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미주신경성 실신 그후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등록 2023.02.03 08:46수정 2023.02.0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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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30분.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밤에 울리는 전화 소리는 내게 엄청난 긴장이 동반된다. 무슨 일이냐 놀라서 묻는 내게 '그냥, 전화 잘 받나 해서'라고 말하는 엄마. 4시간 전에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휴대전화 건너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혼자서 두려움을 떨쳐보고자 애쓰다 전화를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지난 설 명절에 화장실에서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이마를 크게 다쳤고다. 병원에서는 천운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쓰러질 당시 다쳤던 이마를 제외하고 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 정도 지난 상태다.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언제든 전화를 받을 테니 자다가도 무서우면 전화하라는 말 이외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떨어져 사는 딸 밖에는 두려운 마음을 의지하고 호소할 수 없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낮에도 쓰러졌던 화장실에 들어가면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다고 했다. 사고 이후 처음 며칠은 쓰러졌을 때 몸으로 느꼈던 충격 때문이거나 처방받은 항생제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누가 봐도 트라우마다. 사방이 조용하고 어두운 밤이 되니 울렁거림은 두려움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가 보다.

이게 정말 트라우마가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검색 사이트를 통해 찾아보니 이런 엄마의 증상은 트라우마에 완벽하게 부합된다. 상담사인 친구 또한 말한다. 트라우마.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인다고.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 등 몸에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니 당장은 아니지만 심할 경우 공황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도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를 모시고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일 테지만, 부모님 세대가 갖는 심리상담의 이미지는 젊은 세대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은 마음이 앓는 감기 같은 거라는 생각으로 신경 정신과 또는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심리상담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님 세대는 심리상담이란 곧 정신과이며 정신과는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병증'이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의 문턱을 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편은 며칠 친정에 가서 지내다 오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의 마음 써줌과 배려가 고맙다. 그 대신 옆 동네 다니듯 가볍게 다닐 수는 없어도 평소보다 자주 오가려 노력하고 있고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곁에서 알려드리면 더 좋을 테지만 그런 증상이 시간 맞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알고는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삼당사인 친구가 알려준 방법을 엄마에게 알려 드렸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거나 두려워지면 일단 1.편안한 자세로 눕거나 앉고 2.심호흡을 하고 3.양팔로 나를 안아주듯 어깨를 감싸고 4.좋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언제든 내게 전화를 걸면 받을 테지만 이런 방법이 극복에는 더 효과가 있을 테니 한 번 해보시라고.

증상이 심해지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엄마는 과거 이명 때문에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은 약이 바로 신경안정제였다. 이명에 바로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용도였다. 혹시라도 나중에 너무 힘들면 당시 먹었던 것처럼 안정제를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복용 경험이 있어서인지 다행히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크고 깊지만 그에 반해 회복이 빠르다고 좋아했는데, 상처라는 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렇게 새삼 또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힘든 그 마음을 당사자인 엄마가 혼자 속으로만 삭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힘들고 몸으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손 내밀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충분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일시적인 증상으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으나 혼자가 아닌 함께이니 그 길이 조금은 수월하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PTSD #미주신경성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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