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농사에서 배운 글쓰기의 교훈

농사도 기사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등록 2023.06.22 14:05수정 2023.06.22 16: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무성하게 자라는 고추 처음으로 많이 심은 고추 ⓒ 최미숙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정겹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간당간당 버티며 겨우 생명을 이어 온 식물들이 단비에 즐겁다고 소리치는 듯하다. 며칠 전 심었던 밭작물도 드디어 내린 비에 깨춤을 출 것이다. 찌든 먼지조차도 씻겨 내리며 시원하다고 아우성 치는 것 같다.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짓는데, 사실 올해는 아무것도 심지 않고 묵혀 두려 했다. 키우는 게 힘에 부치기도 하고 해서 오히려 사 먹는 게 더 경제적이겠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풀이 너무 많아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한 지인이 포클레인까지 불러 복숭아, 사과, 아로니아 나무를 없애고 거름을 넣어 밭이랑을 만들었으니, 씨를 뿌리라며 부른다. 또 쓸데없는 데 돈 쓰게 생겼다.
 
주말에만 가니 천지가 할 일이다. 여기저기 고개 내민 꽃에게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일만 하다 온다. 한 주만 안 가도 풀이 내 키만큼 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연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꿈꿨던 순진한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 서둘러 옷 갈아입고 호미를 챙긴다. 땡볕에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풀뿌리 캐는 데에 온 힘을 쏟다 보니 엄지손가락 관절이 아파온다. 그렇게 힘들여 뽑아도 한 주가 지나 텃밭에 돌아오면 어느새 그만큼 또 자라있다. 텃밭은 '풀과의 전쟁'이라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손가락 관절 아프게 풀 뽑았지만... 한 주 지나면 또 제자리 

새로 만든 밭에 씨도 뿌리기 전에 잡풀이 먼저 자리 잡는다. 고추 모종 150주, 가지와 오이 세 주씩을 샀다. 전날 밤 물에 담가 불려 두었던 호랑이 강낭콩도 가져왔다. 미리 심었던 옥수수와 열무는 제법 자랐다. 약을 안 했더니 열무 이파리마다 벌레가 붙어 진액을 빨았는지 구멍이 송송 뚫렸다. 한 주 더 두면 안될 것 같아 다 뽑았다.
 
비닐 구멍에 간격 맞춰 고추 모종을 심었다. 남편은 지주대를 박고 끈을 묶는다. 남은 밭에 얼갈이, 상추씨를 뿌리고 호랑이 콩도 심었다. 열무 뽑은 밭을 정돈해 다시 씨를 뿌렸다. 새순이 돋아도 벌레 때문에 제대로 남아날까 싶다. 내 팔 길이만큼 자란 옥수수는 세 그루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호미로 끊어 버렸다. 고추 모종 한 그루 한 그루에 물 주고 곁순까지 따고 나니 하루가 다 간다. 날이 계속 가문 데도 무거운 흙을 뚫고 나온 어린 싹이 기특하다. 너무 작아 겨우 눈에 띄는 정도지만, 뿌리를 내려 결국 살아남았다.
 
고구마를 심으려고 지난 일요일 오전 여섯 시에 집을 나섰다. 남편은 요즘 날이 가물었으니 해뜨기 전에 심고 물을 듬뿍 줘야 한다고 했다. 순은 밭이랑을 만들어 준 지인이 주기로 했다. 밭에 도착하니 지인은 사모님과 아주머니 한 분을 데리고 왔다. 잠깐 풀 매고 있는 사이 두 사람이 순식간에 심는다. 스프링쿨러를 빌려 와 밭 가운데 세우고 온종일 틀었다. 풀 뽑다 시원하게 내뿜는 물에 옷이 다 젖었다.
 
옷을 말리려고 해를 뒤로 하고 열무를 다듬었다. 그동안 남편이 계속 물을 준 덕에 줄기가 뻣뻣하지는 않았다. 주위는 고요하고 평화로움 그 자체다.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가 적막을 깬다. 하늘을 본다. 비 올 기미도 없고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다. 강렬한 햇빛이 모든 걸 빨아들인다. 줄줄이 서 있는 고추며 긴 잎을 늘어뜨린 옥수수, 축 처져 엎드린 고구마가 나를 깨운다. 땀과 손길과 발길이 만든 풍경이 흐뭇하다. 올해는 제법 농사짓는 것 같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그동안 농약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건질 수 있는 열매가 없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고민이다. 작년에는 감나무 세 그루에서 스물여덟 개, 자두나무 네 그루에서 자두 일곱 개를 땄다. 실망스러웠다.

주말 새벽 여섯시 출근, 물 주러 출근... 정성이 필요한 농사, 글쓰기도 그렇구나  
 
a

글쓰기에도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 Pixabay

 
애써 심은 고구마가 죽을까 봐 남편은 3일간이나 물을 주러 왔다 갔다를 반복했단다. 그 정성을 알았는지, 고구마 순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때마침 주말에 비가 와 한시름 겨우 놓았다. 밭고랑 풀이 비에 힘을 받았는지 살판이 난 듯한 느낌이다. 저 풀을 언제 다 뽑을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일단 농작물은 심었으니 자연에 다음 일을 맡길 수밖에.
 
요즘 글쓰기를 한다.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느낀 것은, 농사가 그렇듯이 글쓰기에도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쉽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글감과 첫 문장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며칠이 지나있기도 하고, 쓰는 시간보다도 머물러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도저히 생각이 안 날 때는 그냥 다 그만두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그래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아이디어를 짜내다 보면 글이 글을 부르곤 한다. 그동안 남이 쓴 글을 읽으며 쉽게 썼을 거라고 여겼는데, 직접 써보니 문장 하나하나 어려운 과정을 거쳤겠다는 공감도 생기게 되었다.
 
맥을 못 추던 농작물이 이번에 내린 비로 인해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고 보니 비도 그렇고,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맑은 공기는 당연히 주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한번 배웠다. 
#글쓰기 #텃밭 농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노후 대비 취미로 시작한 모임,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이야
  2. 2 나이 들면 친구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3. 3 오스트리아 현지인 집에 갔는데... 엄청난 걸 봤습니다
  4. 4 최근 사람들이 자꾸만 신안으로 향하는 까닭
  5. 5 일본이 한국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꾼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