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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근절하려면... 이것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부터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교육을 시작해야

등록 2023.06.12 10:23수정 2023.06.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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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당시를 회상하며 딸이 그린 그림 ⓒ 김성수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와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 모두 자녀의 학교 폭력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의 경험이 떠올랐다. 

내 자녀들은 한국과 영국의 혼혈아다. 자녀들은 한국에 살 때 동네 보통 초등학교에 다녔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아들이 학교 갔다 집에 와서 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해 달라고 했다. 아들의 머리카락 색깔은 짙은 갈색이었다. '왜?' 하고 물었다. 반 아이들이 "넌 미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 아니야"하고 놀린단다. "아빠가 한국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해도 "한국 사람은 머리 색깔이 까만데 너는 머리가 갈색이라서 한국 사람이 아니"란다. 아들은 "이 다음에 진짜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빠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 후 딸아이도 동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왔다.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 여럿이 "○○는 영국 스파이, 고양이 눈깔에 이티"하고 놀린단다. 어떤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딸아이 얼굴에 던졌단다. 그 말을 들을 때 아빠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르게 생긴 것이 무슨 죄인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우리 사회는, 아니 인간은 언제쯤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특권의식으로 가득찬 이들이 사회 엘리트로 있는 한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지난 7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우리는 남을 괴롭힌다': 한국 학교생활의 어두운면('We torment others': the dark side of South Korean school life)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학폭'과 '왕따'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하며 정순신 아들의 학폭 문제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정부자료를 봐도 학폭이나 왕따가 지난 10년 동안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2월 정순신 아들 학폭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학폭 관련 기록이 대학 지원시 반영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가해 학생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아니라 학폭이나 왕따를 미리부터 예방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시민인권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디언>은 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학폭이나 왕따를 경험한 피해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자살할 것을 생각했다는 조사가 나와서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사회가 각개전투, 각자도생이 권장되는 강력한 경쟁사회인 것도 학폭이나 왕따를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디언>은 학폭이나 왕따 피해학생들 중 3분의 1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외국인 입장금지'를 내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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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보내준 한국식당 외국인 출입금지 간판 ⓒ 김성수

 
학폭이나 왕따의 문제는 단지 학창시절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들은 성인이 되어도 사회에서 타인을 괴롭히고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

지난달 한국에 사는 딸이 한 가게 앞에 '외국인 입장금지'라는 간판이 공공연하게 붙은 것을 보고 놀라서 충격을 받고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주인이 이같은 간판을 내건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사진을 보고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딸이 일하는 영어학원에는 종종 학부모들이 전화를 걸어와 "영어 선생 중에 흑인은 없나요?"라고 묻는다고 했다. 흑인 선생이 있으면 아이를 안 보내겠다는 요구를 당당하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회적 약자나 나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인종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민교육이 일선 학교 현장은 물론 가정에서도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참고로 필자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지난 2002년부터 중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시민교육'은 다수 초등학교에서도 거의 의무적으로 교육하도록 돼 있다.

'시민교육'이란 과목에서 다루는 주제는 ▲정치 ▲언론 ▲인권 ▲다문화 ▲세계문제 ▲시민과 법 ▲민주주의 등이었다. 영국에선 이 교육의 효과와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 보고서는 시민교육 수업 도입 후 학생들의 정치의식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 소속감 등이 증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다문화에 대한 포용력, 인권의식 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기사).

나와 다른 사람이나 약자를 존중하고 인종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지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참고로 영국에서는 최소한 학교 안에서는 학폭이나 왕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학폭이나 왕따는 주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발생하는데 영국에서는 일단 학생들이 학교건물 안에 들어온 이상 아예 교사들의 눈 밖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있다.

쉬는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교사 혹은 보조교사(영국은 수업마다 거의 다 보조교사가 있다) 아니면 자원봉사 학부모들이 교실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지켜본다. 그러니 일단 학교에 들어온 이상 학생들이 학폭이나 왕따를 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학교에서 미혼모와 그 아동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서구와는 달리 한국사회는 미혼모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부모가 어떻든, 아빠가 있든 없든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 아이는 그저 소중한 아이일 뿐이고 아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내 자녀들이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종종 안내 책자를 받았다. 책자에 '저소득소년소녀 가장, 한부모시설 수용아'라는 표현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당시 한 교사에게 "수용하면 수용소나 교도소 같으니 '한부모시설거주아동'으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현재는 어떻게 개선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학교 현장에서도 교육적인 표현, 인권감수성이 예민한 표현, 차별적이지 않은 표현을 썼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하루는 가정의 달이라고 학교에서 내 자녀들에게 글짓기 숙제를 줬다. 그런데 그 내용이 '부모님께 편지쓰기', '가족사진 가져오기', '두 분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 가족 아빠 엄마와 살아요' 등이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 존중해 주고 가족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가치중립적 표현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난 세기부터 유럽은 법적 결혼 제도가 연성화됐다. 영국 경우는 동거하는 남녀가 결혼하는 남녀의 수를 추월한지 오래다. 이는 북유럽과 서유럽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동거로부터 가정의 삶을 시작하고 자녀를 낳으며, 동거하는 파트너가 바뀌는 일이 흔하다. 법적 결혼 이후의 이혼과 재혼 역시 빈번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의 혈통과 상관 없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함께 산다.

동거의 파트너가 바뀌는 일이나 이혼과 재혼이 더 이상 심각한 가족의 실패로 간주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녀들은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에 상관없이 가족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부모를 선택하고 태어난 아이들은 없다. 한국 사회는 이제라도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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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당시를 회상하며 딸이 그린 그림 ⓒ 김성수

 
한국에 살때 영국인 아내의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아 나는 아내 손을잡고 학교 학부모 모임에 자주갔다. 한번은 학교 학부모회에서 방과 후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소득층 아이들이라 아이들이 산만하다"라는 표현을 과감하게(?) 쓰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이때도 참 안타까웠다. 학교설명회를 하는 날에도 한 교사가 "못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했다. 최소한 교육현장에서라도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용어, 차별적 용어를 안 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학교에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 주고 특히 미혼모 자녀를 차별하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모습의 가족 형태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경제적 유무, 사회적 고하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존중하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곧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닌가.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대한민국, 우리는 결코 만들수 없는 것일까?
#학폭 #차별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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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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