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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살아남은 저는, 모두의 치유를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증언] 골목길 아래쪽에 깔려있다 구조된 이선영(가명)씨 이야기

등록 2022.11.17 11:35수정 2022.12.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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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이선영(가명·28)씨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참사 당시 이태원의 한 지하 클럽 인근에서 1시간가량 깔려있다 구조됐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이씨는 현재는 한 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씨는 지난 11월 5일부터 자신의 SNS 계정에 참사 당시의 상황, 그리고 자신의 재활치료 과정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들을 모아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편집자말]
 14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희훈
 
[11월 5일에 남긴 기록] 이태원, 올해는 달랐습니다 

저는 이태원 참사 초기부터 깔려있다 구조된 생존자입니다. 다른 증언글도 많지만 초창기에 깔려있던 사람들의 글은 아무래도 잘 볼 수 없기에 직접 글을 씁니다(*이 글에는 참사 당시에 대한 부분적 상황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28살인 저는 20살 되고부턴 매년 고등학교 친구들과 코스튬을 맞춰 입고 이태원에 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3년 동안은 그러지 못했고, 거리두기가 해제된 올 핼러윈엔 친구들과 이태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밤 9시 30분쯤 이태원 메인 거리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사람들이 우측 통행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 방향에 사람들이 많아 가끔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눌리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이미 통행 자체가 어려웠고, 몇몇 술집에서는 사람들을 피신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그전에도 핼러윈 때 이태원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들 겪어본 지옥철, 딱 그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질서가 유지됐기 때문에 사람이 많더라도 길 중간에서 사람들끼리 사진을 찍는 게 충분히 가능했어요. 인기 많은 코스튬(복장)을 한 사람과는 길가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사진을 찍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아니었습니다, 절대.

'프로스트'를 지나 '로드' 즈음까지 갔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지하철 막차도 밤 10시 30분이라, 이 속도면 놓칠 것 같아 거리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마침 반대 방향 사람들이 수월하게 가길래 저희도 흐름을 따라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게 정확히 밤10시 3분입니다.

골목 앞에 도착해서 빠지는 순간, 사람들에 밀려 친구들 손을 놓쳤고, 그렇게 엉켜가다 지하 클럽 건물 입구에 사람 10명 정도가 뒤엉켜 쓰러져있는 걸 봤어요. 클럽 직원들이 그 사람들을 빼내려고 애쓰고 있었고요. 참사 초기 퍼진 루머처럼 사람들이 그 클럽으로 들어가려 했다거나, 마약에 취해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 골목길 양쪽이 다 벽이었는데, 그 입구만 트인 공간이라 그곳으로 떠밀려 쓰러진 것뿐이었습니다.


'큰일 났다, 어떡하지' 하는 순간 저도 뒤에서 떠밀려 사람들 위로 반쯤 엎어졌고 상황파악이 된 후 119에 신고하려고 폰을 드는 순간 또 위에서 덮쳤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휴대전화 화면조차 켤 수 없었어요. 오른손을 조금 뻗어 손잡아 달라고 손을 폈던 게, 제가 깔려 있던 1시간 동안의 모든 움직임입니다.

모두들 필사적이었습니다 
 
 10월 30일 오전 1시께 서울 이태원 해밀톤 호텔 왼편으로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해밀턴 호텔에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올라가는 골목길엔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10월 30일 오전 1시께 서울 이태원 해밀톤 호텔 왼편으로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해밀턴 호텔에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올라가는 골목길엔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권우성

신고하려고 휴대전화를 들었을 때가 밤 10시 십몇 분이었습니다. 이미 순식간에 제 위로 여러 명이 깔리는 바람에 그 이상 얼마나 더 깔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처음 깔릴 땐 오른쪽 종아리 밑에 바로 연석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바닥에 있었어요. 그 위치 그대로였으면 아마 종아리가 부러졌겠죠.


엎드려 깔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클럽 보안요원(가드), 직원들은 계속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인근 Y주점이 아니라 지하의 힙합클럽이었습니다) 저도 심호흡하며 버티려 노력했지만 심호흡할 만큼의 공간도 없었어요. 얕은 호흡에만 집중하다 기절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뿌려주는 물을 맞고 깼어요.

클럽 직원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 입구 앞 쓰러진 사람들에게 기절하지 말라고 물도 뿌리고, 바람을 뿌려주고, 손을 잡아주고, 잠들지 말라고 소리치고... 다들 필사적이었어요. 저도 몇십 분 동안 숨만 쉬자, 의식만 잃지 말자 하며 무조건 버텼고, 구조됐어요.

입원 중인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트위터를 붙잡고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길게 글을 씁니다. 그 이유는 사건과 해당 지하 클럽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라서, 고인에 대한 모욕을 하지 않길 바라서, 당장 당신의 타임라인 안의 사람 혹은 지인 중에도 당사자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랜만에 트위터를 켜면 접속이 끊긴 날짜부터 게시물이 보이잖아요. 그 당시에 지인들이 참사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있더라고요. 

사람 많을 거 모르고 갔냐, 안타깝지도 않다, 제 발로 걸어간 거 뭐 하러 애도해야 하냐, 핼러윈 가는 사람들에게 편견 있다, 이 나라에서 핼러윈을 왜 가냐, 유흥만 쫓다가 봉변당한 무식한 사람들일 뿐이다, 한심하다, 쟤네 다 마약 한 거 아니냐, 외국 문화가 그렇게 좋으면 외국 가서 살지 한국에서... 더 있는데 못 적겠네요.

그리고 그 클럽, 지하 클럽에 대해 다시 언급하고 싶어요. 확실한 건 저보다도 피해자들을 돕던 직원분들의 트라우마가 훨씬 심할 겁니다. 사건 초창기부터 사람들을 구하려 하셨는데, 저야 깔려서 보이는 건 그분들 얼굴과 다른 사람의 손들 뿐이지만 그분들의 시야는 저와 너무나 달랐을 거예요. 건물 입구를 꽉 채운 사람들의 머리와 자기만을 향해 뻗는 팔과 눈뿐이었을 거예요. 계단부터 천장까지…

그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중엔 저보다도 좌절스러운 표정으로 울면서 제발 기절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말하며 구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구조도 하셨습니다. 위에서 헤어졌던 제 친구들도 그분들이 깔리기 전에 구해서 클럽 안으로 들여보내 주셨습니다.

또, 클럽 직원분들이 구해진 사람들은 안으로, 의식 잃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너무 걱정됩니다. 그때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죄책감에 갇혀 계시진 않을까요. 그때의 광경이 눈 감았을 때 다시 펼쳐지진 않을까요. 이분들에 대한 심리 치료와 지원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의 심리치료를 너무나... 바랍니다.

[참사 그 이후] 최소한의 일상은 지켜내야 합니다 
 
 병원에 입원 중인 이선영씨는 요즘 재활운동을 받고 있다. 재활운동을 위해 가족에게 부탁해 받은 양말을 신고 찍은 사진.
병원에 입원 중인 이선영씨는 요즘 재활운동을 받고 있다. 재활운동을 위해 가족에게 부탁해 받은 양말을 신고 찍은 사진. 이선영씨 제공
 
여기까지가 참사 당시에 대한 저의 기억이고, 11월 5일의 글입니다. 현재 저는 1시간가량 압착되어 깔려 있던 후유증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운 채로 얕은 숨만 쉬다가, 어느 날은 숨을 조금 더 길게 쉴 수 있게 되고, 어느 날은 오른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고, 또 어느 날 아침엔 꼼짝 않던 왼 다리가 갑자기 굽혀지고, 어느 날은 드디어 몸을 옆으로 뉘일 수 있게 되고, 또 어느 날은 두 팔로 지지해서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가, 지난 12일엔 한 팔로만 매달리고도 몇 초나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이 다릅니다. 지금은 발목 아래로 전혀 움직이지 않지만, 모르죠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짜잔-하고 움직일지.

병원에서의 일상은 조금 정신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비몽사몽인 채로 여러 검사를 하고 나면 아침 7시 30분부터 밥을 먹어야 합니다. 오전 회진을 도시는 의사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양말을 챙겨 신고 허겁지겁 물리치료를 받으러 갑니다. 물리치료가 끝나면 운동재활을 하고 다시 병실로 올라와 마저 씻고 아침에 어질러 놓은 침대와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점심시간인 식입니다. 그러고 또 오후에 운동재활을 가지요.

저는 운동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걷고, 자전거를 타고, 필라테스를 하고, 홈트레이닝을 하고 춤을 췄습니다. 인바디를 찍으면 하체 근육만 평균 이상 나와서 '상하체 불균형'이 띡,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는데 사고 직후엔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근전도 검사를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던 중둔근이 꼼짝도 않더라고요. 갈라져있던 앞벅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제 신발장 안의 여러 종류의 댄스화와 하이힐과 스케이트 보드, 롱보드 그리고 롤러 등을 위해서라도 재활을 열심히 해야합니다. 

재활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몇 개월 혹은 그 이상을 더 해야 합니다. 재활이 끝나고서도 까치발을 못 들거나 무게를 못 버티는 등의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상으로는 돌아올 수 있다는데, 제게 일상은 운동과 춤이었기에 그다지  달가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올겨울에도 피겨와 발레를 배우려했는데 말이에요. 까치발을 못 들면 춤을 어떻게 추지 하는 생각에 조금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내년에 춤을 출 거라 결정했어요. 뭐든 제가 하기 나름이니까요.

최근엔 정신과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클럽에 일찍 구조되었던 제 친구들이 일상 생활에서 조금 힘들어 하더라고요. 평소엔 저보다 무던한 친구들인데 말예요. 그래서 자기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며, 저보고도 지금은 괜찮아보여도 병원 밖으로 나오면 어떨지 모른다고… 그래서 혹시 모를 트라우마의 씨앗이 있다면 다 뽑고 퇴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트라우마의 싹을 지금 찾아낼 필요는 없다더군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헤집을 이유는 없다구요. 지금 괜찮은데 굳이 상담까지 받다가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면서요. 만약에 나중에 언젠가 안 좋아지면, 그때 가서 상담받아도 괜찮다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마음 편히 평소처럼 일상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자신을 지켜내야 애도도 슬픔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들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본인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슬퍼하되 슬픔에 잠식되지 말고, 분노하되 이성을 잃지 말고, 맑은 정신이어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따질 수 있고 그에 미안해하며 추모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래서 우리는 일상을 지켜내야만 해요. 그것이 본인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이 말이 어떤 분들한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겐 정말 그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고 싶은 만큼 다 느끼는 것도 또다른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언젠간 꼭 일상을 온전히 느끼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그러니, 무너지지 않기를
 
 14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희훈
 
전 이 참사와 관련한 분노의 방향이 피해자들을 향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사건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이 더 폭넓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나마 치료를 위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지 않았거나 큰 외상이 없는 피해자들, 그리고 구조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도 분명 지원이 필요해요. 

그런데 주변의 얘기들을 들어보면 지원이란 걸 애초 받지도 못했고, 기대도 안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제 친구들도 사비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고, 지원 중 일부인 상담치료 전화를 받은 저희 어머니도 상담 첫마디부터 2차 가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며 화를 내셨습니다. 상처를 치료받으려 전화를 받았는데 오히려 상처를 많이 받으신 듯해요. 

그래서 아버지도 지원해주는 상담처 대신 제가 있는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셨는데, 지원처에서 그 상담비를 지원하겠다며 소견서와 기타 서류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구하는 서류를 떼는 것에 상담비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죠. 

참사 직후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정치인이 병원에 찾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했습니다.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였어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직 몸 상태가 안정되지 않은 피해자를 찾아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지 않나요. 한 명이 아닌 다수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이 참사에 대해 책임질 이들이 책임지도록 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 회복을 돕는 방안을 고민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차마 적진 못했지만, 저는 여전히 전과 똑같이 어이없고 웃긴 일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절 보고 다른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주제넘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기 힘들고 웃기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전 괜찮아요. 이런저런 일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꼭 전하고 싶었어요. 이 말이 누군가에겐 폭력적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동시에 이런 얘기가 매우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해서 24시간 괴로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그들을 위한 일을 해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우리는 먼저 바로 서야 해요. 

잊혀지지 않을 상처지만 상처 입은 모두가 괜찮아지길 바랍니다. 상처에 새살이 돋든, 딱지가 생기든, 상처 그대로 흉터가 남든 그 자체로 나아가는 거니까요. 설령 누군가 상처를 헤집어도 다시 위의 과정을 거쳐 더 단단해질 거예요. 그러니 무너지지 않기를.  
#증언 #생존자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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