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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이용 말고 식물이 좋아할 환경 찾아주세요

이난영 작가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북콘서트

등록 2023.03.02 09:37수정 2023.03.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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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전등 옆에 있던 화분을 바람이 불고, 볕이 드는 곳에 옮겼다. 지난 2월 26일에 있었던 이난영 작가의 전시와 북콘서트를 다녀온 후였다. 평소 SNS에서 본 그녀의 그림과 글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10년 만에 두 번째 그림 전시를 열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책을 발간했다. 그녀를 좀 더 알고 싶었다. 

본격적인 북토크에 앞서 작은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수상자였던 이주영 씨는 작가가 2019년에 썼던 글 하나를 보자마자 "노래 가사로 그대로 써도 되겠다 싶었다"며 <나무가 된 사람들>을 불렀다. 아마츄어 증폭기, 야마가타 트윅스터로도 활동하는 한받 씨는 "책 속 할머니, 식물, 나무에 의지하며 사는 모습들은 잊고 있었던,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모습 아닌가. 그 밤의 어두움에 대해 생각했다. 종로에서 고공 농성을 시도했던, 대기업 갑질 피해자에게 연대하러 가서 같이 기동대에 둘러싸이고 잡혀갔던 밤이었다"며 작가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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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작가와 세스 마틴 세스 마틴(Seth Martin)은 이난영 작가가 좋아하는 John Prine의 Hello in there을 불렀다. ⓒ 수피아

 
공연이 끝난 후 본격적인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아래는 출판사의 대표가 준비한 질문에 대한 이난영 작가의 답이다. 

-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맞다. 난초 난, 꽃부리 영. 아버지도 동식물을 많이 사랑했다. 하루는 대형마트 앞에서 동물체험 행사를 하는 걸 보고 케이지에 갇힌 채 전시된 살아있는 동물들이 너무 불쌍했다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동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아빠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
                                                                    
- 나무를 그리게 된 계기는?
"제주도의 비자림로 숲 때문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도로 건설 때문에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 그림도 그렸다. 2019년 벌목 소식을 듣고 외면하고 지내다가 지인, 시민들의 활동 소식을 계속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자 하고, 2019년 5월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사회 활동 보다는 내가 사는 곳, 그리고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 <나무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게 됐는지?
"2018년 8월 비자림로 숲에 있던 1000그루의 벌목 이후 2019년 3~5월 방문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2019년 5월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모여서 행동했고, 벌목된 숲에 아기 나무들을 이식하는 행사를 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영감을 받아 그렸는데 벌목 현장에서 아기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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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에 숲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새 사진을 멀리서라도 찍으면 숲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숲의 곳곳을 다녔던 사람. 깜빡하고 잠든 사이에 새들이 다녀갔다_작가의 글에서 ⓒ 이난영


- <당신이 잠든 사이에> 그림 설명 좀
"비자림로 반대 운동하는 활동가 중에서 벌목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서식중인 희귀 동물들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해서 다녔는데 그날은 하나도 못 찍고, 너무 피곤해서 풀숲에서 졸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네가 잠든 사이 많은 새들이 다녀갔다'고 말해줬다."

- 수산시장 상인분들도 전시에 다녀갔다고?
"2020년 초부터 관련해서 그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구 건물이었을 때 수협 사람들, 용역, 경찰 수백 명이 상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나중에 집행이 끝나고 큰 펜스 옆에 나이든 상인들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작아 보이고 마음이 안 좋았다. 평생 일했던 일터를 빼앗긴 기분... 상상이 안 갔다.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했는데 많이는 아니고 그림은 조금 그렸다."

- 표지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됐는지?
"제일 마지막에 그린 그림이다. 마지막 탈고를 하며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는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많다고 느꼈고, 하나 정도는 보기에 편안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이었으면 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쉬고 싶은 아줌마를 떠올리며 그렸다."


- 식물 추천을 해주자면?
"요즘에는 인테리어에도 식물을 이용을 많이 하는데, 식물이 좋아할 만한 환경을 생각해서 키웠으면 좋겠다. 전자파 막는다고 TV 옆에 두거나 공기정화용이 아닌 바람 잘 통하고, 빛이 들어오는 곳에. 키우는 식물에 대해 공부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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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 지하철, 사람들이 숨겨놓은 각자의 나무_작가의 글 중에서 ⓒ 이난영

 
- <우리의 기도>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제 마음 속에는 나무가 있다. 힘들 때마다 나타나는데 30대가 지나고 나니 너무 막막하고, 답답할 때 제 마음속에 있는 나무가 떠오른다. 그런데 전체 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너무 크다. 항상 갈색의 나무 껍질밖에 안 보인다. 나무에 위로를 받다보니 사람들과 연관을 짓게 되었다. 서울에서 버려지는 나무 씨앗들이 너무 아깝다. 채취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우연히 보면 줍는데 볼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보니 모르고 세탁기에 돌리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작거린 적이 많다. 나중에 마당 있는 집으로 가면 심어야지 하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호주머니 나무 씨앗 그림도 탄생했다."

- 그리는 것에 대한 원동력과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은?
"슬픔, 감정에서 시작한다. 별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그림들에 애착이 간다. 책에 담지 않았거나 담겨 있어도 질 낮아 보이는 '호박꽃 여인' 같은 그림들이다."

- <머리 빗겨주는 여자> 퍼포먼스도 했었다고?
"남편의 여동생이 내 머리를 빗겨준 적이 있었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큰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여동생에게 말은 안했지만 '그때'의 감정을 자주 떠올린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빗겨주는 소리도 좋고. 이후 빗을 대량으로 주문했다. (웃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빗겨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지나가는 분들의 머리를 빗어주는 퍼포먼스를 했었다."

- 왜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음이 자꾸 가는 건지?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힘들어도 베푸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것 같다."

나무를 닮은 사람, 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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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어두움 속에서 쉼을 얻는 사람들 비바람을 피해 나무의 어두움 속에서 새들이 쉬어가고, 나무의 어두움 속에서 벌레들이 살아가고, 사람들도 그 어두움 속에서 쉼을 얻는구나. 그러면 우리도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생각했습니다_작가의 글 중에서 ⓒ 이난영

   
전시에서는 그 외에도 이난영 작가만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태원 참사, 세월호, 강정마을 등 사회 이슈에 관한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이웃들이 내는 소음이 이 책에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로하는 최고의 자장가이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노상방뇨 하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가 다시 보니 채소밭에 물을 주고 있었던 거였다는, 피식하고 웃게되는 작가의 엉뚱함도 볼 수 있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녹색(환경)운동 하는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 탈핵과 같은 큰 운동도 필요하지만 우리 동네의 나무 한 그루, 가장 가까운 곳의 내 이웃,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도 살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질문에서 만큼은 고민 없이 바로 답을 했다. 책을 준비하면서 이미 고민을 끝낸 문제였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참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같은 질문을 나에게 해보았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고맙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그녀를, 나무를 닮은 사람이 될 것만 같다.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은이),
소동, 2023


#이난영 #나무의어두움에대하여 #창성동실험실 #비자림숲 #나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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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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