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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있는 날

날씨가 맑아 찾아간 양평 벗고개... 사람들과 별을 보았다

등록 2022.10.30 15:14수정 2022.11.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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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오는 그믐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믐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어 있으면 아무리 그믐날이라고 해도 갈 수 없다. 비도 오지 않고 구름도 없는 그믐날이 필요했다. 이건 뭐 귀신을 보려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별 보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별 보기 좋은 날을 미리 검색해 둔 모양이다.


"날씨가 좋아서 오늘 별 잘 보이겠어."

25일 낮에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별 보는 날이 온 것이다. 맑은 날이 밤까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퇴근 후 허겁지겁 저녁을 차려 먹고 9시쯤 집을 나섰다. 옆집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별 보러 가자!'고 하니 바로 따라 나서서 넷이 함께 출발했다.

온 우주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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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보러 가는 길 늦은 시간이라 고속도로가 한산하다 ⓒ 김미영


우리의 목적지는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양평의 벗고개. 예전에 한 번 가본 곳이기는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벗고개'를 검색했다. 바로 검색이 된다. 도착 예상시간은 1시간 10분쯤 후.

별 보는걸 좋아하고 가끔 별을 보러 다니기도 하지만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장비도, 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별을 보기만 한다. 일이 있어 늦게 들어오는 날 불빛 없는 장소를 지날때면 차를 세워놓고 잠깐씩 별을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는 별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걸 "별멍"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가끔은 작정하고 돗자리 가져가서 깔아 놓고 바닥에 누워 오래도록 별을 본다.

그렇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 우주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벅차다. 운이 좋을 땐 별똥별(유성)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예쁜 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보지만 번번이 칠흑같은 하늘만 찍혀 있을 뿐이다. 내가 보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쁘게 떠 있는 별이 잘 찍히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스트레스 검사를 받는데, 검사하시는 분이 깜짝 놀라며 스트레스 지수가 이렇게 낮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인데, 뇌를 잠시도 쉬지 않고 쓴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일부러라도 머리를 쉬게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은 갱년기 증상으로 살짝살짝 짜증이 밀려오고 가습이 답답해 질때도 있어서 그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밤하늘의 별보기가 제격이다.

밤 시간이라 차가 별로 없어서 양평의 벗고개까지 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 안에서 넷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난 번 왔던 곳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왔나 보다 하고 내비게이션을 다시 검색해 자세히 보니 벗고개의 주소가 두 군데로 다르다. 우리가 가려던 벗고개가 이 곳이 아닌 것이다.

양평에 벗고개가 두 군데 있었던 모양이다. 서종면에 있는 벗고개와 양동면에 있는 벗고개. 별을 보려면 양동면에 있는 벗고개를 가야 하는데, 서종면에 있는 벗고개를 검색해서 온것이다. 다시 양동면의 벗고개를 입력하니 1시간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다시 양동면 벗고개로 출발! 간간이 불빛이 반짝이는 시골의 마을길과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드디어 별이 쏟아지고 있는 벗고개에 도착했다.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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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의 별 간신히 찍은, 벗고개에서 바라 본 하늘의 별 ⓒ 김미영


평일인데도 별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이곳저곳 망원경을 설치하고 관측하고 있는 사람들, 카메라로 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동호회에서 함께 왔는지, 여럿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별 보기 좋은 날이 맞는 모양이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숨이 멎을 만큼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별들을 보고 있으니 모든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편안하게 별을 보았다.

그렇게 몇십 분을 있었을까. 운 좋게 아주 커다란 별똥별이 떨어졌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 덕분에 그것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에 있는 모두가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봤다는 것이 이렇게 큰 연대감을 가져다 줄지 미처 몰랐다. 

그렇게 별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무척 편안했다. 하루하루 똑같은 생활의 반복속에서 마음이 답답하다면, 귀찮음을 털어내고 몇 시간만 투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도 나누고 깜깜한 하늘의 별을 보며 손도 한 번 꼭 잡아 주고 그렇게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다.

비록 다음날 아침은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해야 하는 일상이 되겠지만, 적어도 이 기분이 한 달은 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또 그믐이 오니 별 보러 또 가면 될 일이고.  우리는 "그믐"이라는 정기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별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별이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별 #그믐 #양평 #벗고개 #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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