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규제 완화의 상징 노들섬... 그곳에 얽힌 죽음의 역사

예나 지금이나 노들섬 개발에 관심 큰 서울시장... 노들섬에 기록돼야 할 최소한의 역사

등록 2023.02.12 14:22수정 2023.02.12 14:22
4
원고료로 응원
a

노들섬의 노을 한강철교와 여의도 빌딩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 이한복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은 인공섬이다. 1916년 3월 조선총독부는 한강인도교 건설 공사를 시작하면서 더 쉽게, 더 적은 비용을 들여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한강 중간 모래톱에 언덕을 쌓아 섬을 만들었다. 노들섬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노들섬 개발은 이명박 시장이 재임하던 2005년 1월 '중지도 문화단지 조성 계획' 수립이 그 시작이었다. 서울시는 그해 6월 ㈜건영으로부터 274억 원의 예산을 들여 노들섬(45,374㎡)을 사들였다.

복합문화공간, 장고 끝에 둔 악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들섬 개발에 관심이 컸다. 서울시는 2006년 10월 4일 시장 방침으로 '노들섬 문화 Complex(컴플렉스) 민자사업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타당성 용역을 실시했다. 그러나 최소수익률 미달로 부적합 의견이 제시됐다.

2009년 3월 서울시는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설계안 현상공모 당선작을 발표했다. 박승홍 건축가의 '춤'이 당선작으로 선정됐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과도한 설계비 요구(130억 원→354억 원)와 설계 콘셉트가 일본 구겐하임 미술관 현상 공모작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오페라하우스 건립비 6184억 원과 매년 600억원 이상 운영비가 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됐다. 섬이라는 입지의 적합성(접근성 등)의 문제와 대규모 공연장보다는 거주지 근처의 소규모 공연장을 선호하는 시대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할 경우 노들섬 생태계 보전도 문제였다. 표류하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은 2011년 8월 26일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면서 무산됐다.
 
a

한강대교 1917년 10월 완공된 한강대교(한강인도교). 조선총독부는 한강인도교의 건설을 쉽게 하고, 건설 경비를 줄이기 위해 다리 중간에 인공섬(노들섬)을 만들었다. ⓒ 전상봉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노들섬엔 텃밭이 조성됐다. 2012년 6월 2일 노들 텃밭에서 박원순 시장은 '서울 도시농업 원년 선포식'과 함께 모내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아까운 공간을 텃밭으로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비판을 의식한 서울시는 2015년 6월 노들꿈섬 운영계획과 현상설계를 공모했다. 그런 다음 2017년 7월 기본계획과 실시설계를 완료한다. 그리고 2017년 10월 26일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공사를 시작해 2019년 9월 28일 마침내 완공했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은 3층으로 구성됐다. 1층에는 라이브하우스, 뮤직라운지 류, 세미나실, 노들서가 등이 있다. 2층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3층에는 루프탑이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에는 한강대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육교를 놨다. 복합문화공간이 있는 서쪽 노들섬에서 육교를 건너면 다목적홀과 맹꽁이 숲이 동쪽 섬에 조성돼 있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은 15년이라는 긴 시간과 논란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긴 시간과 논란의 결과물이 대기만성의 큰 그릇이 아닌 장고 끝에 둔 악수가 됐다는 사실이다. 노들섬을 방문해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
 
a

한강인도교 폭파 현장 동판 한강대교 북단 인도에 설치된 '한강인도교 폭파 현장' 동판. "6.25 발발 직후 정부의 일방적인 교량 폭파로 피난민 800여명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 전상봉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이 완공되고 1년이 지난 2020년 6월 28일 노들섬에 구리로 만든 기념물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노들섬에 제막된 기념물은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다. 위령비 건립은 평화재향군인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위해 평화재향군인회는 2007년부터 여러 차례 서울시에 협조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한강인도교 개통 100주년인 2017년에도 위령비 건립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서울시 노들섬특화공간조성위원회는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콘셉트와 위령비 건립 취지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위령비 건립은 박원순 시장의 결단으로 가능했다. 2018년 4월 박원순 시장은 평화재향군인회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위령비 건립 요청을 받고, 서울시의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완공 이듬해인 2020년 6월 28일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설치된 것이다.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는 노들섬 남쪽 한강대교 아래(용산구 이촌2동 383-1)에 있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주차장 계단을 통해 섬 하단부로 내려간 다음 한강대교 쪽으로 가면 위령비를 만날 수 있다. 구리로 만든 위령비는 길이 4.7m, 폭 1.1m의 평평한 삼각뿔 모양으로 바닥에서 10cm가량 돌출된 형태로 설치됐다. 노들섬 하단부가 물에 잠길 경우 유실되지 않도록 바닥에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됐다. 노들섬에서 자생하는 들꽃이 새겨져 있는 위령비에는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이 적혀있다.
 
a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 2020년 6월 28일 노들섬에 설치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희생자 위령비. ⓒ NiCo Kwon

  
"1950년 6월 28일 새벽 한국군은 서울에 침입한 북한군의 도항을 막기 위해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그때 이 자리에서 원통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해서 추모공간을 조성하고 이 글을 새긴다. - 2020년 6월 28일 서울특별시"
 

위령비를 보고 노들섬을 돌아 북쪽으로 가면 한강대교 상판 아래에 한강인도교 폭파사고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는 원혼비(冤魂碑)가 있다. 원혼비는 거칠고 조악하다. 콘크리트 받침에 세운 하얀색 각목 앞면에는 원혼비가, 뒷면에는 사회적공론화미디어투쟁단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라는 단체 이름이 적혀있다. 서울시가 위령비 건립을 모르쇠 하자 몰래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정 때문에 원혼비를 눈에 띄지 않게 세웠을 것이다.
 
a

원혼비 노들섬 북쪽 한강대교 상판 아래에 세워진 한강인도표 폭파 희생자 원혼비(?魂碑). 앞면에는 ?魂碑가, 뒷면에는 사회적공론화미디어투쟁단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가 적혀있다. ⓒ 전상봉

  
서울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친절

2023년 2월 9일 서울시는 미래공간기획관, 주택정책실, 도시계획국이 공동으로 작성한 <오세훈 시장, 도시건축디자인 혁신으로 서울을 바꾼다 … 첫 대상지 '노들섬'>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서울의 디자인 혁신을 위해 "불합리한 규제개혁과 행정지원 등 개선 방향 마련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특색있고 상징성 있는 건축물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혁신방안은 창의적 설계 유도, 유연한 제도운영, 신속행정(통합심의를 통한 신속한 사업추진 및 건축디자인 관리)을 골자로 한다.

서울시는 노들섬을 첫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검증된 국내·외 건축가를 초청해 지명공모 방식으로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약 120일 간) 진행 중이며 현재 모든 참여자는 노들섬 및 한강 일대 답사를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a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오전 시청에서 도시건축 디자인 기자설명회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a

노들섬 수상 예술무대 서울시는 2023년 2월 9일 노들섬에 한강과 여의도의 석양을 배경으로 하는 수상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 서울시

 
서울시가 덧붙인 "그동안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한강의 낙조를 비롯해 노들섬과 한강의 숨은 매력을 찾아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줄 수 있는 명소로 만든다는 목표"와 "노들섬 동-서측을 연결하면서 한강의 석양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보행교를 신설"하며, "한강을 배경으로 한 수상예술무대도 새롭게 마련할 계획"도 좋다. 다만 세부 계획수립과 사업추진에 앞서 서울시민들이 노들섬에서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짚어 봤으면 한다.

요컨대 한강이 있기에 서울이 수도가 될 수 있었고 현재와 같은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인도교 폭파로 800여 명이 죽고, 국군병력 46%가 한강 이북에 고립됐던 참극이 벌어진 현장이 이곳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터지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후퇴하던 국군이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친 지역 또한 이곳이다. 후퇴하던 국군은 황급히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편성하고 김홍일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한강방어선전투를 치른 전장이 노들섬 남쪽 노량진과 흑석동 일대였다.

노들섬을 찾는 서울시민들에게 한강의 낙조와 전망대와 수상예술무대도 좋지만, 한강의 의미와 한강인도교 폭파사건 그리고 한강방어선전투에 대한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노들섬을 찾는 시민들에게 서울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친절이 아닐까.
 
a

노들섬에서 바라본 흑석동 노들섬에서 남동쪽 방향에 위치한 동작구 흑석동을 바라보고 찍었다. ⓒ 전상봉

#한강 #노들섬 #오세훈 #한강인도교폭파사건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