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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위해 이사하고 이웃에 읍소, 힘듭니다

비산농약 때문에 참 어려운 유기농... 늘어나는 소비자, 정책적 뒷받침이 아쉽다

등록 2023.03.30 04:57수정 2023.03.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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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지으시는 장인어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농약 인증 심사하면서 농약 잔류 검사를 했는데 농약성분이 검출돼 인증이 취소되게 생겼다"고 하셨다. 15년 넘게 무농약 인증을 받아오셨던 터라, 충격이 크셨던 것 같다. 장인어른은 전혀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데, 주변 배추밭에서 뿌린 농약이 멀리서 날아와 잔류됐던 모양이다.

이웃이 뿌린 미량의 비산농약으로도 인증 취소

현재 한국의 친환경 인증 제도는 최종적으로 농약잔류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인증 심사 할 때 한 번 잔류검사를 받고, 농산물품질관리원, 소비자 단체 등에서 수시로 와서 한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우리 농장 같은 경우 지난해에 두 번 잔류농약 검사를 받았다. 지난해 10월에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올해 2월에 또 잔류농약 검사를 하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아직 파종도 하기 전이었다. 그런데, 이 잔류 농약 검사가 굉장히 철저하다. 몇 년 전에 사용한 농약까지 다 검출이 된다고 한다. 464종의 농약 성분을 검사한다.

장인어른은 본인이 농약을 뿌리지 않았다고 인증기관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다른 기관에 의뢰해 농약 잔류검사를 다시 해서 검출이 안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웃이 어떤 농약을 언제 뿌렸는지를 정확하게 찾아서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재심사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결국 인증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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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친환경 인증은 무농약과 유기농 인증이 있다. ⓒ 농립축산식품부

   
현재 한국의 친환경 인증은 화학농약, 제초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화학비료는 사용하는 '무농약'과 3년 이상 세 가지 다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키운 '유기농' 두 가지다. 화학농약과 비료, 제초제 등 화학적인 것을 다 사용할 수 있는 GAP(우수농산물) 인증은 친환경 인증이 아니다.

사실 무농약 인증은 화학비료를 권장시비량의 1/3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친환경 농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화학비료를 조금만 사용해도 농산물 크기나 상품성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환경 농산물 시장에서는 보통 무농약과 유기농 농산물이 큰 가격 차이 없이 혼용돼 판매되기 때문에, 굳이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산물이라면 확실하게 친환경 농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유기농 인증은 단지 화학적인 성분을 허용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살아있는 건강한 땅과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친환경 인증 기준이 강화되고 농약 잔류검사가 수시로 이뤄진 것은 2014년 '친환경 인증 부정 사태' 이후다. 당시 특정 지자체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친환경 인증 과정에 개입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이를 공중파 방송국에서 여러 각도로 보도하면서 친환경 인증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당시 인증 서류를 대신 작성하고, 시료 채취를 바꿔치기 하는 등 소수 농가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모든 친환경 인증 농가가 폄하되고 신뢰가 떨어진 것은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친환경 인증은 엄청나게 까다로워지고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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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사를 지으려면 인가나 다른 밭에서 뚝 떨어져 있는 땅을 구해야 한다. ⓒ 조계환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증 심사가 철저해지고, 수치로 파악할 수 있는 농약잔류검사가 강화됐다. 원래 친환경 인증은 영농기록이라든가, 농사짓는 과정에 대한 평가도 굉장히 중요한데, 이보다는 수시로 측정하는 농약 잔류검사 결과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 됐다.

요즘에는 농약 잔류된 인증 농가를 찾아 인증 취소시키는 것으로 실적을 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친환경 인증 농가가 몰래 화학농약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적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비자 입장이라면 한국의 친환경 인증 농산물은 정말 믿을만하다는 생각도 뒤따른다. 이웃 밭에서 날아온 미량의 화학농약 성분도 허용되지 않는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3968농가가 인증취소가 됐는데, 이 중 대부분이 이웃이 뿌린 비산농약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친환경 농가들이 억울함을 호소해 현재 법 개정이 추진 중이라는데, 아직 뚜렷한 개선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유기농사 지으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

유기농은 화학농법에 비해 잡초를 제거해야 하고, 상품성 있는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몇 배 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기농사법을 익히는 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정부에서 인증한 유기농 자재만을 활용하면 유기농이 가능하고, 수천 년 전부터 이어온 유기농의 전통이 남아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배울 수 있다. 유기농 선배들을 찾아가 일하면서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주변에서 농약이 날아오지 않을 만한 땅을 찾는 일이다. 좁은 땅덩이를 가진 나라에서 주변에서 농약이 날아오지 않게 하는 일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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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관련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유기농사를 배우고 농사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 조계환

 
유기농사 20년차를 맞은 우리 농장도 사실 이웃의 비산농약 문제 때문에 한 번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전북 장수군으로 2005년에 귀농해서 13년 동안 유기농사 짓고 잘 지냈다. 제철꾸러미라는 새로운 판매방식도 만들어서 유기농 직거래도 이어갔다.

한창 유기농가로 자리 잡고 농사짓고 있었는데, 우리 때문에 그동안 농약을 안 치고 농사지어주셨던 이웃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다음해부터는 농약을 치겠다고 선포했다. 그것도 헬리콥터 방제로!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는 헬리콥터나 드론 방제는 정말 답이 없다. 농약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비산농약으로 취소되는 농가들은 대부분 이 첨단 방제법 때문인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유기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판단돼 집과 땅을 팔고 이사했다. 울주군에 인연이 있어서 유기농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농약이 날아오지 않을만한 좀 떨어진 땅을 구했다.

농사를 안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땅 바로 위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절의 주 작목이 복숭아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뿔사! 복숭아면 화학농약을 1년 내내 칠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복숭아에 농약을 친다면 밭 한쪽을 완전히 포기하고 농사지어야겠구나 생각하고 스님을 만나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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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 옆의 작은 절 스님께서 유기농으로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다 ⓒ 조계환

  
'우리가 유기농사를 지을 건데 혹시 화학농약을 안 뿌리실 수 있을까요?'라고 정중히 여쭈니 스님은 "그렇지 않아도 농약 뿌리기 싫어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었다"며 "유기농으로 어떻게 농사짓는지 알려 달라"고 하셨다. 운이 좋았다. 그래서 스님에게 유기농사법을 알려드리고 유기농자재도 챙겨 드렸더니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요즘도 때가 되면 올라가서 두둑도 만들어주고, 농사법도 공유하고 있다.

유기농사를 지으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 멀리 떨어진 밭이라도 갑자기 드론 방제라도 시작하면 더 이상 유기농이 어렵다. 주변에 집 한 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 집 마당에서 농약을 치는 경우도 있다. 계속 좋은 말로 이웃에게 부탁을 드리고, 여차하면 그 집 풀도 내가 가서 쳐야 한다.
  
유기농 소비자도 늘고 유기농 면적도 늘어나는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세계 유기농 면적은 약 7640만 ha로, 10년 동안 거의 두 배인 4000만 ha가 증가했다, 한국의 유기농 경작면적율도 2005년 0.32%에서 2020년 2.38%로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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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주요국의 유기농경작면적률(단위: %). 출처: FAO, 「Faostat」 자료 : FAO,「https://www.fao.org/faostat/en」 2022. 7 ⓒ 조계환

 
OECD 국가 중 2020년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은 유기농 면적이 적다. 미국은 0.57%, 일본은 0.27%이다. 미국은 유전자 조작식품이라든지 대규모 단일 작물 농업이 발전한 나라여서 유기농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친환경 농법이라고 할 수 없는 수경 재배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기농 인증을 해주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기후가 유기농 농사에 잘 맞지 않는 데다가 채소의 크기와 상품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유기농산물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16.12%, 호주 10.03%, 프랑스 8.81%, 독일 9.60%, 영국 2.72% 등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꾸준히 유기농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파스타나 피자 등 밀가루를 많이 소비하는데, 밀농사 같은 경우 유기농으로도 대규모 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면적이 늘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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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조계환

 
유기농 면적이 늘어나는 것은 기후위기에 따른 환경오염으로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석탄에너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화학비료, 화학농약을 사용하면 논과 밭에 보일러를 때는 것처럼 온실가스가 발생하며 미세먼지가 만들어진다. 유기농사를 지으면 온실가스를 땅에 잡아주기 때문에 환경도 보호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유기농 면적과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는 늘고 있는데, 비산농약 문제는 지속 가능한 유기농 농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기농가를 보호하는 제도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유기농 단지를 조성한다든지, 유기농가에 비산농약 피해에 대한 보상과 대책을 세워준다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유기농 농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언제까지 '좋은 이웃'을 만나는 운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기농 #친환경 #무농약 #비산농약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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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골 푸른밥상' 농부. 유기농으로 제철꾸러미 농사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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