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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접란은 어떤 인연이 있어 내게 왔을까

'비리사학' 행정실서 주워온 호접란... 다시 꽃 피우는 시기가 희한하네

등록 2023.04.24 10:21수정 2023.04.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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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란1 올해 첫 꽃을 피운 호접란 ⓒ 박상준


올해 봄에도 우리 집 거실의 호접란이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 꽃을 피웠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식물과도 인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고등학교 건물의 복도 구석진 곳에 흐물흐물한 잎이 힘없이 늘어져 다 시들어 버린 채 버려진 식물이었다. 그때는 이 식물의 이름도 모른 채 치워 버리라고까지 했는데 지금 우리 집에서 2년째 꽃을 피우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호접란

이 호접란을 발견한 곳은 사립학교 법인인 '○○학원'에 속한 ○○고등학교의 행정실 옆 구석진 곳이었다. ○○학원은 몇 년 전 급식 비리로 이사회가 승인 취소된 후 교육청에 의해 구성된 관선이사회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이제는 정상화된 사학법인이다. 개교 이래 비리가 끊이지 않아 이전에도 이사장이 승인 취소된 경우가 두 차례나 있었다.

감사에 의해 급식 비리가 드러나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 전체가 승인 취소되기에 이르게 되어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 나도 관선이사회에 참여하여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되었다.

이때 행정실 옆 복도의 한구석에 버려져 있던 이 화분이 있었는데 1년 가까이 출퇴근하면서도 끝날 무렵까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돌보지 않으니 다들 폐기된 화분으로 취급했다. 나도 몇 달을 그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학교의 정상화 절차를 밟아가던 어느 날 그 화분에 축 늘어지긴 했지만 잎이 아직 녹색을 띠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잎이 늘어진 채 죽은 듯이 있는 모습이 작은 식물이긴 하지만 애처롭게 여겨졌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게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곳에 화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무심히 지나다니다가 ○○학원이 정상화되는 이때 눈길이 가게 된 것을 인연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즈음 아내가 식물 기르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라 혹시나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집으로 가져왔던 것도 다 인연이 닿아서 그런 것 같다. 아내에게 맡길 때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해마다 선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살아나 화려하게 피운 꽃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그때도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화분 옆을 지나다니던 내게 호접란이 "죽었던 ○○학원의 명예도 다시 다시 살아나 정상화되는데 이 호접란도 좀 살려보는 건 어때?" 하며 말을 걸어 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도 한다.

○○학원은 교육청과 관선이사회,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의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 끝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의해 정이사들이 새롭게 선임되면서 정상화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동안 관선이사회가 쾌적한 교육환경을 위해 전면적인 보수와 보강공사를 통해 학교 시설을 통해 학교 시설을 개선하였으나 급식 비리의 불명예를 안겨 주었던 급식실 공사는 여러 사정으로 완공하지 못한 채 관선이사회를 마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피어난 꽃이 우연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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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란3 12송이 꽃이 다 핀 호접란 ⓒ 박상준


우리 집에 온 호접란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꽃을 피웠다. 2월에 꽃망울이 맺기 시작한 후 22일경 첫 꽃이 피더니 4월까지 계속하여 12송이가 다 피었다. 이 동안에 ○○학원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마무리 짓지 못했던 급식실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이었다. 3월 20일 여러 언론의 기사에서 전날 교육감과 지역인사들이 새 급식실에서 학생들에게 배식하는 사진과 함께 급식실 완공 소식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 죽어가던 호접란이 다시 살아나 이 시기에 꽃을 피운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 느껴지면서 기쁜 소식을 미리 알려주는 전령사였나 싶기도 했다. 급식비리로 몸살을 앓았던 학교가 정상화되어 제대로 된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식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동안 고생했던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원에 속한 학교들이 비리 학교란 오명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사립학교로서 보다 나은 모습으로 살아난 것을 이 호접란의 꽃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곤 한다. 다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던 그 잎이 빳빳하게 되살아나고 아름다운 꽃이 핀 모습을 보면 그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호접란의 강인한 생명력과 나비를 닮은 아름다운 꽃의 모습이 새삼 경이롭다.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마치 비리 사학으로 판정 난 기존의 법인이사회가 승인 취소된 후 교육청과 관선이사회, 학교 구성원,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학원'이라는 꽃을 살려낸 것 같은 소회를 느낀다.

아내가 이 호접란을 살린 후 우리는 해마다 화려한 꽃을 보며 함께 봄을 맞는다. 꽃망울이 맺힌 후 차례로 피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다워 꽃망울이 하나씩 터지며 꽃을 피울 때마다 아내와 함께 탄성을 지르곤 했다. 올해 2월 어느 날에도 아내가 호들갑스럽게 부르기에 급히 가보니 호접란의 첫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함께 이리저리 한참을 훑어보며 벌써 꽃을 본 듯 신기해했다.

12개의 꽃망울이 순차적으로 맺힌 후 차례차례 터지면서 하나씩 꽃이 필 때마다 아내의 호출은 계속되었다. 어떤 때는 내가 아내를 부를 때도 있었다. 12송이의 꽃이 다 필 때까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이 호접란에 관심을 주며 다음 꽃이 필 때를 기다리며 지낸다.

2월 22일 처음 꽃을 보여준 후 하나씩 꽃 피우며 눈을 즐겁게 해 주다가 드디어 4월 8일에 12송이째 마지막 꽃을 피웠다. 첫 꽃을 피운 후 두 달 지나도록 12송이의 꽃이  그 자태를 뽐내며 온 거실을 환하게 하고 있다. 이 꽃이 주는 즐거움이 커서 그런지 아내가 "다른 식물들은 정리하여 다른 곳으로 모아두고 거실에는 호접란을 종류별로 키워볼까?" 하는 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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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란2 3월 31일 꽃이 피고 있는 호접란 ⓒ 박상준

#호접란 #인연 #사학비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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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유산과 교육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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