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 겨울에 대비하는 마음의 자세

있는 힘껏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등록 2022.12.06 09:08수정 2022.12.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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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짐작하시는 대로 11월인 겨울에 제 생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좋아할 때,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멋쩍은 웃음) 아무튼 그렇습니다.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은 아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처럼 깨끗한 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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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unplash

 
삼심대 중반(?)까지만 해도 겨울을 좋아했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더위를 잘 안 타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추위를 잘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요-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태어난 저도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잘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심대 중반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40대가 되고 보니 제가 추위를 잘 느끼지 않았던 건 겨울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젊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추위가 비례하는 건 신체 대사량과 활동량, 근육량 뭐 그런 것과도 관계가 있겠지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추위를 더 많이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겨울이 예전만큼 좋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겨울이 되면 역시 마음이 가라앉곤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활동량이 줄어들고, 일조량이 줄어드니 햇빛을 쬐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40대가 되고 나서 좋은 점은 부족한 것,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 지내는 법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삼심대 후반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생일이 있는 11월이었습니다. 11월은 더 이상 제 생일이 있는 달이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있는 달이었지요. 어떤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아서 원래의 인상을 바꿔놓고는 하나 봅니다. 좋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이 되었고, 좋지 않은 것은 제게 상처가 되어 남았습니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좋지 않은 것이 언젠가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주저앉아 버렸고,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어요. 5년 동안 알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한 채'가 아니라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살아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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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새들' ⓒ 김지영

 
요시모토 바나나의 '새들'이란 소설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어요.
 
이렇게 힘겨운데도 역시 사는 편이 좋은 거야? 내가 울면서 간혹 그렇게 물으면, 사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쥐어뜯을 듯 머리를 긁어 대면서, 그래, 반드시 살아야 돼, 하고 말한다. 살아남은 우리마저 없어지면 그 사람들의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존재가 없어지는 거잖아. 그렇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가치가 있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심정인데도 한없이 안도한다. 

'새들'의 등장인물인 마코와 사가는 각자의 어머니를 자살로 잃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상처를 지우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고 그저 살아갑니다.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 이란 뜻을 가진 치유라는 단어에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나아진 상태를 의미하니까요. 저는 치유라는 것은 살아가는 내내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저는 거대한 영감이 넝쿨째 굴러와 나의 삶을 바꾸고, 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줄 멘토를 만나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지만-그래서 아직 요로코롬 살고 있나봅니다(웃음)-영감도 멘토도 한 순간에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같은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면 낡은 양말 속에 산타가 숨겨놓은 거대한-내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그 무엇-선물이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지만 현실은 브라운관 속 캐빈과  반가운 재회가 전부인 그런 일상 말입니다. 

그렇지만 매년 캐빈(영화 <나홀로 집에>의 캐빈을 한번쯤 만난 적이 있으시죠?)을 만나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캐빈을 만나는 일상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삶이 평온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과 대지에 발을 디디고 선 두 다리.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새삼 살아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가 무용수의 우아한 몸짓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늘해진 바람 냄새를 맡으며 옅은 겨울 햇빛 속을 걷는 것에 마음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해답을 알 수 없더라도, 살아있는 한은, 맘껏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겨울은 내게 이야기합니다.
#겨울 #추위 #요시모토바나나 #새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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