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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 꿈 뒷바라지, 아내는 "남편 믿는다"... 이 부부 좀 보세요

일하고 자식 키우고 공부하고 봉사하는 삶... 남해 임복동·강문순씨 이야기

등록 2023.01.22 11:55수정 2023.01.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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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시험지를 모아 필사하며 복기 중인 강문순(오른쪽)씨와 이 모습을 바라보는 임복동씨. ⓒ 남해시대

 
젊어 못 다한 학업의 꿈을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산수(傘壽, 80세를 이르는 말)에 이르러 마침내 이룬 이웃이 화제다.

지난해에 개근상과 표창장을 품에 안고 3년간의 방송통신중학교 과정을 졸업한 81세 강문순씨(경남 남해)가 그 주인공.


30년이 넘게 부부가 같이 즐기는 궁도, 수영, 게이트볼과 스포츠댄스, 에어로빅까지... 남편과 함께 여관 '진주장'을 운영 중인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한계가 없어 보였다. 진주에서 남해로 들어온 지 벌써 50여 년을 훌쩍 넘긴 강문순씨의 이야기를 지난 9일 직접 만나 들어봤다.

아내의 학업열 못지않은 남편의 아내 사랑

"우리 부모님이 6남매 중 아들 둘은 서울까지 대학을 보내 놓고 딸들은 초등학교만 보내줬어요."

강문순씨는 어려서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특유의 밝은 성격과 부지런함으로 살아오던 중, 남해군재향군인회 여성회 회장으로서 견학 간 타 지역 회장들이 다 고학력자인 걸 보고 결심했다. 지금이라도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이 사람이, 학식이 모자란 걸 평생 뼈에 사무쳐 했지. 운동이든 뭐든 배우겠다는데 내가 나섰지요." 남편 임복동씨의 말이다. 강문순씨의 학업열도 대단하지만 남편의 지극한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졸업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경남에는 창원시와 진주시에만 방송통신중학교가 있기 때문이었다.


임복동씨는 진주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아내를 위해 3년간 결석없이 매주 남해와 진주를 오갔다.

그녀가 꺼내든 두툼한 노트에는 그간 배우며 치른 시험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녀는 3년간 수학한 내용을 복기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모자란 내용을 채워 넣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꼭 '수고' 또는 '수고했어요'가 적혀 있다.

진주장에 묵는 손님들의 빨래며 뒤치다꺼리를 하고 운동까지 다녀오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공부는 빼먹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응원을 보낸 것이다. 나이를 생각하면 그녀의 체력과 학구열은 한편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남편 없이 못 산다"는 강문순씨, 밝은 성격이지만 남편이 허리 수술로 오래 집을 비웠을 땐 우울증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밥맛도 없고, 그저 온종일 노트에 영어 단어만 써내려 갔다. 지치면 잠들었다가, 눈 뜨면 단어장을 붙들고 써 내려간 노트가 자그마치 7권. 그녀가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고령의 남편이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될 것이 걱정돼서다.

방통중을 다니며 사용한 교과서와 필기구, 노트들을 꺼내 놓고 보여줄 때는 진짜 중학생이라도 된 듯 즐거운 표정인 강문순씨. 그리고 뒤에 앉은 임복동씨의 말없이 흐뭇한 얼굴. 이렇게 정다운 노부부를 살면서 몇이나 볼 수 있을까? 기러기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날 부산에서 구경을 오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베푼 만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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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의 꿈을 이룬 강문순씨(오른쪽)와 공부를 도운 남편 임복동씨. 지치지 않는 열정만큼 노부부의 사랑도 끝이 없어 보였다. ⓒ 남해시대

 
남편 임복동(84)씨는 진주시가 고향으로, 일찍 공업사에 취직해 일하며 기술을 익혔다. 그는 군 제대 후 28세 젊은 나이에 공업사에서 선박 엔진을 다루던 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펼친다는 꿈을 안고 1966년에 남해로 들어왔다.

사면이 바다인 남해에서 선박 엔진을 다루는 것은 당시로선 유망한 사업이었다. 남해로 들어온 지 1년쯤 됐을 때 미리 선을 봐뒀던 고향사람 강문순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마침내 남해에서 일가를 이루게 됐다. 부부는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처음 들어왔을 땐 너무 힘들었지. 숟가락 하나만 들고 들어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맘 고생이 많았어요. 고향 사람들은 '대체 왜 남해로 가느냐'고 했지만 남편만 믿고 들어왔어요." 강문순씨의 회고다.

남편 임복동씨는 철공소를 열어 하루 종일 기름밥을 먹고 손가락에 자리를 튼 굳은살을 자랑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았다. 형편이 나아지고 아들 셋에 딸 하나까지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부가 억척같이 번 돈으로 읍에 만물상을 열면서다. 만물상은 강문순씨가 맡았다. 둘 다 밝은 성격이라 하나 둘 단골 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철공소와 만물상이 번창했다. 

오랜 세월 부부의 생계가 되어준 진주장은 남해대학교 학생들 사이엔 노부부의 친절함으로 소문난 곳이다. 매일 넘쳐나는 세탁물과 씨름하면서도 운동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데다 독거노인도 돌보고 있다.

"베푼 만큼 돌아온다"며 밝음을 잃지 않는 노부부, 이들에게서 건강한 노년의 삶을 배울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남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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