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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알게 된 몰입의 즐거움

운동 싫어하는 사람이 운동의 재미를 발견하다

등록 2023.04.11 09:40수정 2023.04.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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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그동안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던 몸이 이제는 통증이라는 비명을 질러댄다. 일하느라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않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생활을 계속했더니 내 몸은 이미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살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저 운동 싫어해요" 하면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도 더이상 운동을 미루면 큰일 날 것 같은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통증이란 참 신기하다. 내 몸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존재감 없던 부분에도 통증이 생기는 순간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특히 아픈 부분은 어깨. 하긴 오십견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나쁜 자세 덕분인지 팔이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무슨 운동을 하지?"

헬스는 재미없고, 뛰는 건 무릎이 아프고, 홈트는 시도했다가 몇 번을 망했고,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운동이 없을까 하던 찰나, 동료가 2주 후부터 시작하는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면서 같이 다니자고 권유했다.

생각해보니 수영을 하면 어깨를 많이 돌리게 되니까 굳어 있는 어깨에도 좋을 것 같았다. 혼자 하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같은 시간으로 함께 등록하게 되었다.

수영 등록과 함께 시작된 폭풍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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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수영장 실내수영장에서 수영 ⓒ Unsplash

 
내가 등록한 곳은 청소년 수련원의 수영장. 강습료도 일반 수영장보다 저렴해서 부담없이 등록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지만, 여러 사정들이 생길 수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는 걸로 소소하게 목표를 잡았다.


막상 수영을 등록하려니 어느 레벨로 등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건 아니었다. 드문드문 두세 곳의 수영장을 거치면서 평형까지 배우고 그만두었다.

'자유형과 배영 평형까지 끝냈는데 초급을 신청해도 될까? 나에게 맞는 자리는 도대체 어디일까?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나? 혹은 첫 날 가면 선생님이 다시 알려주시려나?'

이래저래 고민이 되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데 이렇게 생각할 것이 많고 게다가 자기 객관화부터 해야 하다니... 시작부터 이런 심오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초급반으로 등록했다.  

수영복을 꺼내보니 있는 수영복이 너무 낡아 보였고, 수영복 넣을 가방도 여의치가 않았다.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넣을 방수 주머니와 수영을 끝낸 후 사용할 샤워도구를 넣을 가방,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넣을 넉넉한 운동 가방까지 필요했다.

'초급 수영복 추천'. 녹색창에 검색어를 쳐보고 포스팅도 몇 개 보면서 수영용품을 사려고 하니 무슨 종류가 그리 많은지... 무엇으로 사야할지 너무나 고민 되었다. 반신 수영복을 사야하나 원피스를 사야하나, 탄탄이 수영복은 뭐고 엑스백, 유백에 종류도 많고 다양해서 보는 것 만으로도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어휴... 아직 수영장 문 앞에도 못갔는데 벌써 지친다 지쳐.'

겨우 제일 무난한 것들로 구매하고 나니 한 달 수영장 수강료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이렇게 두근거리며 준비한 이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드디어 레슨 첫 날이었다.

초급반 정원은 20명인데 25미터 두 레인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한 레인은 이제 초급을 벗어나 보이는 초급반 분들(다닌 지 오래된 능숙자들인 것처럼 보였다)이, 다른 레인은 생초보부터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수강생들의 레인이었다.

같은 레인을 사용하는 초급반인데 나이, 성별 진도는 제각각이었다. 수업 첫 날이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람부터 평형과 접영을 배우고 있는 사람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레인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같은 돈 내고 듣는데

같은 레인에 있는 11명의 수강생들이 "자유형 3바퀴 도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차례대로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앞 사람과 부딪힌다. 그도 그럴 것이 왕복 50미터 레인에서 발차기를 배우는 4미터를 빼고,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대략 4미터 정도이다.

여기서 내 키와 팔 길이를 빼고 나면 대략 190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이 남는다. 농구 선수 한 사람의 키 만한 공간이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여유 있다고 느껴지겠지만, 사람마다 수영의 속도가 다르다는 변수가 존재한다. 예상과는 다르게 충분히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고 생각해도 앞 뒤로 부딪히기 일수였다.

게다가 레슨이 진행되면서 사람마다 다른 영법으로 한 레인을 돌다보니 속도 차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이론상으로는 여유롭게 수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앞으로 뒤로 하도 추돌을 하게 되다보니 결국 수영 반 걷기 반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자꾸만 옆 레인을 바라보게 된다. 같은 초급반인데 옆 레인은 8명이다. 게다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지 저쪽 레인은 수영 편차가 많지 않아서인지 수영하기가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역시 고수의 레벨은 다른건가? 같은 돈 내고 수업 듣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빨리 레벨 업해서 옆 레인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넓은 평수가 좋은 것은 비단 아파트 뿐만이 아니었다니. 수영장에서조차 넓은 공간을 원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레슨 시간은 또 어떤가. 수업시간 50분을 스무 명의 사람들과 쪼개 보면 선생님이 나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5분이다. '와~ 이래 가지고 언제 수영을 마스터 해서 옆 레인으로 옮기지? 아무리 생각해도 견적이 안 나오는 게 수영장에서도 똑같구나.'

또다른 문제는 체력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는데 수업을 시작한 지 고작 10분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수영장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평상시와는 다른 건가? 잠시 동안 '아, 괜히 수영을 시작했나보다' 싶었다.

이렇게 바글바글한 사람들 속에서 안 따라오는 체력으로 앞 뒷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쓰며 버둥버둥 대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은 오고야 만 몰입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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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완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한 날의 피트니스 ⓒ 이가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 것도 잠시 뿐이었다. 좁은 공간과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말씀해주신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발차기와 손동작과 호흡에 신경 써 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만있자... 발을 어떻게 차라고 했더라?' 발 모양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킥을 반복한다. 킥에 집중하다 보면 손 모양이 흐트러진다. 흐트려지려는 몸에 집중을 해서 동작을 수행하다보니 어느 순간 재미가 느껴졌다. 

"아! 집중하면 되는 거였구나."

공간이 좁아서 앞 뒤로 부딪히기 일쑤이고, 체력이 없어서 힘들고, 선생님의 집중 지도를 받지 못해도 따르려고 애쓰고 조금씩 자세를 수정하면서 집중하는 몰입만으로도 수영은 상당히 즐거운 것이었다.

이렇게 몇 바퀴를 돌고나니 어느덧 수업시간이 끝나 있었다. 회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물 밖으로 나올때 지구의 중력이 지친 몸이 그대로 맞닥뜨린다. 몸이 무거워서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는데도 어쨌든 해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수영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나니 무겁던 몸이 개운해졌다. 그동안 뭉쳤던 어깨가 수영을 하면서 돌려대서 그런지 훨씬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구나. 그것도 열심히.' 환경적으로 완벽하고 편안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몰입을 하면 즐겁구나를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느꼈다.

비록 야근이다 약속이다 해서 수영장을 가지 못하는 날도 많지만, 이렇게 조금씩 하다보면 언젠가는 좀 더 쾌적해 보이는 옆 레인으로 승진(?)할 날도 오겠거니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막상 옮겨보면 그닥 쾌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목표를 가지고 조금씩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 내야겠다. 이제 나는 찐 초보 수영러의 길로 접어들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오운완 #초보수영러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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