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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참혹한 광경..." 홀로 '기억의 길' 달리는 김동수씨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들과 함께 잠들고, 걷고, 뛰는 그... 응원이 필요하다

등록 2023.05.10 11:08수정 2023.05.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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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과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대회에 참가해 달리고 있는 김동수 씨. ⓒ 박정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지난 토요일(5월 6일) 아침, 김동수씨는 제주도에서부터 새벽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여의도에 도착했다. 그가 궂은 날씨에도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이유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전날부터 쏟아진 비에 한강고수부지와 도로 곳곳은 물웅덩이가 생겼고, 여전히 빗줄기가 제법 굵었지만 대회는 취소되지 않았다(관련 기사: 이 남자의 특별한 세월호 추모 "고통스럽지만 조금만 더" https://omn.kr/23he4).
 
그가 이 대회에 참여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만든 티셔츠를 입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가 손수 제작한 흰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에는 김홍모 작가가 그린 '기억의 길'이라는 그림문구가 새겨져 있다. 티셔츠 안 '길' 글자엔 동백꽃과 광주시민,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과 도로의 검은 리본이 있는데, 이는 이태원 참사 추모를 뜻한다.

국가 주도 아래 희생됐거나 국가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희생된 사건, 그러나 여전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들을 하나의 길로 연결해 그린 것이다. 그 길을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 티셔츠를 입고 달린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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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길' 티셔츠. 김홍모 작가가 김동수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 김동수

 
이날 김씨가 달리는 내내 도로에서 스친 많은 이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기억의 길, 파이팅!'이라는 응원을 직접 외치기도 했다. 비록 짧은 구간의 마라톤 대회였지만, 거센 바람과 굵은 빗방울, 그리고 물웅덩이로 변한 도로를 달리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씨와 함께 뛴 필자 역시 평소 달리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김씨는 이날 골인지점을 통과한 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달리기로, 세월호를 비롯한 참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는 셈이다. 기억의 투쟁을 스스로 즐겁게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었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근처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를 한 뒤, 따뜻한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가 삶의 기반인 김씨가 서울에 올라온 주된 이유는 병원 검사를 위해서였다.
 
김동수씨 등 제주에 사는 세월호 피해자 6명은, '2015년 배상 결정 동의의 효력이 피해자들의 장해에 대한 불완전한 평가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며 2021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년이 지난 시점에야 검사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소송은 피해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하는 진단검사를 진행하는 단계에 있다(관련 기사: 세월호 참사 7년, 또 응급실 실려간 생존자... 그들의 선택 https://omn.kr/1stlz ). 


병원 검사를 앞두고 있는 김씨는 자신이 검사를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근심어린 마음을 내비쳤다. 간단한 검사라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기 때문에 참사 직후보다 조금은 좋아지지 않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을 했다.
 
"여전히 수십 알의 약을 매일 먹어야 하는데, 진정제나 신경안정제는 이제 잘 듣지도 않게 되어버렸어요. 사람들은 제가 마라톤을 좋아해서 뛰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잠을 못자기 때문에 새벽부터 뛰는 거예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약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으니 새벽부터 뛰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거죠.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가 이해하겠어요."
 
"기억을 스스로 잠그고 있어요"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배에서 있었던 일은 오직 나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실이잖아요. 나 이외에는 내가 있던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그러니 내가 그 참혹한 광경으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심지어 가족도 그 고통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길을 가다가도, 홀로 방에 있을 때도 그때 사람들이 환영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이해 못해요, 내 고통은..."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일부분이라고 한다. 그저 끔직했던 상황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만약 기억이 떠오르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올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그 기억을 스스로 잠그고 있는 상태에요. 만약 세월호에서 마지막에 아이들을 봤던 그 장면이 다 기억나게 되면 내가 지금 겨우 붙잡고 있는 기억마저 끊어져버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 이름도, 내 가족도, 나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하얗게 지워질 것 같아요. 그게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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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기억하며 41.6km를 달리고 있는 김동수 씨와 '베스트 탑'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 ⓒ 박정이

 
그는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 '기억의 길'이라는 티셔츠를 제작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만약 내가 마라톤 대회를 나갔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내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내가 누군지 주위 사람들이 모를 것 아닙니까. 그래도 내가 이렇게 티셔츠를 입고 뛰면, '아 저 사람, 세월호 김동수 아니냐'고 알아봐 주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적어도 가족에게는 연락이 가겠죠."
 
그는 늘 기억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가 티셔츠에 새긴 '기억의 길'은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더불어 김동수 개인의 기억이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잊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오롯이 김동수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티셔츠 하나를 제작하더라도 개인 사비를 들여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관련한 재단이나 단체,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일체의 관심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가 하는 기억의 투쟁은 오롯이 개인의 몸부림으로 유지되는 듯 보였다. 김동수씨는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자는 항상 죄인이다. 그래서 드러내는 존재이기 보다는 감춰지고 숨겨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유일하게 경험하고,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들이자 당사자들이 숨어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함께 나눠질 수 있다면
 
이틀 뒤, 김동수씨를 다시 만난 건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 앞이었다.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들어가는 김씨는 여전히 세월호 안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들과 함께 잠들고, 함께 걷고, 함께 뛰고 있었다. 그는 9년 전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들을 홀로 구했던 책임감을 여전히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활동을 외롭게 수행하고 있는 듯했다.  
 
병원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 그가 붙잡고 있는 진실이라는 '소방 호스'를 다른 시민들도 함께 나눠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피해·생존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외상 후 트라우마 증상을 겪고 있는지, 그 후유장해를 위해 국가와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피해자와 가족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더는 생존자와 희생자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기억의 길'을 달리는 김동수씨를 우리가 기억하고 함께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으로, 김씨 사건을 법률지원하고 있습니다.
#FIGHTING CHANCE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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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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