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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직장인 삥뜯어 조선족 먹여 살리네"? 임계점 넘은 혐오

극단적으로 횡행하는 재중동포에 대한 혐오... 자성이 필요한 때

등록 2023.05.31 17:51수정 2023.05.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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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조선족'으로 검색한 결과 '조선족'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언론보도들이 다수 검색되고 있다. ⓒ 박광홍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포털 뉴스창을 훑어보던 나는 <실업급여 '조선족'이 절반 이상 타갔다>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한국 사회에 혐중 감정이 만연한 가운데 조선계 중국인(재중동포)에 대한 반감과 차별이 횡행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세태를 모를 리 없는 언론사에서 '조선족'이 실업급여의 수혜자라는 내용을 제목으로 달아둔 것은 대중의 혐오 감정에 불을 부어 조회수를 끌어 올려보겠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았다.

나는 이 언론 기사들이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 고용보험료를 낸 사람이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게 문제라는 것일까. 외국인은 고용보험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실업 상태에서도 장기체류가 가능한 동포비자(F-4)를 없애야 한다는 것일까. 유효한 문제의식이 읽히지 않는 문맥 너머로 남은 것은 중국계 동포들에 대한 혐오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기사에는 누리꾼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와 '우리의 몫을 빼앗아 가는 ''조선족'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2253개의 추천을 받고 최상단으로 올라간 베스트 댓글 "성실한 직장인 삥뜯어서 조선족 먹여 살리네"(yceu****)은, 파시즘의 그림자가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했다.

혐오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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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실업급여' 관련 기사에 달린 혐오댓글들 조선족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를 쏟아내는 댓글들에 다수의 추천이 누적되어있다. ⓒ 박광홍

 
다른 언론사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해당 현안에 대해 복수의 언론사들은 '조선족'을 전면에 내건 대동소이한 제목으로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도대체 언론보도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의아해진 나는 포털 검색창에서 '조선족'이란 키워드로 지난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범죄 관련 보도에 대해 주체로 '조선족'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끝없이 나오는 것을 보니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혹은 재일코리안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본의 언론사들이 범죄주체가 '한국인(조선인)'임을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낸다면 어떨까. 혹은, '한국인(조선인)'도 수혜 대상이 되는 일본의 복지정책에 대해 '우리'(일본인)의 몫을 한국인(조선인)들이 빼앗아 간다는 원성을 듣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그리고 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를 '혐한'이라 여기고 분노나 위협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혐오는 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른바 한류 열풍 속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현재에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살아가던 한국인이나 재일코리안들은 이와 같은 혐오를 일상적으로 견뎌내야 했다. 이러한 아픔을 모를 리 없는 한국의 대중들이, 그 이상의 혐오를 공공연하게 쏟아내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일본에서 만난 어느 연구자는 "조선계 중국인인 나는 북조선에서도 한국에서도 배척당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재일코리안, 남북관계 등 한국(조선)과 관련된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일본인 지인은 조선계 중국인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이야 말로 한국 민족주의의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여전히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큰 호소력을 갖는 한국 사회에서, '같은 민족'인 조선계 중국인을 이토록 냉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조선계 중국인들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궁색하게 답변했지만, 나 자신도 스스로의 답변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중국에 뿌리를 내린 동포들이 중국 국적으로 살아가고, 따라서 그 국적에 따라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인식한다는 게 그토록 미움 받을 죄일까. 언어와 문화 등의 계승으로 이루어진 민족의 정체성과, 정치적 산물인 국적은 반드시 일치하는 요소도 아니고 또 일치해야만 할 까닭도 없다. '민족'과 '국적'을 일치시키겠다는 망상에 따라 벌어진 전쟁들은 이미 역사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계 동포들이 한국으로 귀화하여 민족과 국적의 일치를 이룬들 혐오의 화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중국계 동포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든, 심지어는 제도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인정을 받아도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조선족'이 한국으로 귀화에 오는 상황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우려를 쏟아내는 혐오댓글들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저출산 대책으로 '조선족 대거 수용'을 논했다가 거센 반발을 받은 바 있다. 물론 김무성 당시 대표의 주장은 저출산의 근원적 원인에 대한 진단이 엇나갔고, 부적절한 제안이었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비판받을만 하다. 그러나, '조선족이 한국에 대량 유입되어 한국인 행세를 하며 살게 된다'는 식의 혐오까지 드러났던 당시의 상황은, 한국 대중들이 중국계 동포를 '한번 조선족으로 태어났다면 한국 사회에서 포용할 수 없는 타자'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계화'라는 말이 결코 낯설지 않은 시대이다. 타국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타국으로 나가기도 하는 게 일상적인 21세기의 현실 위에서, 주류 한국인과 다른 소수자들을 '우리의 몫을 빼앗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혐오가 횡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럽고 또 개탄스러운 일이다. 민족 의식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측면에서라도, 이 혐오의 세태에 대해 성찰과 자정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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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포스터(1937년) 나치당은 도이치인들의 몫을 빼앗고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로 유대인을 그리며 반유대주의 혐오를 조장했다. ⓒ wiki commons

#동포 #혐오 #혐중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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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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