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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도 못 건진 수박, 소 22마리 폐사... 부여는 이렇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난리난 부여 농가와 축사... SNS 통해 전해진 아비규환의 현장

등록 2023.07.21 13:39수정 2023.07.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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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야속하게 내리는 비가 부여를 다 잡아먹고 있었다. 일기예보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13일 시작된 연꽃축제가 실시간 날씨 추이를 지켜본 지 하루 만에 전격 취소됐다. 연꽃축제는 부여의 대표 축제다. 줄줄이 예정됐던 행사들이 취소됐다. 이 정도면 행사 진행보다 재해 예방과 사후 대책 모드로 행정이 전환됐다는 뜻이다.

백마강 유역 문명권인 부여는 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발달했다. 백마강은 평소에는 기름진 토양과 수려한 경관, 유장한 흐름의 옛 수로 교통의 요지의 모습이지만 몇 년을 주기로 강한 비와 결속해 성난 수마로 변해 부여 사람들을 긴장하게 한다.

부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라오는 사진과 글들의 조짐도 불길했다. 백마강이 요동을 칠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작년에 발생했던 기습적인 폭우로 인해 인명피해, 가옥 침수와 파손 등으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해 재난지역으로 선포됐었던 부여였다. 구멍이 뚫린 수도관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빗줄기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관심의 손길이 덜 간 어느 곳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부여 사람들의 긴장이 소셜미디어에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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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구룡면 구룡평야가 잠긴 모습 지난 7.14일에 내린 비로 논과 하우스가 잠긴 모습 ⓒ 오창경

 
'제발 멈추어다오' '불안하다' '이 정도면 87년보다 더 끔찍하겠어' 등의 글이 올라오고 댓글들에서도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올해의 비 예고가 부여 사람들의 집단 트라우마인 1987년 8월의 기록적인 폭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말했다. 연이어 몇몇 부여 사람들도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

1987년 8월의 폭우는 부여를 물바다로 만들었고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명피해가 났었다. 마을 신문과 소식지, 마을 아카이빙을 하기 위해 주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시에 겪었던 개인의 경험들이 빠지지 않고 언급될 만큼 부여사람들에겐 1987년의 폭우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여전히 유효했다.

마을회관 거실까지 '잘름잘름' 넘어왔던 빗물

내가 부여에 살면서 겪었던 수해의 처참한 기억은 작년이었다. 밤나무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산이 둘로 쪼개진 것 같았고 계곡물이 불어나 순식간에 차량 한 대를 휩쓸어 버리고 앞머리만 다리에 걸쳐져 있던 전국 뉴스의 영상이 부여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비만 오면 그 영상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나와 관계가 없는 곳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쉽게 잊었을 일이었다. 하필이면 올해 초부터 그 마을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수해로 인해 연기됐던 마을 사업이 재개되기 시작한 시점에 내가 투입됐다.


빗줄기는 한결같았고 소셜미디어에선 새로운 글이 업데이트됐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여러 기관에서 보내는 재난안전문자도 동시에 울렸다. 그 시간 나는 작년에 인명사고가 났던 그 마을의 회관에 있었다. 마을회관 앞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은 한껏 불어나 흙탕물을 껴안고 빠른 속도로 흘러 내려가는 중이었다.

작년의 인명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마을에서 홍수 직전의 상황에 내던져진 기분은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회관 뒤쪽으로 달아낸 체력단련실의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크게 들릴 때마다 걱정스럽게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이장님, 작년에는 이 물이 어디까지 넘어왔어요? 오늘도 심상치 않은데요. 우리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대피해야 할 것 같은데요."

"걱정하덜 말어. 우리 동네부터 수해복구 작업을 잘 끝내서 이렇게 물이 잘 빠지고 있응께 안심해도 돼야. 내가 여기서 이렇게 지켜보구 있으니께 안심하고 일덜 해유."

이장님은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어떤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차 문도 잠그지 않고 빠져나가기 쉬운 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려놓기까지 했다. 마을회관 안에는 제법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비는 그치지 않고 걱정이네요."
"작년에는 비가 마을회관 거실까지 '잘름잘름' 넘어 왔었잖유."


부여 사람들은 물이 차서 찰랑찰랑 넘치기 직전의 상태를 '잘름잘름'이라는 표현으로 말한다. 그 의태어를 들을 때마다 폭풍전야 같은 위태로움도 함께 느낀다. 그 마을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부여 전역이 '잘름잘름'한 상태였다. 낮은 지대의 논들은 물론 마을 저수지의 수위까지 잘름잘름 위태롭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부여 사람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는 백마강이 범람 위기에 처했고 구 백제교 상판 아래까지 백마강 수위가 높아진 사진들이 올라왔다.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인 수북정의 붕괴가 우려된다는 소식도 있었다. 둔치의 시설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키가 커서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나무들이 꼭대기만 보여주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누군가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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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에 걸린 컨테이너 백마강둔치에 설치된 체육 시설에서 부속실로 쓰던 컨테이너가 교각에 걸려있다. ⓒ 전홍규


백마강 둔치 파크골프장의 시설물이었던 컨테이너가 구겨져 상자처럼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교각에 걸려 있었다. 그 누런 황톳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혹했다. 그 시간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14일 하루 동안 내린 빗줄기는 거셌고 10분도 그치질 않았다.

"우리 수박이 문제가 아녀"

"수박 언제 따요? 올해 수박 가격은 어때요?"
"낼이나 모레나 따서 가져간다고 했는디 날씨가 또 속을 썩이네."


수박을 재배하는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지 하루만이었다. 그는 작년에는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수박 하우스에 물이 차서 농사지은 수박 한 통도 먹어보지 못하고 버린 농민이었다. 올해는 태풍이 오는 시기를 피해 수박을 수확해 보겠다고 수박 모종을 심는 시기부터 서둘렀다. 다음날이면 수박을 트럭에 싣고 나갈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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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겼던 수박 하우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통의 수박도 건지지 못한 수박 하우스 ⓒ 박윤근

 
새벽에 수박 작업을 해줄 일꾼들까지 섭외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빗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기예보 상황도 좋지 않았다. 잠이 쉽게 올 리가 없었다. 한밤중에 하우스에 나와보니 하우스 안에는 시커먼 물이 넘실거렸고 수박들은 비치볼처럼 물에 떠 있었다. 올해도 그는 그의 수박을 한 통도 건지지 못했다.

"우리 수박이 문제가 아녀. 우리 하우스 옆 축사 있잖여. 거기는 물이 차서 송아지들은 죽고 소들이 떠내려가고 난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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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축사에서 소를 구출하는 소방대원들 특수 소방대원들까지 동원해서 소들을 구출하고 있다. 부여에서는 22마리의 소들이 폐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 황은익

 
하우스 옆 다른 농민의 축사에는 물이 차서 소들이 헤엄쳐 다니고 송아지들은 모가지만 내놓고 비명을 지르는 아비규환이었다. 수박을 따는 일보다 눈을 꿈벅거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들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구급대원들과 함께 옆 축사의 소들을 구출하다 보니 새벽 동이 터오고 있었다고 했다.

이번 비는 작년과 양상이 달랐다. 지속적인 강우였다. 기후변화 시대의 일기예보는 실시간으로 다르다.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이 심해 사회관계망 서비스에는 '극한 호우'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앞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이듯이 비의 양상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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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피해 속에 소와 함께 구출되는 주민들 부여읍 저석리 침수된 주택에서 22명의 마을 주민들을 구조했다. 이런 사진들은 부여 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장 (황은익)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허락 받고 게재한다. ⓒ 황은익

 
부여에는 지난 13일에 시작된 비가 14, 15일에 강하고 지속적으로 내렸다. 행정안전부, 수자원공사, 지방행정기관 등에서 보내는 안전 안내 문자가 실시간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왔다. 이 문자들 덕에 사람들은 집 주변의 수해가 발생할 만한 곳을 미리 돌아보고 손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항상 피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하는 법이다. 그 이틀간의 비에 부여는 90억 원이 넘는 피해액이 집계됐다. 작년 이어 올해도 재난 지역에 포함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지역에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다.

부여군 박정현 군수는 일상으로 빠른 복귀를 위해 분야별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비가 그친 19일부터는 수해 현장에 에너지 점검과 긴급 복구 지원이 시작됐다. 주민들도 수해 복구 자원봉사에 나서거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회복하려 하고 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 #부여 #부여 재난 지역 #부여 극한호우 #백마강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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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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