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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원두막 기둥만 세우고 있습니다

등록 2023.08.07 08:25수정 2023.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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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원두막 공사를 재개했다. 2년 전, 원두막을 짓겠다고 맘먹었을 땐 그저 비나 바람, 햇빛만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소박한 바람을 무너뜨리고 엄청난 대공사로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2020년 대홍수였다. 


마을 사람들 얘기로는 70년 만의 홍수라고 했다. 당시에 내 밭은 산사태에 떠밀려 내려온 모래, 자갈, 진흙더미, 쓰러진 나무로 쑥대밭이 되어 잠겼고, 하우스에도 물이 차서 모든 작물이 대파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농사로 얻은 수익보다 많은 수익이 생겼는데 다름 아닌 산사태 보상금이었다. 400평이 대파되어서 150만 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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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지금까지 1,000평 넘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아직 150만 원의 수익을 내어 본 적이 없다(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생긴 수익 중에 최고액이었는데,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은 이번 겨울에 눈사태로 하우스가 무너져서 받은 100만 원이다). 

그해 겨울에 산사태로 뿌리째 뽑혀 쓰러진 통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퍼뜩 떠오른 게 원두막이었다. 원두막을 한옥처럼 지을 생각에 <한옥 짓는 법>이라는 책도 한 권 사서 탐독했다. 죽은 나무가 수십 그루쯤 되다 보니 기둥 네 개, 보 네 개, 대들보 하나, 서까래 열댓 개는 충분히 되겠다 싶어 원두막을 짓기로 맘먹었다.

그날부터 즉시 작업에 돌입했다. 한땀 한땀 톱질로 짓겠다고 맘먹고 장톱을 사서 톱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 못가서 톱으로 할 작업이 아님을 깨닫고 창고에 썩고 있던 기계톱을 꺼내왔다. 

그렇지만 난생처음 기계톱을 만져보는터라 시동을 걸 줄도 몰랐고, 사용법도 몰랐다. 그래서 35km 떨어진 수리센터에 가서 3만 원 주고 수리했다. 수리하면서 시동법도 배우고 절단법도 배웠다. 유튜브에서 벌목공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나무를 자르는 법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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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계톱을 들고 와서 쓰러진 나무를 3~4m 단위로 대충 자르고 나서 껍질을 벗기는 작업, 한옥 방식으로 끼워 맞추기 위해 홈을 파고 구멍을 따고 끌질을 했다. 나름의 기준으로 기둥 네 개와 보 네 개, 대들보 하나를 만들어 놓고 주춧돌 네 개를 놓았다. 여기까지는 꽤 일사천리처럼 진행했다. 기간제 일을 쉬는 겨울 두 달 동안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취미로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2년 동안 개점 휴업했다. 개점 휴업한 이유는 더 이상의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50~60kg이 넘는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을 수 없었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 손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여러 명이 놀러 오질 않았고 그나마도 오면 한두 명이었다. 그래도 산기슭에서 치목을 한 기둥이나 보를 원두막 지을 위치까지 끌어다 놓았는데, 그건 날이 추워서 바닥이 얼었을 때 미끄럼타듯 끌고 내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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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그렇게 시간이 지나 2년이 훌쩍 넘은 올해 6월 초 지인들이 와서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보만 세우면 순식간에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맘뿐이었다. 초기 내가 생각(설계)했던 대로 기둥과 보를 세운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기둥 순서도 바뀌고 보 또한 위치가 바뀐 채 대충 급하게 얹은 터라 직각이나 길이가 맞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둥 네 개가 주춧돌 위에서 까딱거리면서 흔들렸다. 이런 상태로는 다 짓고 나서도 태풍에 날아가거나 사람들이 놀러 와서 기댔다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렇다고 다시 기둥을 세우거나 보를 내릴 힘도, 여유도 없었다. 천상 이래저래 중방을 걸치고 사잇대를 대서 흔들림을 잡았다. 그리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폐가나 폭삭 무너진 시골집의 목재를 주워왔다. 폐교 복도 마루도 주워 와서 바닥을 깔 수 있는 마루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주워 온 나무를 자르다 보니 못이나 철근이 박혀 있는 게 많았고, 그걸 기계톱으로 들이대는 통에 톱날이 망가져 버렸다. 톱날이 무뎌지다 보니 나무를 자르려고 들이대도 먹지는 않고 연기만 나고 까맣게 타기만 했다. 다시 기계톱 날갈이를 해서 날을 세우기 위해 맡기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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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물론 간단히 인터넷에서 기계톱 날을 새로 주문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까지 돈 들이지 않고 지으려고 노력한 내 방향성을 무너뜨리는 듯해서 그건 관두기로 했다. 그냥 가능한 돈 들이지 않는 길로 갈 데까지 가보자. 이제 기계톱을 수리하고 대들보를 얹기만 하면 거침없이 공사가 진행될 것 같은데···. 주변인들이 얘기하길 기둥 세우는 데 2년 걸렸으니 완공되려면 앞으로 3년이라고 얘기한다.

돌아보면 이렇게 큰 공사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산사태가 나서 목재가 떠밀려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규격 조립 목재와 주춧돌을 사다가 깔끔하게(?) 마무리했을 것 같은데···. 더 쉽게 하려면 하우스 파이프를 가로세로 엮어서 지붕만 씌워도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을 보아야 한다. 지금 목표는 자두가 익기 전에 지붕을 얹어 그 아래 테이블에서 자두를 먹고, 수박이 익기 전에 평상을 깔아 그 위에서 수박을 쪼개 먹는 게 바람이다. 수박은 원두막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하하.
덧붙이는 글 이종명(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 원두막을 지으면서 썼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 '農밀한 생활'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농촌 #귀농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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