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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범인인 줄도 모르고... 참사 나 때문인가 지금도 죄책감"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부상자 전융남씨의 호소... 대책위 "트라우마 치료 적극 나서야"

등록 2023.02.17 14:43수정 2023.02.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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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전동차에서 방화범을 붙잡은 전융남씨는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 조정훈

 
"지금도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죽은 영혼이 나를 원망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당시 돌아가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빨리 그분들 곁으로 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0분경.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부상을 당한 전융남(85)씨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5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융남씨는 20년 전 그날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당시 그는 교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앙로역 인근 대구우체국으로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하필 집에서 조금 늦게 나와 늘 타던 시간이 아닌 다음 전동차를 탔다.

전씨는 중앙로역 바로 전인 반월당역에서부터 맞은편에 앉은 남성이 라이터 부싯돌을 당기는 걸 봤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처음엔 담배를 피우려나 보다 싶었다.

"50대쯤 되는 남성이 파란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인상이 좋았어요. 옆에 물통 같은 게 있길래 산에 가서 생수를 떠 오는 거로 생각했죠. 휘발유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이 남성이 자꾸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 시도하자 전씨는 "왜 그러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이 남성은 라이터를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더니 잠시 후 다른 라이터를 꺼내 부싯돌을 당겼다. 전씨가 또 고함을 지르자 이 남성은 불을 끄면서 전씨를 쳐다보았다.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할 즈음, 이 남성은 다시 라이터를 꺼내더니 휘발유를 담은 통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 남성의 몸에 불이 옮겨붙었고 휘발유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전동차 안은 불바다가 됐다.


"평생 트라우마 안고 사는 부상자들... 대구시 무책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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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정차중이던 열차에 방화로 화재가 시작되어,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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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정차중이던 열차에 방화로 화재가 시작됐다. ⓒ 권우성

    
전씨는 순간적으로 전동차 밖으로 뛰어나왔지만 이 남성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들어가 목덜미를 잡고 전동차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양복 윗도리를 벗어 남성의 몸에 붙은 불을 껐다.

조금 있으니 '펑' 소리가 나면서 전기가 나갔고 중앙로역은 암흑천지가 됐다. 전동차 안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길이 솟아오르면서 역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우성이었다. 전씨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범인을 데리고 같이 나가자고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범인을 끌고 나오기엔 힘이 벅차 계단 밑에 놔두고 중앙로역에서 탈출했다.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오니 밀폐된 공간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소방차 2대가 보여 달려가 소리쳤지만,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후 그는 한동안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저녁에 자면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깨기도 한다. 그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떨린다. 낮에도 잠깐 졸다 보면 "구해달라"고 하는 외침이 들린다.

전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8층에서 투신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다리를 잡고 말려서 살았다.

"지하철을 탔을 때 휘발유통이라는 걸 미리 알았으면 큰 피해를 막았을 텐데... 내가 너무 무식해 대형 사고가 났다는 죄책감이 든다."
 

이날 사고로 전씨는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2달가량 입원하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지금도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정부와 대구시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전씨는 "당시 사망자들은 놀러 가는 길이 아니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 때문에 지하철을 탔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부상자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데 정부나 대구시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호소했다.  

"참사 16년 만에 만든 지원조례, 끝까지 유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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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부상자대책위 위원장은 "당시 사고로 많은 부상자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정부와 대구시가 제대로 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조정훈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대책위원회 측은 전씨와 같이 트라우마를 겪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부상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 위원장은 "한 부상자는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았다. 그분은 불만 보이면 불을 끄러 다니고 방안 전등불이 켜지면 아궁이에 들어가 숨기도 했다"며 "결국 그 가정은 파탄이 나고 가족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결혼 적령기에 있던 부상자 중 90% 정도가 결혼을 못 했다.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대구시에 위기상담센터를 만들어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하기 1년 전인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미국에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을 보고 부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시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구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방방재청이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에 심리지원센터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이용되지 못했다. 지금은 적십자사에 심리지원센터가 만들어져 있다.

이 위원장은 "수없이 많이 얘기했지만 대구시는 예산이 없다며 심리치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서 "처음부터 심리치료를 했더라면 지금쯤 트라우마를 겪는 부상자들은 적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대구시는 지하철참사가 발생한 지 16년이 지난 2019년 10월 '대구지하철화재사고 부상자 의료지원조례'를 제정하고 후유증을 겪는 부상자들에게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상자 의료비 예산 중 절반도 집행이 안 됐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시행 첫해인 2019년에는 전체 예산의 4%만 의료비로 집행됐고, 의료비 이용자는 50여 명에 그쳤다. 의료지원 가운데 심리치료 이용률은 더욱 저조해 지금까지 심리치료비를 청구한 부상자는 16명에 불과하다.

조례 제정 당시 지원 대상은 전체 부상자 151명 가운데 136명이었다(사망, 국외이주 제외). 이후에도 조금씩 줄어 6명이 사망하고 130명만 남았다.

이동우 위원장은 "지금 살아있는 부상자들에게는 지하철참사로 인한 고통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마지막 부상자가 살아있을 때까지 조례가 유지되고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하철참사 2주기를 이틀 남겨둔 지난 16일 중앙로역 추모벽을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 뒤 "부상자들이 요구하는 부상자 치료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20년 전 참사에서 뭘 배웠나... 부끄러움 없는 뻔뻔한 정부" https://omn.kr/22qqd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0주기 #부상자 #트라우마 #심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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