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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서 '양심 없는 사람' 될 뻔한 사연

무인가게의 다른 말은 양심가게...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등록 2022.11.13 16:14수정 2022.11.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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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인가게에 붙은 빨간 글씨에 발걸음이 멈췄다. ⓒ 이유미

 
금요일(11일) 아침 운동 가는 길. 한 무인가게에 붙은 빨간 글씨에 발걸음이 멈췄다. "양심", 사장님의 피눈물같은 글씨. 그 밑에는 양심을 어긴 사람들의 몇몇 행위들이 나열돼 있고, 글은 제발 양심을 지켜달라는 눈물 겨운 호소로 끝이 난다. 나는 속으로 뜨끔한다. 하마터면 저 글 속의 주인공으로 한 줄 남았을 뻔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의 하원길,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성화에 못이겨 근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늘 무인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면 꼭 양심테스트장에 들어가는 듯 살짝 긴장한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CCTV 감독관이 매의 눈으로 물건을 집는 나를 감시한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마침내 계산을 할 땐 사뭇 경건한 태도로 시험지를 최종 제출하기전 오답을 확인하는 학생처럼, 틀린 계산이 없나 눈에 불을 키고 확인한 후 문밖을 나온다. 오늘 같은 날은 아이 둘을 대동했기에 긴장의 끈을 더 길게 잡아뺀다. 

눈으로 장난감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첫째, 자기 키 높이의 젤리, 사탕 등을 마구 집어들었다 놨다하는 둘째. 정신 사나운 아이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재빨리 아이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담아 계산했다. 꼼꼼히 계산을 마친 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양심테스트장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몇 발자국쯤 걸었을까? '동생 손에 젤리가 있다'고 첫째가 말했다. 아이 손에 들려 있는 작은곰 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재빨리 무인가게로 발걸음을 돌려 200원을 계산하고 나왔다. 휴우, 아들 덕에 오답을 무사히 고쳐 양심테스트에서 백 점을 맞고 개운한 마음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남편에게 아까 자신의 활약에 대해 말하곤 어깨를 으쓱했다. 남편은 쌍엄지를 치켜올리며 칭찬해줬다.

문득 무인가게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궁금해져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무인가게"를 입력했다. 가방에 아이스크림, 과자를 잔뜩 담아나간 학생들, 카드결제기를 뜯고 현금을 뜯어간 남성, 새벽에 무인가게에 들어가 몰래 용변을 보고 도망친 여성 등.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어느 날 아이의 하원 전,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무인이라 이름 붙여진 카페, 세탁방, 밀키트가게, 건어물가게, 문구점 등. 

무인가게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그곳을 이용하는 우리의 양심은 안전한가? 무인가게의 다른 말은 양심가게일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을 등에 업고 운영되는 가게. 하지만 그 양심들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까? 특히 무인 가게들은 아이들의 출입이 쉬운 곳이다. 양심이 아직 올바르게 여물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곳은 달콤한 무엇일까? 아님 독약일까?

그때 아이의 하원 차가 들어왔다. 아이의 잰걸음에 팔랑팔랑 흔들리는, 가방 고리에 붙은 곰돌이 모양 배지의 글에 시선이 멈췄다.

"양심(정직) : 실수로 깨뜨린 화분을 깼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내게 다가온 아이는 해맑은 미소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유치원에서 실수로 물 쏟았는데 선생님한테 솔직히 말해서 도장 받았어. 잘했지?" 

아이는 유치원에서 매달 미덕을 배우는데 이번달 주제는 양심인가 보다. 그래서 요즘 부쩍 집에서도 자신의 한 일을 바로 말하는 걸까? 아이의 행동이 배지 때문인가 씁쓸한 웃음이 나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이 양심배지를 달고 다니면 양심을 지키기 좀 수월해질까? 살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양심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울러 무인가게 사장님들께는 이런 문구를 추천하고 싶다. 

"백점인생을 살고 싶나요? 그렇다면 이 문을 나가기 전 당신의 양심에 오답은 없는 지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당신의 백점인생을 응원하는 주인 올림
#양심 #무인가게에서지킬것 #양심담은쇼핑 #소중한양심 #양심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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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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