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는 죄가 없다

인간의 행위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등록 2023.04.21 10:39수정 2023.04.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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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원인은? 그동안의 인간의 행위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 unsplash

 
오늘 20:30분경 은평구 진관동 102 인근 야생멧돼지 출몰해 포획중에 있으니, 인근 주민들께서는 외출 자제하고 실외인 경우 건물내부로 피신 바랍니다.
  
"뭐, 멧돼지?"

지난 17일 안전 안내 문자를 보고 아연실색하여 남편과 마주보았다. 서울 도심에 야생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구체적인 행동요령 없이 그저 실내로 피신하라고만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생경함과 어이없음에 잠시 웃긴 했지만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은평구뿐 아니라 세종시, 남양주시, 부산 동구 등 도심 근처에서 야생 멧돼지가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멧돼지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멧돼지가 인간의 영역에 자주 출몰하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산림 훼손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천적이 사라지고, 개체수가 늘면서 먹이가 부족해진 것을 원인으로 든다. 특히 최근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새끼 멧돼지들의 생존율이 높아져서 개체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에 의해 인간의 행위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현실을 목도하니 씁쓸해진다.

은평구에 나타났던 멧돼지 소식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경찰과 소방당국에 의해 1시간 만에 사살되었다고 한다.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공간을 잠시 침범한 대가로 목숨을 잃는 야생동물들을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25만 년 전 처음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우리는 거의 모든 자원을 독식하고 남용해 왔다. 생태계의 최상위에서 군림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소, 돼지, 닭, 양 등을 가축화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지구는 점점 더 오염되고 뜨거워졌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탄소만으로도 심각한 지경인데 인간의 먹거리로 키워지는 가축들의 배설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의 양도 엄청나다고 한다. 육류·유제품 관련 글로벌 기업 15곳이 배출하는 연간 탄소 배출량이 유럽 전체 배출량의 80퍼센트 수준에 달한다는 분석(미국 농업무역정책연구소 보고서)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의 논문이 재작년 발표되었다. 열대 지역에서 살던 40종의 박쥐가 온난화로 인해 서식하기 좋아진 중국 남부로 옮겨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결국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문제는 대부분 자업자득인 셈이다. 야생동물들이 빈번하게 인간 근처에 나타나는 것도 우리가 자초한 결과이다. 농작물 피해를 입히고 전염병을 옮기는 동물들을 무조건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멧돼지 소동이 발생한 데에는 인간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개체수 조절을 위한 포획 및 사살은 불가피하더라도 '마땅히 죽여도 되는' 동물로 바라보는 시선은 거두어야 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기에 동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대체서식지나 생태적 완충지대를 조성해서 서로 간의 접촉을 줄이거나 아니면 울산시처럼 골칫거리이던 까마귀 떼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참새, 까치, 직박구리, 까마귀, 꿩, 멧비둘기, 고라니, 멧돼지, 다람쥐, 청설모, 두더지. 모두 인간이 지정한 유해야생동물이다. 인간에게 득이 되지 않으니 해로운 것으로 분류했으리라. 그런데 인간의 개입이 없던 원래의 자연계에서도 이 동물들이 과연 '유해한' 존재였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이 만들어낸 단어가 아닐까.

코로나 시국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오만이 불러온 끔찍한 재앙을 경험했다. 장례식장이 부족해 시신을 냉동트럭 안에 보관해야 했던 뉴욕의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어 생물 다양성이 훼손되고 그로 인해 각종 바이러스가 더 쉽게 인간에게 옮겨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천연두 계열인 원숭이 두창을 비롯하여 아데노바이러스 등 다양한 위험요소가 인간을 노리고 있는 지금, 오만함을 내려놓고 자연과 공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동물은 동물의 영역에서, 인간은 인간의 영역에서 평화롭게 함께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멧돼지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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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와 책 리뷰를 적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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