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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원짜리 땅이 남편에게 준 것

40대 가장의 캐린시아 만들기... 남편의 도전을 응원하렵니다

등록 2023.01.13 08:51수정 2023.01.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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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육지 땅으로 출근한다. 제주 아파트에서 육지 땅으로 왔다갔다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육지 땅 구입 후 바뀐 남편의 일상. 물론 가깝게 제주땅을 구입할 수도 있었지만 땅값 상승으로 제주땅은 언감생심 꿈꿀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육지 지역으로 눈길을 돌린 남편의 시선에 딱 들어 온 1000만 원짜리 땅. 이주 열풍과 함께 남들은 제주로 들어오는 판국에 제주 토박이 남편은 반대로 육지 땅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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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만들기 직접 그네를 만들고 있는 남편 ⓒ 이효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꿈을 갖고 시작되었던 10년 전 우리 가족의 꿈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다시는 우리 처지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겨 왔다. 잔혹했던 지난 날들. 그리고 들려오는 올해 경제 전망 소식까지 우울하기만 하니 말이다.


무지출 챌린지도 모자랄 판국에 남편은 땅을 사고 무언가를 계획한다. 끝까지 말리려했지만 남편의 눈빛을 보니 '아, 이 남자에게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겠어'란 생각이 들더라는 거다.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달려나갈 때의 남편의 모습에서는 늘 열정적이고 힘이 넘쳤었기에.

하지만 남편은 사업 실패로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주부 우울증과 산후 우울증을 겪듯 아프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나만의 캐린시아를 만들고 싶어."

캐린시아. 스페인어로 피난처를 의미한다. 투우경기에서의 소가 위협을 피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는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네 40,50대 가장들은 어쩌면 소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삶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처럼 열심히 그저 밭갈이만을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소처럼 일만 하기 위해 태어난 건 분명 아닐텐데 말이다.

그래, 소가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피난처, 카렌시아를 만들어 주자. 그런데 어려운 이 시기, 남편에게 카렌시아를 제공하기에는 그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땅값이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1000만 원이라는 돈은 그냥 뚝딱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었으니. 또한 제주에서 육지로 오가는 교통비 또한 만만치가 않으니 지출이 더하면 더했기에 남편에게 이런 무리한 지출을 해도 되나 싶더라는 거다.


10년 넘게 자동차공업사 일을 해 온 남편. 남편은 그곳에서 판금 일을 했다. 쉽게 설명하면 사고 난 자동차를 마치 성형수술 하듯 다시 원래대로 깔끔하게 만드는 일이다. 쇠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이 주를 이루기에 늘 쇳가루를 맞아야 했고 용접하는 일이 많았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종일 일이 많았기에 연애 시절에도 작업복을 입은 모습을 자주 봐야만 했었다.

결혼 후 열어본 남편의 옷장 안에는 변변한 옷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단 몇 벌의 작업복만이 전부였었다.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쇳가루를 맞으며 일하는 날이 많았던 남편. 잦은 용접에 눈 화상으로 눈물을 흘리며 지내는 일이 잦았고, 지워지지 않은 기름기 묻은 손을 내미는 일을 항상 미안해 했다.

결혼 후 이런 힘든 일을 하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창업을 제안했고 남편의 새로운 일이 시작됐는데 역시나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았다. 이어지는 실패로 힘들어진 가정 형편. 남편은 다시 자동차공업사 공장에 나가야겠다고 했다. 보탬을 주지 못하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하지만 일하기 위해 공장을 찾았더니 현기증이 찾아왔고 다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기술 경력들을 버릴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남편의 건강과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남편의 일하는 즐거움, 활력소만은 빼앗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예전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 쉬엄쉬엄 하나씩 하나씩 만드는 즐거움을 이어나가고 싶어. 내 땅 안에서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맘 편히 만들어 나가고 싶어."

자신이 손수 직접 집을 지어 셀프드림하우스를 만들기도 하고, 또 카페 일과 글램핑 숙박사업을 할 때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쇠를 이용해서 뚝딱 그네를 만들기도 했고 그러면 근처 펜션 사장님들이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좀 만들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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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갑옷 투구를 입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갑옷 투구를 제작해 입어보고 있다. ⓒ 이효진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갑옷 투구를 직접 만들어 입어 시연까지 했다. 남편은 늘 그랬다.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고, 만드는 그 과정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 나갔다. 1000만 원 짜리 땅은 그런 남편의 꿈에 닻을 달아 준 셈이다.

'토끼굴에 빠진 경제.' 전문가들이 올해 한국 경제를 정의하는 말이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토끼굴에 들어가며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상황을 빗댄 표현으로, 올해 한국 경제가 미궁 속에서 헤맬 것을 전망하고 있다.

'토끼굴에 빠진 남편.' 2023년, 남편은 토끼굴의 미로에 빠져 길을 헤매게 될까? 아니, 토끼굴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남편이다. 토끼굴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남편이다.
덧붙이는 글 유튜브 <프레디 아빠의 버킷리스트> 영상에서도 볼 수 있어요.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5도2촌 #시골땅 #내땅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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