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강릉 산불이 안타깝다면 여기로 와 주세요

[국립대관령치유의 숲 체험기] 숲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마법 같은 치유의 시간

등록 2023.04.17 04:53수정 2023.04.17 04:53
3
원고료로 응원
a

국립대관령치유의 숲 인근 대관령 옛길 풍경 ⓒ 이준수

 
나는 고집이 센 편이다. 패키지 여행보다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고, 인스타 맛집에 줄 서기보다는 지역민에게 알음알음 소개받아 식당을 찾는다. 산행에 있어서도 내 나름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다. 강릉에 살고 있으니 주변에 좋은 산이 많다. 오대산과 설악산처럼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군데군데 훌륭한 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산행은 단출하다. 조용히 혼자서 혹은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 한두 명 하고만 산에 오른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대관령 옛길과 그 바로 옆의 '국립 대관령 치유의 숲'이다. 집에서 차로 이십 분도 걸리지 않고, 코스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틈틈이 와서 원하는 만큼 땀을 흘렸다. 편안하고 익숙한 옆동네 산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올해 처음 '국립 대관령 치유의 숲' 산림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 치유의 숲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번번이 지나쳐왔던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체 연수자 자격으로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체험 종료 후 바로 다른 산림 프로그램을 알아볼 만큼 흡족했다.

처음 해 본 산림 치유 프로그램

'숲에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강원도민인 나에게 산과 호수, 바다는 거주지의 일부이며 항상 거기에 있는 자연이었다. 눈을 뜨면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이 태백산맥이다. 도보로든, 자동차로든 십분 이내에 산이 있었다. 즉, 산은 '타인의 도움' 없이도 한없이 친근하게, 내 것인 양 즐길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산림치유지도사라는 분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도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산림치유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고, 국가 공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장기간 교육과 현장 경력 그리고 시험 합격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어쨌거나 우리를 숲의 세계로 인도해 준 선생님을 마주하고 있으니, 근사한 산에 머물며 생계도 이어나가는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a

숲 체험 첫 코스인 견갑골 스트레칭 중 눈에 담기는 풍경 ⓒ 이준수

 
숲의 초입에 둥글게 모여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산림 치유는 시작되었다. 간단하게 몸을 풀자, 몸 여기저기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뿍뿍 뻑뻑 관절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인의 내적 비명처럼 들렸다. 숲 가이드는 여기 오시는 분들이 다들 그렇다면서 우리에게 견갑골 스트레칭을 추천하였다. 컴퓨터를 자주 자용하여, 목과 어깨가 자주 뭉치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동작이었다. 


일명 'W 스트레칭' 스트레칭으로 불리는 견갑골 스트레칭은 양팔을 천천히 위아래로 들었다 올리며 뻣뻣한 목 주위를 풀어주는 운동이다. 승모근 일대가 당기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팔만 움직였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지시에 눈을 위로 향했다. 그러다 일행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나무 우듬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작게 조각난 하늘이 우리가 지금 숲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며 솔향이 났다. 향수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내음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떤 소나무 가지는 혹이 난 것처럼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다. 선생님께 물으니, 아픈 사람에게 종기가 나는 것처럼 나무도 어딘가 성치 않은 곳에서 혹이 난다고 했다. 혹이 달린 가지는 나중에 저절로 떨어지게 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암 환자가 종양을 제거하듯이, 나무도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앞사람과 간격을 띄어 주세요. 서로 말을 나누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보세요."

띠잉, 고고하게 울리는 씽잉볼 소리를 따라 숲을 걸었다.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먼 곳과 가까운 곳의 나무와 꽃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늦게 핀 산벚나무 줄기를 타고 올랐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가지가 앙상하더니, 진달래가 지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푸른 잎을 틔웠다. 가을 산이 좋다고들 하지만, 파스텔톤 그러데이션으로 빛나는 봄산은 행락객이 적어 호젓한 맛이 있었다. 

걷다 보니 작은 물줄기가 나왔다. 고지대에서 흘러나와 대관령 옛길 계곡으로 향하는 지류였다.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물길을 따라 자리 잡은 바위와 부딪치며 동글동글 편안한 물소리를 내었다. 띠잉, 또다시 씽잉볼이 울렸다. 

"지금부터 3분 간 눈을 감아 주세요. 귀에 손을 대고 물소리를 들어 보세요."

말 잘 듣는 유치원생처럼 나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볼에 닿는 바람이 한결 선명하게 느껴졌다. 손바닥을 소라고둥 모양으로 만들어 귓바퀴에 대자 물소리의 울림이 커졌다. 불면에 시달리는 밤에 듣고 싶은 그리운 소리였다.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자연의 율동 같은 것이 그 소리에 담겨있었다. 무의식 안에 영원토록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려한 숲과 산을 먼저 경험한다면
 
a

대관령 숲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 ⓒ 이준수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숲길이 었지만, 나는 때때로 멈추어 서서 햇볕을 쬐고 바람의 질감을 느꼈다. 녹색으로 둘러쳐진 숲의 보호막 속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치유되는 감각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약간씩 잃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시간이든, 추억이든, 에너지이든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반면 숲에서는 부족한 내가 채워진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산림 치유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숲에서 한 것은 대체로 간단하고 직관적이었다. 

와인 코르크 마개를 제작하는데 쓰인다는 말랑말랑한 굴참나무를 만진다. 토종 소나무인 적송과 리기다소나무를 솔잎 가닥 개수로 구분한다. 주변에 다른 나무를 허용하지 않는 소나무이지만, 쪽동백나무만큼은 옆에서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는 등 사소하고 소박한 활동이 주였다. 

그렇지만 돈벌이나 자기 계발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무해하고 느슨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이 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욱신거리던 관자놀이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안압도 줄었다.

소설가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동백꽃이 남쪽에서 피는 붉은 동백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동박나무라고도 부르는 생강나무 꽃이었음을 듣는 것이 왜 그리도 나는 좋았을까. 기분 탓이겠지만 숲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a

프랑킨센스 오일과 유칼립투스 오일을 배합하여 제조한 나만의 아로마 오일 ⓒ 이준수

 
실내 연수장에서는 '내 몸이 원하는 아로마 오일'을 만들고 차를 마셨다. 치유의 숲 센터장이 직접 우려낸 차는 '솔방울 차'와 '생강나무 차' 두 가지였다. 솔방울 차에서는 금강송 군락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이 났다. 소나무는 보기에도 좋고 솔방울 차 맛도 좋지만, 산불이 나면 가지 끝까지 홀랑 타버리는 위험한 나무이기도 하다. 불 붙은 송진은 기름 등잔이나 마찬가지다.

강릉에 산불이 발생한 직후라 '소나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이제는 산림청에서도 산불 확산 저지를 위해 일정 기준에 따라 활엽수 지대를 조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활엽수 숲에서는 불이 위로 뻗거나 크게 번지지 않고, 땅으로 깔린다고 했다. 대관령 숲을 거닐고 온 직후라 그런지, 무시무시한 화마로부터 소중한 우리의 산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지금 강릉시에서는 '강릉 여행이 산불 피해를 돕는 자원봉사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밀고 있다. 나도 강릉 시민의 일원이자, 산을 아끼는 자연애호가로서 여행 권유를 하자면 '국립 대관령 치유의 숲'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동정심이나 의무감으로는 어떤 대상에 진심으로 애정을 품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산불의 공포와 피해의 끔찍함을 강조하는 것도 어떤 방면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태백산맥의 수려한 숲과 산을 먼저 경험하게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강원의 산도 그렇다.
#대관령 #숲 #산림치유 #국립대관령치유의숲 #산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이 어휘력이 떨어져요"... 예상치 못한 교사의 말
  2. 2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3. 3 7세 아들이 김밥 앞에서 코 막은 사연
  4. 4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5. 5 손준성 2심 재판장 "문제는 피고인 스스로 핸드폰 안 여는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