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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주는 게 어렵나'라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에게 스며들다

등록 2023.02.13 09:15수정 2023.02.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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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옹." 오늘따라 두리의 울음소리가 여느 때와 다르다. 약간 목이 쉰 소리로 보채는 듯도 하고 화가 나 보이기도 한다. 연신 앞을 가로막으며 애교인지 시위인지 배를 보이며 발라당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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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쟁이 두리 만나면 반갑다고 애교 부리는 고양이 ⓒ 도희선

 
한 발자국 내디디면 따라와 또 드러눕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녀석. 마치 그동안 어디 갔다 왔냐고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다. 밥을 주어도 먹지 않고 계속 만져 달라고 칭얼댄다. 닭가슴살 간식 하나를 잘게 부숴 주니 겨우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와서 안긴다.


사흘 전. 그러니까 지인들과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탓인지 길고양이 세 녀석 중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는 찬 바람만 쌩하다. 날이 많이 푹해졌지만 이른 아침 공기는 아직도 코끝이 맵다. 오늘 하루치 밥을 듬뿍 담아 두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 뒀다.

이웃집 하우스 안에 잠자리를 두고 있는 두리를 목청껏 불렀지만 반응이 없다.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다. 평소대로라면 아침 먹을 시간이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다친 다리에 약을 발라 줘야 하는데 나오지 않으니 마음이 쓰인다. 며칠 전 어디선가 찢긴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삼일이나 약을 바르지 않으면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사 온 후 2박 3일 동안 집을 비우기는 처음이다. 반려견 두강이 때문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도 다음 날 아침 먹자마자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때론 같이 간 일행을 두고 먼저 온 적도 있었다.

2박 3일은 강아지 혼자 둘 수 없다. 산책은 못 시키더라도 누군가 와서 돌봐줘야 한다. 물론 동물병원이나 반려견 호텔에 맡기면 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워낙 멀미를 심하게 하는 녀석이니 1시간 거리에 있는 반려견 호텔에 가는 것까지가 고역이다.

게다가 덩치만 컸지 낯선 곳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녀석에게 스트레스가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일 년 전부터 내 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고양이 세 마리의 밥도 챙겨야 한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근처에 사는 지인의 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고등학생인 M은 마침 방학인 데다 우리 집에도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으니 적임자다. 삼 일간 아르바이트 삼아 도와줄 수 있냐고 말을 건네 봤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들인다.

마음 같아선 하루에 두 번 다녀갔으면 싶지만 무리한 부탁이다. 출발 전날 M에게 배변판 청소, 하루 먹일 양의 밥과 간식 종류를 차례대로 일러 준다. 마당으로 올라와 고양이 밥 주는 법도 말해준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주지만 M은 한 번밖에 올 수 없으니 하루치 양과 깨끗한 물을 갈아주도록 단단히 부탁한다. 그제야 우리의 짧은 여행 준비가 마무리되는 듯하다.

막상 집을 떠나니 반려견보다 고양이 걱정이 앞섰다. 반려견은 마음 쓰이긴 하지만 집에 안전하게 있으니 먹거리를 챙겨주고 배변판만 치워 주면 될 일이다. 고양이들은 밥 먹는 시간도 들쭉날쭉에다 먹성이 좋은 한 녀석이 다른 놈의 몫까지 먹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에는 CCTV로 녀석들이 밥 먹으러 왔는지 살펴봤다. 낮에 M이 전화로 한 마리가 속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해서 신경이 쓰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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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에 빠진 고양이 알콩달콩 사이좋게 낮잠 자는 고양이 ⓒ 도희선

 
길고양이들은 처음엔 일주일에 두어 번 놀러 왔었다. 다음엔 하루에 두 번. 그러더니 낮 시간엔 아예 마당에 눌러앉길래 여름엔 그늘막을, 겨울엔 집과 방석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도시의 길냥이들과는 달리 좀체 갇힌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 오는 아침, 바람이 세찬 오후, 한겨울 추위에 내몰린 어스름 저녁에도 마당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을 보는 내 속만 타들어 간다.

녀석들과 첫 겨울을 넘기다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리는 녀석들 생각에 따뜻한 이불속에서 좀 더 꼼지락 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일어난다. 어쩌다 늦잠이라도 자게 되면 서둘러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치고 커피포트에 물을 데워 나간다.

끼니 때에 세 녀석 중 한 놈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수시로 창밖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녀석이 나타나면 밥 먹다가도 숟가락을 놓고 마당으로, 설거지하다 거품 묻은 장갑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또 뛰어 나간다. 나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스며들었나 보다.

다들 말한다, 함부로 집에 동물 들이는 게 아니라고 정 주지 말라고. 그 말이 맞았다. 처음엔 그저 '밥이나 주지. 그게 뭐 어렵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생명과 관계 맺는 일은 시작은 쉬워도 내 맘대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밥을 주는 동안 나는 고양이들에게 아이들은 내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이름을 부르면 멀리서 뛰어오고 가던 길도 멈추고 다시 돌아본다. 나 역시 창너머의 녀석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목을 빼고 쳐다본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엄마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걱정도 많아진다. 자칫 외출했다 늦기라도 하면 녀석들이 한 끼를 놓치게 된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녀석들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개나 고양이 때문에 날씨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쩌겠는가. 어린 왕자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를 길들였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고양이들이 못난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떠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인연의 끈을 놓을 순 없다. 그러니 얘들아! 너희도 나를 책임지렴. 안타까움과 기다림으로 날 애타게 하지 말아 다오. 너희가 아침 여덟 시에 온다면 나는 일곱 시부터 행복할 거야.
덧붙이는 글 brunch.co.kr/@dhs9802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고양이 #길고양이 #반려동물 #생명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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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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