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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종아리 마사지'를 금지하는 이유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등록 2023.04.04 15:26수정 2023.04.0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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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당첨 문자를 받았다. 수영장 접수 등록 추첨 결과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 시에서 직영하는 수영장. 경쟁률이 만만찮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매일 대기줄에서 큐알 코드 찍으며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어졌다. 3개월 87750원 등록. 전용카드도 발급받고 개인 사물함 신청도 해둔 상태다. 3개월간 자유이용이다. 이게 뭐라고. 정식 회원이 되니 마치 정규직이 된 신입사원처럼 파이팅 넘쳤다.


수영장에 붙은 각종 규정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중 걷기 2주면 등산을 할 수 있다 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적당한 시간대는 알았다. 3시쯤에는 한가했다. 첨엔 멋모르고 4, 5시에도 갔었다. 알고 봤더니 그 시간은 학생들 강습시간이었다. 어쩐지 걷는 사람이 나 혼자였다. 그 시간대는 걸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 번은 벨소리가 울렸는데 무슨 뜻인지 의아했다. 수영장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라, 신난다 했는데 갑자기 코치가 다가와 나가라고 소리쳤다. 벨은 물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였다. 3시대가 한가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종료 시간이었던 것. 규정을 몸으로 익히며 알아가는 건 부끄러움을 동반했다. 안내문을 한번이라도 읽어 봤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임을. 어쨌든 시간대를 조율해 가장 적절한 시간대를 찾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그 시간대에 사람이 몰렸다. 사람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인가 보다. 피크타임은 언제나 피크타임이었다.

"오리발은 안된다잖아." "이건 닭발이여." "아이, 오리발이든 닭발이든." 두 노인이 수영장 한가운데 서서 티격태격한다. 돌아보니 한노인이 오리발 모양의 닭발을 들고 서있다. 설전을 벌이던 두 노인이 결국 코치를 부른다. 수영장 한쪽 구석에 안전요원으로 앉아있는 코치. 오늘은 무슨 일인지 코치가 수영장 가까이 오는 일이 잦다. 분위기가 다르다. 다른 날과.

알고 봤더니 수영장 내부에 부착된 안내문 때문이었다. 안내문은 내가 들어올 때부터 붙어 있던 건데 왜 이제야 문제가 된 것일까. 그랬다. 누군가 그걸 오늘에서야 보고 문제가 터진 것이다. 걷기는 월, 수, 금 오후 1:30부터 오후 3:20까지. 오리발 사용은 지정 요일이 따로 있었다. 어쩌면 훨씬 오래전부터 붙어 있었을 그걸 이제야 발견하고 웅성웅성 말이 많아져 코치를 불러 항의하며 확인하는 일이 계속 생긴 것이다. 한마디씩만 해도 50마디가 된 것. 50분 걷기 보다 어수선하고 힘든 분위기였다.


요일은 상관없이 매일 걸어도 된다. 다만, 걷기 라인에서 물장구치기 금지. 종아리 마사지 금지를 했다. 걷기 라인에서는 걷기만 해야 한다. 노인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물장구치기와 종아리 마사지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위협을 가한다. 물장구를 치는 발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벽에 종아리를 번쩍 들고 마사지하는 행위는 균형을 잃어 넘어질 수도 있다. 위험한 행동들을 하고 계실 때마다 불안했는데 금지를 한다니 나로선 환영이었다.

금지가 돼서 그런 걸까. 원래 그랬던 것일까.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제자리걸음을 하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걷기 라인인데 걷지는 않고 캠프 파이어하듯 둥글게 모여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무리 지어 곳곳에 자리 잡다 보니 라인이 점점 짧아져 가운데 마저 점령당했다. 와중에 한노인은 목을 내밀고, 뒤로만 둥둥 떠간다.

한노인은 한가운데서 혼자 춤을 춘다.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데 곳곳이 혼돈이다. 질서 없는 유턴이 이어진다. 처음 목격했던 첫날의 질서 정연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내게 또렷이 말해주던 "갈 때 이쪽, 올 때 저쪽, 안 그럼 사고나." 그 노인의 정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발에 걸려서 사고가 날 뻔했다

좁아진 수중길. 물의 부력 때문에 걷기 방향을 바꿀 때마다 균형이 흔들리고 옆사람과 계속 부딪히며 몸이 닿는다. 외로운 노인들 물 만난 수다를 이해해 보려 하면서도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잡담 금지라고 돼 있지만 코로나 마스크 의무 해제가 된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나만 마스크를 쓰고 걷는다).

그러니 수다쯤은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란히 걸어가며 곳곳에 모여 길을 가로막는 행위는 조금 힘들다. 어느 순간 짜증이 확 나기도 했다. 부딪힐 뻔해서. 걷기에 진심인 사람들에겐 모두 최악의 행위다. 걷기 시간만큼은 수다를 양보했으면 한다. 탈의실에 설치된 '고객의 소리함'을 볼 때마다 고민한다. 쓸까 말까를.

공공시설의 규정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부주의한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곳곳서 일어나는 사고들은 대부분 안전 관리 부주의로 발생한다. 스스로 중요성을 인지하고 사고 예방에 의무를 다해야 한다. 설마가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사고는 무관심과 안일함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방심할 때 찾아온다.  감시가 느슨해지면 슬쩍슬쩍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곳곳서 물장구를 치기도, 벽에 종아리를 올려 마사지를 했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번진다.

사람들이 많을 땐 조심하다, 없으니까 맘 놓고 편하게 걷다 넘어질 뻔했다. 물장구치던 노인 발에 걸려서. 방심의 대가다. 순간 물속에 처박히려다 가까스로 몸을 세워 위기를 모면했지만, 수중에서 걸림은 둔탁하면서 강한 충격이다. 생각보다 위험하고 아찔하다. 벽 잡고 물장구치던 노인도 놀라서 돌아보고 나도 놀라 서로 쳐다봤다. 노인이 "아이고, 맞네 맞아... 위험하네... 위험해 큰일날 뻔했네"라며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서로 가슴을 끌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물장구의 위험성을 인지해서.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시설은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우리를 위해 쓰이는 만큼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감시 여부를 떠나 규정과 예절 매너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부족함 없이 강조해야 한다. 타인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며, 공공시설이기에 내 거처럼 마구 사용해서도 안된다. 내가 버린 오수가 마시는 물로 순환되는 것처럼 지킬 건 지키고, 서로 양보하면서 오랫동안 공존하게 해야 하는 곳이다.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절약하는 것이 좋다. 먼훗일 적자라는 이유로
지금처럼 맘놓고 못하는 날이 올수도 있다.

수십년전 고향 시골 공공 목욕탕이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놀이터처럼 그곳을 이용했다. 수다방이 되어 짜장면도 시켜먹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얼마 못 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축소 운영했다. 7일에서 3일로. 스스로 불편함을 초래한 주민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처음의 환호성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초라함으로 남았다.

규정은 복지 미래를 위한 약속이나 다름없다. 결국 내가 지킨 약속이 혜택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변하지 않더라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탈의실, 하루종일 저 혼자 돌아가는 선풍기를 매번 조용히 끄는 것도 그런 이유다. 퇴보가 아닌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작은 실천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다음을 위해 세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시설로 누리는 복지혜택, 나의 파이팅이 오래가길 희망한다.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규정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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