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기관사들이 모인 이유 "코로나에도 병가 못 쓰고 운전했다"

전국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 처벌하라! 아프면 쉴 권리 쟁취"

등록 2023.04.05 10:44수정 2023.04.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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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10시 영등포역 광장에서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주최로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를 처벌하라! 아프면 쉴 권리 쟁취" 기자회견이 열렸다. ⓒ 한종민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소속 수도권 1호선 열차를 운전하는 구로승무사업소 기관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구로승무사업소는 수도권 1호선 전철을 운영하는 4개 사업소(한국철도공사 구로승무사업소, 성북승무사업소, 병점승무사업소 및 서울교통공사 신답승무사업소) 중 하나다. 인원 기준 1호선 기관사의 약 40%가 근무하는 제일 큰 곳으로 현재 약 285명의 기관사가 소속돼 있다. 이 기관사들로 구성된 전국철도노동조합 구로승무지부는 4일 오전 10시 영등포역 광장에서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를 처벌하라! 아프면 쉴 권리 쟁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구로승무사업소 기관사들을 포함 전국철도노동조합 간부 및 기관사들로 구성된 운전지부 소속 조합원들,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40여 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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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자가 아플 때 쉬어야 철도가 안전하고 시민의 출퇴근길이 안전하다 정주회 구로승무지부장은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코레일이 아픈 기관사들의 병가를 통제하고 철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코레일 고객의 소리(VOC)로 항의민원 보내기’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 김동준

 
기자회견 첫 발언자로 나선 정주회 구로승무지부장은 "코레일 구로승무사업소는 신입사원 입사부터 '욕심 있는 선배들은 아파도 병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교육한다"며 "A형 독감에 걸려 전문의의 격리 권고를 전달해도 '감기는 병가 사유가 안된다'는 관리자의 지시에 결국 해열제를 복용하며 퇴근길 열차를 몰게 되는 곳"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정 지부장은 병가 통제 문제가 MZ세대 기관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그 원인이 구로승무사업소에서 진급 등 근무평정을 담당하는 부소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세 번이나 누락된 기관사에게 부소장은 '몇 월 며칠에 병가 한 번 썼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설명했다"는 주장이다. 부소장의 메시지가 곧 사업소 내 근무평정 가이드라인으로 인식돼 팀장 등 관리자들이 기관사들의 병가 사용을 서슴없이 제한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기관사들은 '언제 병가를 썼는지 한명 한명 기록해뒀다가 승진에서 누락시키는 환경에서 대체 무슨 재간으로 아프면 쉴 수가 있느냐?'면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 지부장은 "사업소는 기관사들을 관리자 마음대로 줄 세우고, 순위를 매기고, 깜깜이 승진을 시킨다"며 "촘촘한 현장통제 속에서 철도안전과 노동인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투쟁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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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를 외치는 구로승무지부 조합원들 코로나19에 걸린 채로 1호선 열차를 운전한 날로부터 2주 후 김동재 기관사는 동료로부터 구로승무사업소 부소장이 ”병가를 쓰면 승진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김동재 기관사는 국민 안전은 안중에 없고 어떻게 기관사를 통제할까 몰두하는 관리자를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 강우영

 
기자회견에는 2022년 9월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확인됐음에도 관리자 지시에 의해 동인천-용산 특급열차를 운전한 A기관사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사업소 관리자들의 보복이 염려돼 이름과 얼굴 노출을 피해달라고 요청한 기관사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풀어놨다. 추석 당일 근무 중 자가진단키트 두 줄을 확인한 기관사는 고열에 더 이상의 근무가 힘들다고 판단해 조퇴를 신청했지만 관리자는 선별진료소나 병원에 가서 PCR 검사 결과 확진을 받아오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열차를 운전한 A기관사는 "병가를 사용하면 승진에 불이익이 있다는 소문 때문에 팀장의 종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는 사전에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이날 기자회견 참석 및 연대발언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구로시민센터 김성국 대표, 구로지방자치시민연대 안병순 대표,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김재민 회장, 정의당 구로구위원회 이호성 위원장, 진보당 구로구위원회 최재희 위원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나래 상임활동가가 참석했고 차례로 발언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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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구로구위원회 최재희 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천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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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김재민 회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한종민

 
최근 취임한 고준영 코레일 사장직무대행의 인사말을 인용한 최재희 진보당 구로구위원장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고 전국의 현장에서 다시 기본을 세워가겠다는 약속은 말뿐"이라고 꼬집었다. "기관사의 건강권이 보장될 때 철도의 안전이 시작된다"며 병가 제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김재민 회장은 '코레일은 이틀에 한 번꼴로 산재가 발생하는 사업장'이라며 '코레일이 지금 할 일은 병가 통제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고 철도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연병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사가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로승무사업소 부소장은 정작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 간부들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한 상태다. 김재민 회장은 "주객이 바뀌었다"며 "연병가를 통제당한 노동자들이 가해자로 인정된다면 법을 악용한 희대의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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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동조합 강정남 서울지방본부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 최은철

 
마지막 결의발언에 나선 전국철도노동조합 강정남 서울지방본부장은 "철도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현장은 관리자가 인사권을 휘두르며 연병가를 통제하는 마당에 윤석열 정권이 69시간 근로제를 들고 나왔다"고 따졌다. "기관사들은 쉬지 못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고 있는데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말은 허울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구로승무사업소의 문제가 구로승무지부 조합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4월 13일 서울지방본부 소속 조합원들과 결의대회를 열 것"이라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치며 ▲현장통제, 노동탄압 책임자인 구로승무사업소 부소장을 경질할 것 ▲연병가 통제 근절 대책을 마련할 것 ▲공정한 승진심사를 실시할 것 ▲노동탄압 지침 철회 및 재발방지 등을 요구했다.

요구안이 담긴 기자회견문은 전국철도노동조합 청량리전동승무지부 김종배 지부장, 청량리고속기관차승무지부 최정식 지부장이 낭독했다. 기자회견 후 항의서한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 측에서 받지 않겠다고 거부해 취소됐다. 참가자들은 코레일 기관사들이 처한 현실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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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퍼포먼스 코레일 구로승무사업소 청년 기관사들은 코로나19, A형 독감 등 고열, 오한에도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1호선 운전을 종용 받고 있다. ⓒ 천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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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마지막 순서로 코레일 구로승무사업소 기관사들의 현실을 풍자한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 강우영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배정수씨는 전국철도노동조합 구로승무지부 교육선전부장입니다.
#코레일 #기관사 #1호선 #MZ세대 #불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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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산, 잠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괴로워하는 철도노동자, 1호선 광역전철 기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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