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대성당을 처음 마주친 순간생활 공간과 상업 거리를 바로 맞대고 있는 중세의 대성당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날 때, 기분 좋게 놀라게 된다. 골목을 돌아 성당이 눈에 들어온 첫 순간
유종선
햇살과 오렌지 나무가 싱그러운 도시,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세 가지를 보고자 했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크고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는 세비야 대성당, 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이 혼합된 알카사르 궁, 그리고 김태희 배우가 광고를 찍었다는 스페인 광장이었다. 하루 낮 동안 이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기차로 마드리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부상으로 남은 여행이 가능할까.
여행 동안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동안 내가 감기몸살이나 복통 정도는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다치는 경우는 아예 예상에 없었다. 나는 보호자인데, 보호자가 다치면 어쩌란 말인가.
아빠의 부상에 당황한 아이
씻고 나오다 숙소 내 대리석 계단에서 나동그라지는 순간에, 허리와 오른쪽 팔꿈치의 통증이 워낙 격렬하여 몇 초라도 지체하면 그대로 계단 위에서 움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직후에는 엉겁결에라도 움직여질 것이니 일단 계단은 벗어나자는 생각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몸을 굴려 왼팔로 지탱해 바로 앞에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앓더라도 침대 위에서 앓자.
우주도 놀랐다. 그런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는, 이내 다시 바닥에 엎드려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나는 죽을 듯이 신음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그게 못내 서운했다.
"우주야 아빠 너무 아픈데 너 계속 책만 읽기야? 아빠 좀 위로해주면 안 돼?"
그제서야 우주는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랬어요. 아빠 괜찮아요?"
"모르겠어. 내일 아침이 되어봐야 알 거 같은데?"
그래도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니 마음은 조금 안정되었다. 그런데 부상의 정도가 가늠이 안 됐다. 끙끙대며 30여분 정도 누워 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없는 공간에 몇 걸음 옮겨도 보고, 허리를 좌우로 살살 비틀어도 보았다. 허리 오른쪽 특정 구간에서 심한 통증이 왔다.
그동안 부실한 몸으로 숱하게 다쳐온 과정으로 미루어 자가진단을 해보면, 허리는 뼈나 신경의 문제까지는 가지 않은 심한 타박상같았다. 상체를 곧추 세우고 있는 동안은 버틸만 했다. 오른 팔꿈치는 뼈에 멍이 든 골멍 내지는 실금이 간 느낌이었으나, 움직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봐야 확실하겠으나, 그래도 여행을 계속할 희망이 보였다.
내일 세비야 일정을 마치면 우주와 나는 마드리드로 올라가 그곳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네 밤을 의탁할 계획이었다. 몸에 정말 무리가 있으면 현지인인 친구와 상의해 병원에 가면 되겠지. 세비야를 그냥 지나칠 걸, 하루라도 보려고 굳이 무리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모든 게 다 후회되기 시작했다. 후회의 와중에도 우주를 재우고 각종 예매와 일정 정리를 마쳐야 했다.
부상 다음날의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