에서 불교를 전해오거나 일본 스님들이 깨우침으로 만든 새로운 일본 불교 종파가 생겼는데, 주로 교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전하는 차도 역시 교토에 도읍지를 정하면서 교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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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리큐에서 시작된 차도는 증손자 대에서 셋으로 갈라져 산센케(三千家)를 이루었습니다. (산케이신문 2022.9.4) ⓒ 박현국


일본 차도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꼽는 우라센케(裏千家) 역시 교토에 본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우라센케는 처음 차성이라고 불리는 리큐(利休)에서 시작되어 증손자대에서 후손들이 셋으로 갈라져서 산센케(三千家)라는 말이 있습니다. 리큐는 도요토미 명령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순교의 피가 되어 일본에서 차도가 종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차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에 머물지 않고, 차을 마시면서 필요한 것과 관련된 것들이나 차를 마시는 장소로서 차실을 짓거나 만들면서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일본 차도에서 센케쥿쇼쿠(千家十職)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사용하는 도자기 찻잔, 차를 담아서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나무 그릇과 겉에 바르는 옻칠, 차 가마를 만드는 쇠 주물, 차실을 꾸미는 대나무 도구, 차를 마시거나 차실을 장식하는데 사용하는 종이, 차가마에 불을 지펴서 물을 끓이는 숯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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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전에 나온 여러 가지 차도구입니다. ⓒ 박현국

 
이번 교토 국립박물관 교토 차도구 전시에서는 차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한데 모아서 용도별, 시대별로 나누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국내 차 소비는 줄었지만 외국에 수출하는 차는 늘었습니다. 아마도 일본 국내에서는 먹거리나 마실거리가 많아지고, 고령화 등으로 차를 마시는 소비가 줄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로서 차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온 덕분에 차를 마시는 외국인들이 늘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바빠지고,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일본 차도에서 차를 마시는 방법은 빠른 속도와 거리가 있습니다. 격식과 순서를 따지며 전통과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면서 차 한잔을 우려내서 마십니다. 초등학교에서도 특별활동시간에 차도를 가르치고 배우기도 합니다. 차도구 특별전을 보려고 이른 아침 줄을 선 사람들을 보아 일본에서 차 신앙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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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데 그치지 않고 차도를 배우고 연구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센리큐 차도 종합자료관입니다. ⓒ 박현국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차도구 특별전 #교토국립박물관 #차도종합자료관 #간슌도 교토 과자 #찻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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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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