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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사찰에서 '쉼표' 찍고 왔습니다

템플스테이 1박 2일 체험 후기

등록 2022.11.17 08:17수정 2022.11.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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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다. 그동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항목 중 '템플스테이 다녀오기'는 팍팍한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 동안, 그간 쌓여있던 부담과 피로가 몸에서 빠져나갔다. 앞만 보고 사느라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선물해줄 수 있는 템플스테이 체험을 소개한다.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센터는 간화선의 대중화, 템플스테이의 세계화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많은 내·외국인들이 도심 속에서 쉽게 부처님의 법을 만나는 도량이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높은 산 또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절들과 달리, 서울의 고층 건물 속에서 홀로 고고한 건축물의 자태를 뽐낸다.

국제선센터에 도착한 후, 5층 템플스테이관으로 올라간다. 법복 바지와 상의 조끼를 고른 뒤, 하루 동안 묵게 될 방으로 가서 짐을 푼다. 배정받는 방 이름들이 특이하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념, 정정진, 정정…. 이는 '팔정도(八正道)'라는 불교 교리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8가지 수행을 말한다.

나는 '정사유(正思惟)'라는 방을 배정받았다. 정사유는 올바른 사고방식 또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2015년 페이코 광고에서 흘러나온 "짜증을 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라는 CF송이 생각났다.

화가 나서 자기의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른 사유가 불가능하다. 성냄이 없는 마음은 자기의 마음을 바로 보게 도와준다. 템플스테이에서 명상을 하는 이유도 시끄럽고 번잡했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자신을 관찰하는 데 있다.

템플스테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국제선센터에서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명상'과 관련되어 있다. 봉림스님은 명상이 곧 '관찰'이라 했다. 쉴 틈 없는 일상에서 각자의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마음 챙김의 시간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속세에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실로 많다.

3시부터 첫 프로그램인 '요가'가 시작된다. 스트레칭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초보자들도 무리 없이 따라할 수 있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요가를 마치기 10분 전, 불을 끄고 요가 매트에 누워 온몸을 쭉 뻗고 눈을 감는다. 그저 눈만 감고 있었던 것뿐인데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곧이어 머릿속 잡념까지 사라진다. 이렇게 개운하고 가뿐한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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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테라피 완성작 충분한 공간감을 나타내는 사방화의 모습 ⓒ 정희주

 
두 번째 프로그램 '꽃 테라피'는 지하 1층 교육문화관에서 진행된다. 클래스는 서양 꽃꽂이로,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플로랄 폼에 꽃을 꽂아 꽃바구니를 완성한다. 꽃 테라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입체감을 살리는 것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바구니 속의 꽃들이 풍성하게 보여야 한다. 위, 아래, 옆 다양한 각도에서 최대한 오아시스의 형태가 보이지 않도록 꽃을 꽂아주는 것이 포인트다.

저녁 공양을 마친 뒤에는 '싱잉볼 명상'이 이어진다. 싱잉볼 명상은 국제선센터 템플스테이의 꽃이다. 봉림스님은 싱잉볼 명상이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참가자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명상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명상에 들어가기 전, 참가자들은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를 방에 두고 와야 한다.

그러면 스님이 참가자들의 손목에 아로마 오일을 발라준다. 침향으로 만들어진 아로마 오일은 지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데 효과가 좋다. 실로 그러한 것이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뜨겁고 맛이 맵고 독이 없다. 찬 바람으로 마비된 증상이나 구토, 설사로 팔다리에 쥐가 나는 것을 고쳐주며 정신을 평안하게 해준다"라고 나와 있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코끝으로 올라올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싱잉볼은 '노래하는 명상주발'이라고도 불린다.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던 도구인데, 표면을 문지르거나 두들겨 울림 파장을 만드는 종의 일종이다. 싱잉볼을 치면 '웅~' 하는 규칙적이고 미세한 소리가 발생하는데, 이때의 진동이 공기 중으로 함께 전파가 된다. 이것이 온몸을 이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쉼표 하나만 찍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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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다과상 차와 곁들이기 좋은 양갱, 현미와 누룽지, 무설탕 쿠키로 구성되어 있다. ⓒ 정희주

 
이튿날은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주어진다. 스님과의 차담은 지하 1층 교육문화관에서 진행된다. 정갈한 다과들과 함께 스님이 직접 내린 차를 맛볼 수 있다. 현미와 누룽지, 고려홍삼 양갱, 제주 골드 키위 양갱, 아몬드 쿠키와 코코넛 쿠키로 알찬 구성이다.

특히 쿠키들은 스님이 직접 무설탕으로 만든 것이다. 설탕이 첨가되지 않았음에도 달콤하면서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있었다. 따뜻한 차와 함께 곁들이니 이것이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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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차담 테이블 매트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수놓아져 있다. ⓒ 정희주

 
차담 시간은 인간관계로 인해 생긴 숙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시간이었다. 스트레스의 원인 중 90%가 인간관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대인관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에는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다니는 분도 있었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그것이 점점 쌓여 한 번에 터지는 일이 생긴다. 스님은 이것이 마치 물이 가득 차 있어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컵과 같다고 했다.

"사람한테 기대하고 가면 힘듭니다. 어딜 가나 사람 그 자체로 보세요. 사람이 보이면 그저 사람이 있구나, 나에게 말을 하는구나…. 저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거란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스님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잘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놓일 때, '우선순위'를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현재 내 상황에서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중요한지, 아니면 내 일이 더 중요한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물이 가득 넘치기 전 우선순위를 정해보고,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며 심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사후' 조치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사느라 정작 중요한 '자신'을 잊고 살고 있지 않은가?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쉼표 하나만 찍어주자.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고 싶은 방향으로 잘 걷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를 되돌아본 후, 속세로 다시 돌아왔을 때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가볍고 산뜻했다.
#국제선센터 #템플스테이 #국제선센터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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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기 위해 노력합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조금씩 그렇게 나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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