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새해를 맞아 '정어리'를 먹는 까닭

시가현 히노초 벳소 마을 산신제를 찾아서

등록 2023.01.03 08:21수정 2023.01.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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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시가현 히노초 벳소 마을 산신제에 다녀왔습니다. 벳소 마을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무병장수와 만사형통, 농사 풍년 등을 기원하면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이때 꼭 정어리 생선과 찹쌀떡을 장작불에 구워먹습니다. 산신에게 제물로 올린 정어리 생선이 신의 기운을 입어 먹는 사람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때 잡히는 값싼 생선이 정어리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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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이 산신에게 절을 하고 츠도에 든 제물로 음복을 합니다. ⓒ 박현국

 
벳소 마을은 히노가와 강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래 전 마을 사람들은 히노가와 강물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을 주변에 자리잡은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마을 사람이 많습니다. 생활이 바뀌었지만 오래 전부터 이어온 산신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산신제는 마을 동쪽 낮은 산 정상에 있는 신사 오른쪽 옆 마당 귀퉁이에서 지냅니다. 산신은 신사 신과는 달라서 별도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산신제 제물로는 찹쌀떡, 찰밥, 마른 오징어, 술, 감귤, 정어리들이 차려집니다. 그리고 산신제에 올리는 츠도에는 팥, 다시마, 멸치들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음복으로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찰밥도 장작불에 지어서 사용합니다.

벳소 마을은 전체 세대수가 50호 정도입니다. 해마다 마을 사람 가운데 나이 순으로 세 명씩 뽑아 산신제를 준비합니다. 이들은 일년 동안 산신제를 지내는 신사 주변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나무를 자르고, 낙엽을 없애는 등 청소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산신제 제일이 다가오면 제물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이 먹을 정어리나 찹쌀떡을 구입하거나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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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소 마을에서는 긴 꼬챙이까지 준비하여 정어리와 찹쌀떡을 꿰어서 장작불에 구워서 먹습니다. ⓒ 박현국

 
개인 사정으로 산신제를 당번을 맡을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사람과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가족 중에 변고가 있거나 몸이 심하게 아파서 입원치료를 하는 경우에도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못하다고 거부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솔선 수범으로 일을 담당합니다.

마침 마을 사람들과 옆자리에 앉아서 정어리와 찹쌀떡을 구워서 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집에서 먹는 찹쌀떡이나 정어리보다 이곳 마을 신사 옆 마당에서 장작불에 구워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합니다. 산 정상 부근 넓은 숲 속 신사 마당에서 공간이 주는 해방감과 장작불이 주는 자연 속에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분위기가 큰몫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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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정어리와 찹쌀떡, 츠도, 찰밥입니다. 주걱이나 젓가락들도 모두 대나무를 잘라서 만들었습니다. ⓒ 박현국

 
마을 사람 가운데 산신제에 참가하는 사람은 세대 호별로 한 사람씩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참가자들은 대부분 70대나 80대 이상 어르신들입니다. 50대 젊은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적극적으로 참가하시는 70대, 80대 이후가 문제입니다. 과연 지금까지 전해온 것처럼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오래 전 산신제를 지내는 방식을 고집하며 산신제을 지내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산신제을 담당하는 세대가 바뀌면서 간소해지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오래 전 산신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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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8백만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신은 신사 신과 산신, 곡식을 여물게 한다는 노가미 신, 무사 신입니다. 산신단에 버들가지를 세워놓은 것은 버들가지 흰 눈처럼 쌀이 많이 나기를 기원해서라고 합니다. ⓒ 박현국

 
<가는 법> JR 오사카역이나 교토역에서 비와코센 전철을 타고, 시가현 구사츠역에서 구사츠 선으로 갈아타고, 기부가와역에서 다시 오우미철도본선으로 갈아타고 히노역에서 내려 벳소(滋賀県蒲生郡日野町大字別所) 마을까지 걸어서 갑니다.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신제 #시가현 #히노초 벳소 마을 #정어리 #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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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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