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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없는 곳이 절반... 학교 도서관이 이래선 안 된다

[주장]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드는 사람들, '사서'... 전문인력 제대로 갖춰야

등록 2023.06.13 15:37수정 2023.06.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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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 pixabay

 
노자, 사마천, 카사노바,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이들은 공통점은? 모두 사서다. 사서는 고대부터 존재한 역사성이 높은 직업이다. 역사상 최초의 도서관은 기원전 7세기에 설립된 신아시리아의 니네베(Nineveh) 도서관이며, 우리 역사 최초의 도서관은 고구려의 경당이다.

처음으로 도서관(library)이란 명칭을 사용한 도서관은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며, 고대 도서관 중 가장 유명하다. 그곳에서 일했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가 사서의 시초로 전해오는데, 그는 인류 최초로 지동설을 믿은 사람이라 한다. 이처럼 과거에는 지적 영역이 분화되지 않은 터라 사서는 동시에 학자나 작가 등 지적 리더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 유례가 깊고, 다양한 지적 유산을 남긴 사서의 위상은 현재 많이 달라졌다. 
        
세계적 명저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문명이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만큼 도서관은 지적 문명의 척도로 인식되곤 하는데, 한국엔 사서가 없어서 책 창고나 대여점에 불과한 도서관도 적지 않다. 바로 학교도서관이 그렇다.

사서 없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다 

많은 돈으로 도서관을 만들어 놓고 점심시간만 형식적으로 문을 열어 낭비한다는 교직원들의 증언은 어렵지 않게 들린다. 우리 국민 중 절반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어쩌면 시험공부 외엔 책을 읽지 않는 학교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가는 독서교육 증진을 위해 학교도서관진흥법을 두고 있으며 2018년 8월 개정된 법률에 따라 학교도서관에는 의무 규정으로 사서, 사서교사 등 전문인력을 1명 이상 두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은 확연히 다르다.

2022년 기준 전국의 학교도서관 '시설'은 1만1768곳인데 사서와 사서교사 등 전문인력을 배치한 학교는 48%인 5617곳에 불과하다. 의무적으로 사서 등을 두도록 2018년 법을 개정해 약 4년이 지났지만, 2017년 42%인 배치율에서 고작 6%p(754명)만 늘었을 뿐이다. 도서관은 시설+장서(정보)+사람+활동이 필수적인 바, 사서 등 전문인력과 그들의 역할이 없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며 책 빌려주는 책 창고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본연의 학교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1만1768곳이 아닌 5617곳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서 등을 두지 않는 학교는 일반 교사에게 도서관 담당을 맡겨서 때우는데, 이들 담당 교사들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너무 힘에 부친다. 과중한 학교 수업까지 감당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책임껏 관리하지 못한다. 방과 후나 방학 중 개방을 위해서도 전담인력이 배치돼야 한다."

엉뚱한 문제도 있다. 그나마 전문인력을 배치하더라도, 그가 사서냐 사서교사냐를 놓고 교육계는 논쟁까지 벌이고 교육당국과 갈등도 빚는 지경이다. 그 갈등 중에 "학교 사서는 사서교사보다 자격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며, 사서를 줄이고 사서교사를 채용하라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학교 사서는 비정규직이고 교사는 정규직이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목적이라면 그럴 수 있다. 또한 학교도서관은 도서관이란 본질이 우선이면서도 모기관인 학교의 목적에 따라 교수학습을 지원하는 역할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교사가 갖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가려야 할 말이 있고, 깊게 들여다볼 점이 있다.

학교도서관을 포함해 어떤 도서관이든 도서관의 본질적 전문인력은 사서다. 또한 사서의 역할엔 이미 교육적 의미가 내포해 있으며, 교과목 교사와 협력한다면 교육과정 지원도 가능하다. 사서가 아니라면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지만, 반드시 사서교사여야만 학교도서관이 제 기능을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학교 보건을 맡는 일은 전문 보건역량이 우선일까,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교사 역량이 우선일까?

이렇듯 교사냐 사서냐를 두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며 절충하는 주장도 있지만, 학교라고 하더라도 교사 이전에 사서가 도서관 본연의 전문인력이라 해야 한다. 그 본질적 정체성 위에 교수학습 지원의 역할을 더하는 것이지, 교사 임용시험을 거친 자여야만 학교도서관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학교를 교사 중심의 서열사회로 인식하기 때문은 아닐까?

학교의 모든 곳이 교실이라고 해야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학교의 모든 역할을 교사만 할 수 있다고 할 필요는 없다. 진짜 문제는 사서냐 사서교사냐가 아니라 학교가 학교도서관에 어떤 위상을 부여하는가이며, 사서에게 어떤 역할과 권한을 주느냐의 문제다.

정작 문제는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서의 역할을 제한하는 학교에 있으며, 진짜 문제는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사서의 권한과 교육연수를 제한하고 처우를 낮춘 교육청에 있다. 학교는 도서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며, 사서의 역할은 그뿐이고 한가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독서를 입시의 도구로만 국한시킨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교육청엔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서가 학생 독서동아리를 운영하는 것도 금하고, 심지어 도서관 이용 교육도 못하게 하는 사례가 있다. 게다가 서울, 대구, 강원 교육청 소속 사서들은 방학에도 도서관을 운영하여 학습 부담이 줄어든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독서교육의 기회를 넓히자는 요구를 해왔고, 서울에는 관련 조례도 발의됐다. 하지만 교사들의 반대와 교육청들의 소극 행정으로 멈춰있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학교도서관을 돌봄교실로 쓰라며 도서관을 망치는 정책까지 펼친다. 이렇게 교육당국과 학교부터가 사서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직무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어떻게 학교도서관 진흥을 꾀하고 사서의 직무능력을 거론할 수 있는지 씁쓸할 따름이다.

심지어 비정규직 사서를 비롯해 다른 공무원 사서 모두 40년 넘게 고작 2만 원의 특수업무수당을 받고 있다. 학교 사서에게는 유일한 직무수당인 특수업무수당 2만 원은 41년 전 6급 기능직 공무원의 봉급이 약 12만~28만 원일 때를 기준으로 책정한 것인데 지금도 그대로니, 취급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자괴감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학교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기 위해선 

거듭 말하건대 사서는 도서관의 본질적 요소로서 뗄 수 없는 존재다. 때문에 사서의 역할과 권한에 따라 도서관의 기능이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은 도서관을 책의 성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지로 바라보고자 노력하며, '장서에서 연결로'라는 슬로건 아래, 도서관을 활용한 공동체 소통까지 꾀하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문헌정보학과 데이비드 교수는 "나쁜 도서관은 장서를 쌓고, 좋은 도서관은 서비스를 구축하고,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시설의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나쁜 도서관이든 위대한 도서관이든 그 차이는 도서관 전문인력인 사서의 역할이 크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도서관의 사회적 기여는 결국 사서의 노력과 사기, 제도적 기반 여부가 관건이다.

학교도서관은 아이들의 문화적·지적 욕구를 발굴함으로써, 사교육 능력에 따라 지적 능력이 달라지는 교육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복지의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재정과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오는 6월 15일 국회에서는 토론회 '도서관에는 사서 노동자가 있다'가 열린다. 사서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 묻는 토론회다.

관심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을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또한 일반 시장과 달리 도서관은 공급 노력이 수요를 창출하는 곳이고 지식·문화에 대한 수요는 공급자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학교도서관을 도서관답게, 사서냐 사서교사냐를 가르지 않고 전문인력답게 제대로 갖춰야 한다. 전문인력 배치율 48%, 학교도서관의 현주소는 착잡하다. 도서관에는 에너지가 있다. 다큐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 등장한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도서관에 있으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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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관련 국회 토론회 포스터. 오는 6월 15일 국회에서 도서관 사서의 역할과 처우 등 실태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다. ⓒ 박성식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성식 시민기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 전문위원입니다.
#도서관 #사서 #학교도서관 #교육공무직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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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안의 낮은 목소리, 조력자. 자유로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 금지가 없는 사유의 항해. 소속되지 않으려는 집단주의자. 부의 근본은 노동이며, 인류의 시작도 노동하는 손에서 시작됐다는 믿음. 그러나 신념을 회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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